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이제는 모두가 내 딸”

산업 / 전성운 / 2012-12-14 15:00:22
인신매매와 싸우는 '母情'

아르헨티나에서 인신매매 일당에 납치돼 10년 넘게 행방이 묘연한 딸을 찾아 나선 한 어머니가 그 과정에서 딸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성매매 피해자 수백 명을 구출해 온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성매매 피해자 수백 명을 구출한 공로로 수산나 트리마코에게 인권상을 수여했다.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매매 피해 여성의 영웅인 그녀는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미 국무부는 그녀에게 ‘용감한 여성상’을 수여하고 그녀의 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했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를 인권의 수호자로 바꿔놓게 된 것은 자신이 바로 그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사건은 2002년 딸 마리타 베론이 병원에 가던 길에 갑자기 사라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23세였던 베론은 자신의 어린 딸을 남겨둔 채 갑자기 실종됐고 트리마코는 백방으로 딸의 행적을 찾았지만 아무도 딸을 본 사람은 없었고 경찰 수사도 지지부진했다.


이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자신의 딸이 인신매매 일당에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은 트리마코는 결국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하고 전국의 사창가를 찾아다니며 딸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성매매 여성을 직접 구출해 이들에게 주거지를 제공하고 치료를 돕는 일도 시작했다. 그녀의 사연은 아르헨티나 전역에 유명해져 급기야 성매매 피해 여성을 돕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10년 전 그녀 혼자 외롭게 시작한 운동은 이제 아르헨티나 사회 전체에 큰 물결을 이루게 됐고 새 삶을 찾게 된 여성들의 영웅이 됐다.


그녀의 활동이 전국적 지지를 얻자 처음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아르헨티나 당국의 태도도 달라졌다. 심지어 미 국무부는 딸을 찾기 위한 트리마코의 노력에 감명받아 그녀에게 ‘용감한 여성’ 상을 수여했을 뿐만 아니라 딸 베론의 이름으로 재단을 만들어주었다.


이 재단의 도움으로 트리마코는 수백명의 피해여성들을 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이들에게 주거 시설과 신체적·심리적 치료를 받게 하고 자신들을 납치해 혹사시킨 범인들을 법정에 세우도록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또 딸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윤락가들을 돌아다닌 트리마코는 차차 지하세계의 범죄 조직뿐만 아니라 경찰과 정치인들까지 성매매 조직에 관련돼 있다는 증거들을 수집하게 됐다.


이후 아르헨티나 사법당국은 베론을 납치해 인신매매 일당에 넘긴 7명의 남성과 6명의 여성 등 모두 13명을 법정에 세웠다. 피고들은 재판에서 “베론은 커녕 인신매매 피해 여성 자체를 모른다”면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며 검찰은 이들에게 최고 25년형을 구형했다.


트리마코는 6일 간 계속된 재판에서 검찰측의 주요 증인으로 증언대에서 지난 10년 간 딸을 찾아다닌 여정에 대해 증언했다. 그녀에 의해 새 삶을 찾게 된 수십 명의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포함해 약 150명이 그녀의 편에 서서 증언에 동참했다.


그녀의 변호사 카를로스 가르멘디아는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베론 사건은 이미 아르헨티나를 변화시켰다”며 “베론 사건 이전에는 인신매매는 드러나지 않는 문제였지만 이제는 아르헨티나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됐다”고 설명했다.


◇ “나 자신이 강해져야 했다”
트리마코는 10여년의 세월동안 딸을 찾기 위해 변장을 하고 범죄조직의 소굴과 다름없는 윤락업소에 직접 들어가기도 하는 등 갖가지 노력을 펼쳤지만 안타깝게도 베론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매춘업소에서 탈출에 성공한 일부 여성이 마약에 찌들어 초췌한 베론의 모습을 봤으며 이미 스페인의 사창가로 팔려갔다는 다양한 증언을 했지만 아직 베론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아르헨티나 경찰은 현재 인터폴에 의뢰해 베론의 행방을 계속 찾고 있다.


트리마코는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내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내 딸을 납치한 파렴치범들이 날 보며 웃을 때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피해 여성 한 명을 구출했을 때 나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트리마코는 “그녀는 나에게 ‘범인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라. 그들은 당신과 당신의 고통을 조롱할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이후 나는 눈물이 나려 할 때마다 그녀의 말을 되새긴다”고 덧붙였다. 트리마코와 베론 재단의 활약 덕분에 2008년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인신매매는 불법이 됐고 인신매매를 뿌리 뽑기 위한 전담 부서가 창설된 후 2년 간 3000명에 가까운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이 구출됐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트리마코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우울한 삶이지만 처음 성매매 피해 여성을 구출한 날을 잊을 수 없다”며 “베론은 내 가슴속에 아직 살아 있다. 딸을 찾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1
    [증권업 소식] 키움·KB·신한투자·대신·한국투자·카카오페이증권

    [증권업 소식] 키움·KB·신한투자·대신·한국투자·카카오페이증권

    증권업계가 토큰증권과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강화하는 동시에 공모주·가족 자산관리와 문화 콘텐츠 마케팅으로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 KB증권은 기관투자자 대상 토큰증권 사업에 나섰고 신한투자증권은 AI 투자정보 서비스를 출시했다. 대신증권은 공모주 청약증거금에 이자를 지급하며, 한국투자증권은 가족 자산관리, 키움증권은 e스포츠를 앞세워

    2
    현대건설, 1년 133% 올랐지만 고점 대비 34%↓…원전 계약에 쏠린 시선

    현대건설, 1년 133% 올랐지만 고점 대비 34%↓…원전 계약에 쏠린 시선

    현대건설(대표 이한우) 주가가 최근 1년간 130% 넘게 상승했지만 52주 최고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30%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 한 달간 다시 20% 넘게 오른 가운데 증권가는 해외 원전 사업이 실제 계약과 수주로 이어지는지를 향후 주가 흐름의 주요 변수로 보고 있다.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 2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전 거래

    3
    KB국민·NH농협·하나증권, 성장펀드 2차 판매 참여…은행 40%·증권 60% ‘채널 설계’

    KB국민·NH농협·하나증권, 성장펀드 2차 판매 참여…은행 40%·증권 60% ‘채널 설계’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하나증권이 제2차 국민참여성장펀드 판매에 나선다. 1차 조기 완판에 이어 이번에는 은행 영업점과 증권사 온라인 채널의 역할 차이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2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제2차 국민참여성장펀드는 9월 30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10영업일 동안 판매된다. 모집액은 6000억원으로 물량이 모두 소진되면 조기에 판매를 끝낼

    4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미·중 ‘두 달 휴전’…추가 관세 미뤘지만 희토류·AI칩 남아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미·중 ‘두 달 휴전’…추가 관세 미뤘지만 희토류·AI칩 남아

    미국과 중국이 추가 관세 충돌을 두 달 더 미뤘다. 그러나 한국 기업에 더 직접적인 희토류 공급과 첨단 반도체·인공지능(AI) 기술통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근본적으로 풀리지 않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부터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까지 당장의 통상 충격은 낮아졌지만 공급망 경쟁은 계속된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

    5
    오리온·해태·롯데웰푸드·크라운, 과자값 '가격저항의 덫'

    오리온·해태·롯데웰푸드·크라운, 과자값 '가격저항의 덫'

    제과업계가 ‘가격저항의 덫’에 갇혔다. 원재료와 물류비가 뛰어도 가격을 올리면 생활물가 부담이라는 비판을 받고, 가격을 그대로 두고 중량을 줄이면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꼼수인상)’ 논란에 휩싸인다. 가격과 중량을 모두 유지하면 결국 회사가 비용을 떠안아 수익성이 악화한다. 해태제과·크라운제과·오리온 국내사업의 상반기 수익성은 이 딜레마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