대규모 예금, 우량 고객… “지자체 잡아라!”

산업 / 유상석 / 2013-01-18 15:28:01
시중은행 지자체 금고은행 쟁탈전

[토요경제=유상석기자] 시중은행들이 지자체 금고(金庫)은행에 선정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금고은행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예치해 두는 은행이다.

▲ 지자체 금고은행 선정을 놓고, 시중은행들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금고은행에 선정되면 대규모 예금을 유치할 수 있고, 지자체 산하 기관을 대상으로 연계 영업도 가능한 이점이 있다. 또 공무원이라는 확실한 직업을 가진 우량 고객 유치도 수월해진다. 최근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로선 결코 놓칠 수 없는 먹을거리인 셈.

특히 올해는 24조 원의 예산을 가진 서울시 금고은행의 입찰을 앞두고 있어 이를 차지하기 위한 은행들의 물밑 경쟁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 24조 원 예산 서울시 ‘태풍의 눈’
그간 지자체 금고는 지방에서의 영업력이 큰 NH농협은행과 해당 지역의 지방은행들이 주로 관리해 왔다. 국내 지자체 금고는 일반회계를 기준으로 총 261개에 이른다.

NH농협은행은 시(市)금고 74개 중 57곳, 군(郡)금고 84곳 모두를 맡고 있어 ‘전국구’로 평가받는다. 지역에 밀착된 농협의 특성상 접근성이 좋고, 지역과의 연계가 강했기 때문이다.

광역시를 기준으로 보면 서울시는 우리은행이, 인천시는 신한은행이, 대전시는 하나은행이 담당해 왔다. 부산ㆍ대구ㆍ광주 등은 해당 지역의 지방은행이 전통적으로 담당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행정안전부가 지자체 금고 지정 지침을 변경하면서 이 같은 구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변경된 지침은 경쟁 입찰로 지정된 도 금고나 기존 금고를 재지정하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특정 금융회사는 수의계약할 수 있도록 한 기존 조항을 모두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으로 금고 지정 시 모두 경쟁 입찰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은행권으로서는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린 셈이다.

또 한 은행에 예산을 모두 맡기지 않고 주금고와 부금고를 기존 한두 곳에서 최대 네 곳까지 맡기도록 하게 돼, 은행권의 경쟁에 더 큰 불이 붙었다. 일반적으로 시도의 금고는 1금고가 일반회계, 2금고가 특별회계 자금을 맡게 되며 3금고는 특별회계나 기타 자금을 관리한다. 서울시는 2012년 말 기준으로 일반회계가 15조2050억 원, 특별회계가 6조5923억 원, 기금이 3조5629억 원에 달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지자체 금고는 많게는 25조 원(서울시)에서 적게는 몇 백 억 규모의 수신이 확보된다. 이 돈은 대부분 정기예금인 데다가 장기 계약을 하기 때문에 은행은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되며 이는 곧 예대 마진의 증대로 이어진다.

또 해당 지자체의 공무원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이들을 ‘우량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부수적으로 이미지 상승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도금고는 한 번 맡으면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 및 건전성 개선 효과가 크다”며 “이와 함께 네트워크 확대와 이미지 상승 등 부가적인 이득도 많아 최근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 시중은행 지자체 금고 쟁탈 ‘안간힘’
이 같은 금고은행 선정 경쟁에서 가장 열심인 곳은 KB국민은행이다. 그간 이 분야에서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했던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23일 광주광역시의 금고은행에 처음으로 선정됐다.

광주시는 이날 1금고에 광주은행을, 2금고에 KB국민은행을 선정했다. 그동안 광주은행이 전담해 오던 금고 관리를 처음으로 두 곳으로 나눈 것이다. 광주는 서울시와 함께 전국 15개 광역단체 중 유일하게 ‘단수 금고’를 운영해 왔던 곳이다.

KB국민은행은 또 지난해 10월 말에는 부산광역시의 2금고 은행에도 선정됐다. 1금고는 부산은행이다. 부산의 2금고 은행은 12년간 NH농협은행이 맡아 왔다.

KB국민은행은 금고은행 선정을 위해 2011년부터 기관영업추진부를 신설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광주의 제2금고를 따낸 데 이어 천안시와 해남군·의성군에서도 기금 관리 은행으로 선정됐다.

우리은행ㆍ신한은행ㆍ하나은행도 금고 쟁탈전에 힘을 쏟고 있다. 1905년 대한천일은행 시절부터 서울의 금고를 맡아 온 우리은행은 서울시 산하 25개 자치구 금고를 기반으로 세 확장을 꿈꾸고 있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올해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의 제2금고에 선정됐다.

옛 충청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은 충청지역에서의 큰 영향력을 바탕으로 다수 지자체의 금고를 관리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대전시 1금고와 충청남도 2금고, 천안ㆍ아산ㆍ당진ㆍ서천ㆍ보령ㆍ충주 등 충청권 주요 지자체의 제2금고와 기금을 관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비해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국적으로 금고를 관리하고 있다. 인천과 인천 산하 모든 금고를 비롯해 경기도와 강원도 원주ㆍ춘천ㆍ안동 등에서 제2금고를 관리하고 있다.


◇ 금융위 ‘과열 경쟁 막을 것’
문제는 금고은행을 차지하기 위한 각 은행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열 경쟁을 부추기는 지자체의 전략과 명확하지 않은 행정안전부의 선정 기준 탓이다.

금고은행은 각 지자체가 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된다. 선정 기준의 평가 요소는 주로 금융회사의 안정성 항목이 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내 은행들의 안정성은 대동소이하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은 각 지역에 출연금이나 협력사업비의 액수에 따라 금고은행 선정이 좌우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일례로 부산은행과 국민은행을 1금고와 2금고로 선정한 부산시는 두 은행으로부터 4년간 330억 원을 출연비와 협력사업비로 받기로 했다. 또 업계에서는 “올해 서울시 금고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4년간 1500억 원을 서울시에 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들이 자금 운용의 효율성보다 업체 간의 경쟁을 고의적으로 부추겨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즉 액수도 많지 않고 필요성도 적은데 금고은행 선정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계정을 한 은행에 맡겨도 되는데 일반회계ㆍ특별회계ㆍ기금 등으로 나눠 맡겨 출연금 액수를 늘리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 감독 당국도 과열 경쟁을 제재하고 나섰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2013년 중점 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자체 금고 선정 기준에 대한 개선 방안을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먹구구식 금고 선정 기준이 은행권의 과당경쟁을 초래하고 이는 곧 금융권 부실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금융 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시중은행들이 건전성을 위협할 정도로 과도하게 지자체 금고 유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면서 “관련 법규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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