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 맛없는 맥주 왜 마셔?"

산업 / 전성운 / 2012-11-29 15:39:25
이코노미스트, 독점적 시장구조 혹독히 비판

때 아닌 맥주논쟁이 일고 있다. 한 유명 외국 경제전문지에 한국맥주의 맛이 형편없다며 혹독한 비판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내 맥주업체들은 항변하며 항의서한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사실 비판 자체는 맛보다는 그러한 맥주를 생산하게 하는 독점 구조의 시장과 이들을 보호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의 맥주 시장은 대단히 폐쇄적인 구조로 이것이 국민들에게 맛없는 맥주를 먹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바야흐로 연말이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각종 송별회로 표현되는 대한민국의 연말엔 빠지지 않는 동료가 있으니 바로 ‘술’이다. 대한민국의 하고 많은 술 중에서 ‘맥주’는 가장 대중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맛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직장인 이 모씨는 “솔직히 국산 맥주를 ‘술’이라고 생각하고 먹진 않는다”며 “단순히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음료라고 생각하니 먹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술을 먹고 싶을땐 소주를 마시거나 창고형 세계 맥주점을 찾곤 한다”고 밝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 특히 유럽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선호 되던 ‘진짜 맥주’는 점점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형마트에서도 수입맥주를 대거 들여놓는 추세고 수입맥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술집들이 많이 늘어났다. 즉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 산낙지는 못 참아도 맥주는 참는 이유?
한국 맥주의 맛없음에 대해 안타까운 것은 우리뿐만이 아닌 듯하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4일 한국 맥주에 대해 북한만도 못하다는 혹평을 내렸다. 이코노미스트는 ‘화끈한 음식, 따분한 맥주’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 맥주는 대표 업체의 과점과 중소 업체의 진입을 막는 규제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사람들은 김치나 산낙지가 맛없는 것은 못 참으면서 맛없는 맥주는 어떻게 잘도 마시는지?”라며 의문을 제기하고 카스·하이트 같은 맥주 브랜드들이 과점 상태를 이루면서 맥주에서 가장 중요한 보리누룩마저도 아끼면서 맥주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맥주가 맛없는 이유로 시장을 거의 100% 차지하고 있는 하이트-진로와 오비의 독점구조를 지목하며 이런 독점구조는 정부의 규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슈퍼마켓 다섯 곳을 조사했더니 두 업체의 330밀리리터 캔 제품 가격이 1850원으로 정확히 일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작년까지만 해도 맥주의 도매유통은 생산능력이 100만 리터를 넘어야만 가능했다. 이것이 올해 12만 리터로 낮춰지긴 했으나 여전히 복잡한 세제와 수입관세 등 장벽으로 맥주 생산에 도전하는 업체가 드물다. 유통 비용과 지나치게 높은 원재료 수입 비용 등의 문제 역시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 장벽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에서 수제 맥주집을 운영하는 캐나다인 댄 브룬을 인용해 “그의 맥주집은 매일 밤 성황을 이루지만 생산된 맥주를 운반하는 데 붙는 높은 세금 등 여러 장애로 자신이 만든 맥주를 널리 유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 맥주 회사들 “억울하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는 발끈, 이코노미스트지에 반론을 담은 항의서한을 보내기로 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수입맥주가 계속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는 가운데 국산 맥주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과 오해가 외신으로까지 이어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것이다.


두 회사는 먼저 국산 맥주가 싱겁고 맛이 없다는 인식은 각국 소비자 선호도, 맥주 제조기법 등을 잘 몰라 생기는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맥주는 각국의 기후적 특성과 소비자 선호도에 따라 고유의 특징을 보이는데 한국의 맥주 맛은 유럽식에서 미국식으로 변화를 겪어왔다는 주장이다.


하이트는 “과거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조선맥주의 ‘크라운’은 쓴맛이 강한 유럽식 맥주로 한국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지 못하자 이후 선호도를 반영해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하이트’가 히트를 치면서 맥주 맛의 트렌드가 바뀌었다”며 고급 원료를 사용한 일부 맥주를 제외하고는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차이는 특성이 다를 뿐 질적 차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맥아 함량이 부족해 맛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두 업체는 “한국은 주세법상 맥아 함량이 10%만 넘어도 맥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산맥주의 맥아 함량이 부족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며 주세법의 맥아비율 10%는 법률상 기준일 뿐 맥주업체들이 실제 맥아함량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기호에 대해서도 라이프스타일이 고급화, 다양화하고 해외여행 경험이 늘면서 국산과는 다른 맛과 향의 수입맥주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지만 대다수 국내 소비자들은 목 넘김이 좋고 부드러운 하면발효 방식의 맥주 맛을 선호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대동강맥주가 영국에서 수입한 장비로 제조돼 한국 맥주보다 더 맛이 있다는 이코노미스트의 주장도 잘못된 지적이라고 맥주업체들은 성토했다. 하이트-진로나 오비맥주의 맥주공장 설비도 대부분 독일 등 유럽에서 수입한 것이고 제조공정 관리와 품질 수준도 외국 맥주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출은 6689만달러로 2007년 1371만달러보다 5배 늘어났다. 특히 일본 수출이 5392만달러로 8배 가까운 성장세를 나타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수입맥주에 비해 저렴하다는 이유로 국산 맥주가 질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매우 억울한 일”이라며 “국산 맥주의 세계시장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 문제는 ‘독점구조’
이들의 반박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전문지라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점은 단순히 ‘맛없음’이 아닌, 맥주시장의 ‘독점구조’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때문에 신규사업자가 나서기 힘든 국내 맥주시장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의 수입맥주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맥주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 10월 독일 ‘외팅거’와 연계해 개발한 수입맥주 ‘L’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롯데마트가 기획하고 유명 맥주제조사인 외팅거가 만들었다.


홈플러스도 최근 중소형 맥주기업인 세븐브로이와 손잡고 캔맥주 ‘세븐브로이IPA’를 수도권 30개 매장에서 선보였다. 특히 세븐브로이는 작년 10월 맥주 제조 일반면허 1호를 획득, 1933년 현재의 하이트진로, 오비맥주가 설립된 이후 77년 만에 탄생한 3번째 맥주회사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맥주 수입이 매년 20% 가까이 늘어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맥주 업체들은 변명보다 맥주 맛을 높이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싱겁고 맛없는 맥주를 언제까지 억지로 마셔줄 소비자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 ‘자유무역’을 빙자한 글로벌 맥주 기업들의 한국시장에 대한 침투 노력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처럼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들’에게 한국은 정말 매력적인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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