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들 고객정보유출 재판 ‘꼼수’ 부리기

산업1 / 전은정 / 2015-06-24 15:54:00
소송위임 입증만 1년 넘게 소요…‘김빼기’

[토요경제=전은정 기자]지난해 1월 1억여 건의 대규모 고객정보를 유출한 KB국민·롯데·NH농협 등 신용카드 3사가 입증자료를 요구하면서 1년 6개월 동안 재판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들 3곳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손해배상을 이유로 형사·민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의 원고는 20만여 명이며 지난해 제기한 소송은 90여건, 소송가액은 1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변호사 선임과 증거확보를 마련하는데 막대한 시간을 할애하며 2~3차례 변론이 열렸을 뿐 재판의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지난해 1월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고 당시 3개 카드사 사장들이 이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 심재오 KB국민카드 대표, 박상훈 롯데카드 대표.


국민변호인단 “입증자료 확보 60% 불과”
피해자 4만 5202명의 소송을 진행 중인 국민변호인단의 경우 카드사들이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받았다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해 소송위임 사실을 입증하는 데만 1년 넘게 시간을 소요했다.
24일 박영주 국민변호인단 변호사는 “위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정보유출 내용이 담긴 화면을 캡처하거나 주민등록등본 사본을 내야 한다”며 “개인에게 연락을 취하며 자료를 모으고 있지만 워낙 큰 단체소송이다 보니 아직도 자료를 60%밖에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원고 수가 4만 2000여명에 이르는 가장 큰 규모의 소송을 진행 중인데다 소송위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카드사 홈페이지 내 개인정보 유출 현황 화면을 일일이 캡처해 제출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소송을 위임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개인정보유출 내용을 화면캡처하고 주민등록증 사본을 내야하는데 컴퓨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 등이 있어 이들의 증거자료 제출이 늦어졌다. 특히 나이가 많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애로사항이 있었다.
이에 대해 한 카드사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소송에 참여했기 때문에 실제로 변호사들에게 위임을 했는지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라며 “고의로 소송을 지연할 의도는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변호인단은 지난 4월 1일 NH농협카드를 상대로 한 소송의 1차 변론에서 이 같은 어려움을 전하며 입금내역으로 대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캡처본으로 위임사실을 확인시킬 필요가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손배 소멸시효 올 때까지 ‘시간끌기’ 작전
금융당국은 대형사건의 재판이 이처럼 더디게 진행되는 것은 대형로펌을 고용한 카드사들의 고의성 짙은 ‘시간끌기 전략’ 으로 보고 있다.
24일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사건 발생 당시 정보유출 내역을 일일이 파악해 개인별로 통보까지 했던 만큼 마음만 먹으면 며칠 내로 입증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며 “고의적인 (재판) 늦추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정보유출 사건 발생 당시 카드사들은 카드정보 유출 고객 수가 KB국민카드 4320만 명, NH농협카드 2165만 명, 롯데카드 1760만 명 등 총 8245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당사자에게 유출 내역을 우편으로 보내는 등의 조치를 취해 입증자료 확인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카드사가 위임소송 자료 요청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오기까지 시간을 벌고 있다는 의혹도 고개를 들고 있다. 손해배상 소멸시효가 3년에 불과해 재판이 지연될수록 추가 소송 제기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소송에 참여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대형로펌을 낀 카드 3사가 막대한 배상액을 낮추고 일부러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것”이라며 “고객정보뿐만 아니라 신용등급 등 신용정보가 대부업자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유통된 점을 볼 때 카드사의 패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사측은 현재 비밀번호나 본인인증코드 등은 유출되지 않아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며, 직접적으로 고객이 입은 피해가 없다는 증거를 확보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신적 피해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
카드사들은 지리한 재판과 더불어 정신적 피해보상에도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카드유출사태 때는 법적 절차에 따라 ‘충실히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막상 법적 공방이 시작되자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를 대라며 발뺌하고 있다.
금융업계는 당시 이들 카드사가 밝힌 법적 절차에 따른 정신적 피해보상은 현재까지 객관적 기준이 없고 피해액 산정도 쉽지 않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신적 피해를 증명하는 것이 소송의 쟁점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카드정보유출 피해자 소송 과정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행 중인 소송에 당국이 개입할 수는 없지만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등 당국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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