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법을 만드나

산업 / 전성운 / 2012-11-26 12:11:14
아청법·국보법, 착실히 ‘유신’의 길로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안이 지난 19일 국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 이전부터 가장 논란이 됐던 2조 5항의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 정의 중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라는 구절을 포함한 그대로 통과됐다.


그러나 ‘인식’의 기준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실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과 가상 인물이 등장하는 게임, 만화 등 '표현물'을 동등하게 규제한다는 점에서 네티즌들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논란에 앞서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14일 실제 아동·청소년이 출연하는 것만을 아음물로 규정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국회 아동·여성대상 성폭력대책 특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위원장 김희정)에서 최 의원과 유승희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여야 의원들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2조 5항을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라는 문구로 바꾼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명백하게 인식된다’의 기준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데다, 표현물 규제는 여전히 남아있어 네티즌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전형적인 한국식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렁탕법”이라며 “애들이 하는 인형놀이도 국회의원들이 보기엔 참으로 음란하게 보일 것”이라며 비판했다. 다른 네티즌도 “룸에서 아가씨랑 술 먹는 건 괜찮고, 집에서 2차원 교복 여케를 모니터로 보면 불법이라니 어이없다”고 말했다.


◇ 목적은 ‘표현의 자유’ 억압
전문가들도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악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피해자는 없는데 가해자는 있는 이상한 법이기 때문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미국에서도 실존아동과 무관한 아동 ‘캐릭터’만이 등장하는 영상은 실제 음란한가를 따져 일반 음란물 규제만을 적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명예훼손의 경우 말한 사람을 처벌하지 들은 사람까지 처벌하지는 않는다”며 “음란하지 않아도 처벌하고, 수령·소지자까지 처벌하는 것은 과잉”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는 정부가 초지일관으로 추진해온 ‘게임산업 죽이기’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다. 게임 관련 행사 기획업무를 하는 김윤상 와일드카드 컨설팅 대표는 아청법 개정안과 스마트폰 셧다운제 등을 ‘게임문화 탄압’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지난 18일부터 반대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는 이틀 여만에 1000건 이상의 리트윗을 기록했고 서명운동에는 6500명 이상의 네티즌이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게임 개발자, 게임 디자이너 등 관련 업계 종사자도 있지만 대부분이 자신을 평범한 학생 또는 성인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당장 성범죄 위험에 노출된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콘텐츠를 검열하고 관련 산업을 위축시키는 데 쓰이고 있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야동을 볼 권리’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현실의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성재기 대표의 ‘남성연대’는 현행 아청법 시행을 6개월 이상 보류한 뒤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검증단을 구성해 재개정하자는 내용의 요구안을 발표한 상태다.


네티즌들도 움직이고 있다. 문화자유네트워크에서는 16일부터 아청법 위헌 소송을 위해 네티즌들을 상대로 비용모금 운동에 나섰고 자발적인 아청법 개정 청원 서명운동도 이뤄지고 있다.


◇ 외국에선 합법, 우리에겐 불법
사실 이런 논란의 배경엔, 국회의원들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성년자들이 술집에서 일한다는 것은 뉴스나 실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겠지만, 미성년자가 성인동영상에, 혹은 ‘성인 애니메이션’에 출연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사실상 미국과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위 ‘성인 대상 포르노’는 엄연히 합법적인 시장을 갖추고 유통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터넷을 통해 한국으로 흘러 들어온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포르노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형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동이 나오든 아줌마가 나오든 상관없는 문제다.


외국의 경우 아동·청소년 음란물에 대한 처벌이 매우 엄격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제 아동이 출연하는 포르노’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명백히 ‘피해자’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 포르노’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과 한국의 인식은 그 괴리가 너무 크다.


전 세계적으로 성적 착취 및 유괴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운동을 펴고 있는 국제실종착취아동센터(ICMEC)의 <아동 포르노그라피:모델 법률 및 글로벌 개관>을 보면 “아동 포르노그라피는 적절하게 정의되어, 범죄자의 인식, 법집행관, 판사 또는 배심원의 입장에서 모호함의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지난 1992년 유엔에 의해 발효된 '아동의 권리에 대한 협정(CRC)'의 후속조치로 2002년에 발효된 '아동 매매, 아동 매춘 및 아동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선택의정서'에서는 아동 포르노그라피를 ‘방법과 관련 없이 실제적으로 또는 모의로 노골적인 성행위를 하는 아동이나 주로 성적인 목적을 위해 아동의 성기관을 표현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 유신은 ‘현재진행형’
지난 한 주 한국을 들끓게 한 주역은 문재인도, 안철수도 아닌 아청법과 국가보안법이다. 국보법에 비하면 까마득한 후배인 아청법은 ‘청출어람’을 실천하며 논란의 폭풍을 몰고 왔다.


이에 질세라 국보법 역시 ‘후배 위하는 선배’를 실천하며 아청법에게 ‘악법 넘버원’의 자리를 내주지 않겠다는 기세다. 지난 21일 수원지법 형사3단독 신진우 판사는 트위터에서 북한을 조롱한 죄로 박정근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조롱도 찬양고무에 해당한다”며 선고이유를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즉시 논평을 내고 “이 판결은 굳이 국가보안법 위헌론, 폐지론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적 목적을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고 한 대법원의 판례의 경향에 비추어서도 시대착오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설사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고 해도, ‘정신나간 사람이군’ 하고 무시하면 그만인데, 하물며 북한체제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목적으로 북한 찬양 게시물을 리트윗한 사람을 형사처벌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밝혔다.


2012년 11월인지 1972년 11월인지 모를 어느날의 대한민국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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