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을 거꾸로 건다는 것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에게 그것은 세계를 다시 보려는 태도였다. 익숙한 형상을 바로 세워두면 사람은 너무 빨리 읽고, 너무 쉽게 안다고 믿는다. 바젤리츠는 그 안이한 시선을 거부했다. 그는 인물과 나무, 새와 몸을 뒤집었다. 화면은 낯설어졌고, 관람자는 비로소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지금 서울에서 바젤리츠를 다시 불러내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미지가 넘치는 시대를 산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얼굴과 사건과 풍경은 화면 위에서 곧장 지나간다. 그러나 바젤리츠의 그림은 쉽게 통과되지 않는다. 거꾸로 선 인물은 설명을 거부하고, 거친 붓질은 상처처럼 남으며, 뒤틀린 몸은 한 시대가 감추고 싶었던 기억을 끌어올린다. 그의 회화는 보는 행위를 늦추고, 보는 사람의 내면까지 흔든다.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전후 독일 현대미술의 방향을 바꾼 작가다. 1938년 독일 작센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전쟁과 분단, 폐허와 이념의 시대를 통과했다. 본명은 한스 게오르그 케른이었다. 동독에서 미술 교육을 받다 정치적 이유로 배제됐고, 이후 서베를린으로 옮겨 작업을 이어갔다. 그는 태어난 마을의 이름을 따 ‘바젤리츠’라는 이름을 택했다. 작가의 이름부터 이미 고향과 상실, 분단의 감각을 품고 있었다.
그가 등장한 1960년대의 미술계는 추상과 개념, 미니멀리즘이 강한 흐름을 이루던 시기였다. 바젤리츠는 그 질서에 순순히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다시 인물을 그렸다. 그러나 그 인물은 영웅도, 초상도 아니었다. 거칠고 불안하며 때로는 흉측했다. 그의 초기 인물들은 전후 독일의 무너진 남성성, 패전국의 기억, 폐허 속에 남은 인간의 몰골을 닮아 있었다. 아름답게 다듬은 인간이 아니라 역사에 찢긴 인간이었다.
바젤리츠의 ‘영웅’ 연작은 그런 세계를 잘 보여준다. 화면 속 인물은 승리자가 아니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과장된 손과 발을 드러내며, 황량한 땅 위에 서 있다. 영웅이라 불리지만 그는 패잔병에 가깝다. 바젤리츠는 영웅의 신화를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영웅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약한지, 역사 속 남성성이 얼마나 쉽게 폭력과 몰락으로 바뀌는지를 보여줬다.
그의 그림이 불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바젤리츠는 위로하기보다 들춰냈다. 독일의 전후 사회가 잊고 싶어 했던 기억, 나치의 잔재와 패전의 수치, 분단의 불안, 예술이 감당해야 할 윤리적 질문을 회화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화면은 아름다움의 장소라기보다 기억의 폐허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폐허에서 강한 생명력이 나온다. 붓질은 난폭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형상은 뒤틀렸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1969년 이후 바젤리츠는 대상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의 이름을 세계 미술사에 각인시킨 ‘뒤집힌 회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꾸로 그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는 형상을 뒤집음으로써 그림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약화시키고, 색과 선, 붓질과 화면의 구조를 전면으로 끌어냈다. 나무가 나무로만 읽히지 않게 하고, 사람이 사람으로만 소비되지 않게 했다.
거꾸로 선 그림 앞에서 관람자는 당황한다. 얼굴을 알아보려다 실패하고, 사물을 바로잡으려다 멈춘다. 그 순간 회화는 설명의 대상에서 감각의 사건으로 바뀐다. 바젤리츠는 그림을 다시 그림이게 했다. 재현의 익숙함을 깨뜨려 회화의 물질성과 리듬, 표면과 깊이를 보게 만들었다. 그의 전복은 형식의 묘기가 아니라 회화의 본질을 되묻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바젤리츠는 추상과 구상 사이에 서 있는 작가다. 그는 형상을 버리지 않았지만, 형상에 갇히지도 않았다. 사람을 그리되 사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았고, 나무를 그리되 풍경의 서정으로 끝내지 않았다. 화면 속 대상은 알아볼 수 있지만, 곧바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서 그림은 더 오래 진동한다.
바젤리츠의 붓질은 정중하지 않다. 거칠고 두껍고 때로는 무례해 보인다. 그러나 그 무례함은 시대를 향한 예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상처를 예쁘게 포장하지 않았다. 전후의 인간이 지닌 불안과 균열을 매끈한 화면으로 감추지 않았다. 그의 색은 때로 탁하고, 선은 비틀리고, 몸은 부서진다. 그런데도 그의 그림은 이상하게 강하다. 인간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잔여를 붙든다.
후기의 바젤리츠는 다시 자기 자신과 아내 엘케의 형상으로 돌아갔다. 젊은 시절 역사와 국가, 전후의 남성성을 거칠게 밀어붙였던 작가는 노년에 이르러 늙어가는 몸과 기억, 사랑과 소멸의 문제를 바라봤다. 그의 후기 초상들은 더 개인적이고, 더 연약하다. 그러나 약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어졌다. 한 시대의 상처를 그리던 화가는 마침내 자기 몸의 시간까지 그림 안으로 불러들였다.
왜 지금 게오르그 바젤리츠인가. 답은 분명하다. 그는 회화가 아직도 인간과 시대를 흔들 수 있는지 묻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빠르고 가벼운 이미지가 넘치는 지금, 그의 그림은 쉽게 이해되는 아름다움에 저항한다. 역사가 희미해지고 기억이 소비되는 시대에, 그는 불편한 기억을 화면 위에 남긴다. 회화가 장식이 아니라 질문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세화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회고전은 바젤리츠의 60년 화업을 국내 관람객에게 입체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다. 초기 작업부터 작고 전까지 이어진 최근작까지, 국내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회화뿐 아니라 드로잉과 부조 등 다양한 형식의 작업도 함께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약 20년 만에 열리는 바젤리츠 개인전이자, 지난 4월 작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처음 열리는 미술관급 회고전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전시는 오는 8월 13일부터 12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열린다. 티켓 사전 판매는 오는 13일부터 시작된다.
한 시대의 폐허를 거꾸로 세워 보였던 화가. 형상을 뒤집어 회화의 본질을 다시 묻게 했던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그림은 말한다. 세계는 늘 바로 서 있지 않다고. 때로는 거꾸로 보아야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진다고.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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