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야생의 '세계'

기자수첩 / 여용준 / 2017-07-13 16:04:20

[토요경제=여용준 기자] 많은 어르신들이 그렇듯, 내 아버지께서도 자연 다큐멘터리같은 TV프로그램을 좋아하셨다. 야생의 초원에서 동물들이 나오고, 표범이 누우를 사냥하거나 대머리독수리가 지상의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셨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또 다른 TV프로그램은 UFC 등의 이종격투기였다. 땀냄새 흥건한 사내들의 맨몸 승부는 아버지 뿐 아니라 나 역시 즐겨봤던 TV프로그램이었다.


자연 다큐멘터리와 이종격투기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야생의 질서’라는 점이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잡아먹거나 승리의 영광을 누린다. 오로지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갖게 되고 약한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복싱 등의 격투 스포츠는 다른 운동과 달리 패자가 주목을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승률이 최소 80%를 넘지 못한다면 절대 주목받는 선수가 될 수 없다. 이런 야생의 질서는 흔히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부른다.


‘약육강식’이라는 논리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질서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남을 밟아야 내가 일어서는 ‘경쟁사회’ 속에서 살았다. 특히 사내들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폭력의 질서도 함께 겪어야 했다.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는 직장 내에서 실적으로 경쟁하거나 재력과 가정 등 ‘삶 자체’에서 타인과 경쟁을 해야 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태어나서부터 죽음까지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은 개인의 삶 뿐 아니라 국가와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다. 특히 글로벌 사회에서 다른 나라와 관계가 더 커진 입장에서는 피바람이 몰아치는 경쟁도 불사해야 한다. 국가와 국가 간의 경쟁은 어쩌면 가장 치열한 ‘야생의 세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한미FTA 개정협상을 공식 요구했다. 특별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FTA 협상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가게 됐다. 도시바 메모리부문 인수에 총력을 다하던 SK하이닉스는 웨스턴디지털의 견제와 일본 정부의 신중함 덕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두 가지 사안에 얽힌 이해당사자들은 모두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이익, SK하이닉스와 웨스턴디지털 등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 일본 정부는 자국의 기술 보호 등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이다.


이것은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천문학적인 금액의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신중하고 이기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누가 누구를 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바래야 할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신중한 결단으로 조금이라도 자국민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것과, SK하이닉스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 내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그것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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