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서 집행유예 석방… 분식회계·사기대출 혐의는 무죄
임직원 성금 7000만원은 송사비용 대신 장학재단에 기부키로
[토요경제신문=정창규 기자] 횡령·배임 등 기업범죄로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던 강덕수(64) 전 STX 그룹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해 4월 수감된 후 1년6개월만이다. STX 그룹 재건 가능성에 재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상준)는 14일 강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했다.
재판부는 “횡령·배임 범행 모두 부실 계열사의 경영 정상화와 회생을 위해 STX그룹 회장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되고 개인적 이익을 의도한 것도 아니다”고 판결했다.
앞서 지난해 5월 강 전 회장은 계열사 부당 지원에 따른 2843억원의 배임 혐의, 회사 자금 557억원 횡령 혐의, STX조선해양의 2조3264억원 상당 분식회계 혐의, 허위 재무제표를 이용한 9000억원의 사기대출 및 1조7500억원 상당의 회사채 부정발행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는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에선 기업인의 경영상 판단 범위와 배임의 고의성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도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기업 총수가 계열사의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지원한 행위 자체를 배임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사실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 시점 이후의 추가 지원은 배임죄를 인정할 수 있는 정황이 된다”고 제시했다.
항소심에서 형량이 대폭 준 건 1심이 유죄라고 본 분식회계 혐의가 무죄로 바뀐 게 결정적이었다. 2009~2013년 2조3264억원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1심은 “검찰이 영업이익까지 분식회계에 포함시켜 전체 규모를 잘못 산정했다”며 5841억원에 대해서만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은 강 전 회장이 김모(60) 전 STX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CFO) 등과 분식회계를 공모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분식회계를 전제로 한 9000억원 사기 대출 혐의도 무죄로 결론 내려졌다.
재판부는 “강 전 회장의 횡령·배임 등 범행은 모두 글로벌오션인베스트, STX건설 등 경영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했다고 판단했다”며 “대주주인 강 전 회장이 사익을 도모한 행위는 발견하지 못했고 또 피고인은 그룹 정상화를 위해 개인재산을 출자하는 등 책임을 다하려 노력한 점을 고려했다”며 감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 종료 40분이 지난 이날 오후 3시께 강 전 회장은 회색 정장 차림에 하늘색 넥타이를 메고 법원을 나왔다. 구속된지 1년6개원 만에 풀려난 강 전 회장은 수십 명의 지지자들의 환대를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관계자가 미리 준비해 둔 두부를 한 입 먹기도 했다.
강 전 회장은 취재진 앞에 서서 “국민들께 심려 끼쳐서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기업을 하다가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데 이런 사건에 연루된 데 대해서 다시 한 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STX 재건에 나설 의향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것도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답해 눈길을 모았다. 강 전 회장은 “부족한 제게 많은 분들, 특히 현장에서 노동조합이 격려해준 것에 대해 힘을 갖고 그분들에게 앞으로 남은 시간 보답을 해드리겠다”고 속 마음을 털어놨다.
강 전 회장이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는 노조 조합원, 협력업체, 전·현직 임직원들이 보낸 1800여 통의 탄원서가 작용했을 것이라게 재계 안팎의 분석이다. 앞서 지난 1심에서도 1000여 통의 탄원서가 제출된 바 있다. 통상 그룹 총수와 대립각을 세우는 노조원들과 협력사들이 탄원서를 제출했다는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노조 측 탄원서에는 “외환위기 상황에 노사 문제까지 겹친 1999년 모두가 쌍용중공업을 버린 상태에서 당시 강덕수 상무만이 고군분투했다”, “강 전 회장은 다들 늦게까지 일하고 있으면 새벽에 나가 한손 가득 치킨과 막걸리를 사왔던 사람이다. 다른 재벌들과 다른 만큼 양형에 참작해 달라”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회장은 1950년생으로 1973년 쌍용양회 평사원으로 입사. 제2의 김우중이라 불리며 ‘샐러리맨 신화’를 일군 입지적인 인물이다. 30년 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50세에 뒤늦게 쌍용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사명을 STX로 바꿨다. 대부분의 재계 총수들이 부친의 회사를 이어받은 ‘금수저’라는 현실 속에서 강 전 회장의 신화는 일반 직장인들에게 하나의 우상이자 희망으로 인식돼 왔다.
강 회장은 설립당시 5000억원 수준이던 그룹 매출액을 19조원까지 끌어올렸다. 자산 규모로 재계 서열 13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STX그룹은 공격적인 경영이 되려 부메랑이 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 주요 계열사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신세가 됐다.
지난 2013년 9월 강 회장은 채권단의 경영권 박탈에 대해 월권행위라며 반발했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며 채권단에 모든 것을 양보했다.
STX그룹은 지난 2013년부터 주요 계열사들이 법정관리, 채권단 공동 관리, 매각 절차에 들어가는 등 현재까지 해체 위기에 처해 있다. 강 전 회장이 STX 그룹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한편 강 전회장은 STX그룹 계열사 임직원 4000여명이 자신을 위해 모은 성금 7000만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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