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비만신약 설계하고 릴리가 1.9조 베팅…한미약품 R&D 선순환

산업 / 황세림 기자 / 2026-07-27 17:46:41
HM17321 미국 1상·벨바라페닙 국내 2상 순항…로수젯 처방 1위, 연구 성과가 기술수출·제품 매출로 연결
▲ 지난 1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 분자생물학 지능형 시스템 학술대회(ISMB)에서 한미약품 미래성장부문 한승수 선임연구원이 한미약품만의 인공지능 플랫폼과 비만 신약 파이프라인을 설명하고 있다. [한미약품]

 

한미약품의 연구개발이 기술수출과 임상 진전, 주력 제품 성장으로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자체 인공지능(AI) 플랫폼으로 설계한 근육 증가형 비만신약은 미국 임상에 진입했고, 희귀질환 후보물질은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1조9000억원 규모의 계약으로 연결됐다. 국내에서는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이 처방시장 선두를 지키고 있다. 신약에만 기대지 않고 기존 제품에서 번 돈을 다시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선순환 구조가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한 모습이다.

가장 최근 확인된 성과는 AI를 실제 신약 후보물질 도출에 적용한 사례다. 한미약품은 지난 24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 분자생물학 지능형 시스템 학술대회(ISMB 2026)에서 독자 개발 AI 플랫폼 ‘HARP-pSAR’과 비만신약 후보물질 ‘HM17321’의 개발 과정을 공개했다. HM17321은 지방을 줄이는 동시에 근육량과 근 기능을 높이는 세계 최초 치료제를 목표로 개발되고 있으며 현재 미국 임상 1상이 진행 중이다.

HM17321은 기존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 계열과 다른 CRF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자극하는 UCN2 유사체다. 한미약품은 AI를 활용해 목표 수용체에 대한 활성은 유지하면서 비표적 수용체의 활성은 낮추는 단백질 서열을 설계했다. 대규모 서버가 아닌 연구 현장의 워크스테이션에서도 구동할 수 있도록 연산 비용을 줄여 후보물질 탐색 과정의 시행착오와 실험 부담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AI가 단순한 연구 보조를 넘어 임상 단계 후보물질을 설계한 도구로 활용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서 지난달에는 연구개발 성과가 대형 기술수출로 이어졌다. 한미약품은 일라이릴리에 장기 지속형 GLP-2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를 최대 12억6000만달러, 약 1조9000억원 규모로 기술이전했다.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은 7500만달러, 약 1129억원이다. 임상과 허가·상업화 단계별 성과금 최대 11억8500만달러와 별도의 판매 로열티도 받을 수 있다.

소네페글루타이드는 한미약품의 지속형 바이오의약품 플랫폼 ‘랩스커버리(LAPSCOVERY)’가 적용된 후보물질이다. 장의 성장과 점막 재생을 돕는 GLP-2의 효과를 오래 유지하도록 설계됐으며 단장증후군을 대상으로 글로벌 임상 2상이 진행되고 있다. 릴리는 한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의 개발·제조·상업화 권리를 확보했다. 비만치료제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한미약품의 물질뿐 아니라 기반 플랫폼의 활용 가능성까지 다시 평가했다는 의미가 있다.

항암 분야에서도 독자 개발 파이프라인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경구용 표적항암제 ‘벨바라페닙’은 NRAS 돌연변이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국내 임상 2상이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첫 환자를 등록한 뒤 전국 10개 연구기관에서 임상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미약품은 2027년까지 45명의 환자를 등록하고 2028년 조건부 품목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NRAS 변이 흑색종은 현재 허가된 표준 표적치료제가 없어 치료 선택지가 제한된 분야다.

미래 신약에 투자할 현금창출력은 기존 제품이 뒷받침하고 있다. ‘로수젯’은 2년 연속 국내 제약사가 개발한 전문의약품 가운데 처방액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선두를 유지했다. 국내 환자 1만9207명을 대상으로 한 20건의 임상연구 결과가 학술지에 게재됐고, 이 가운데 심혈관질환 환자 3780명을 대상으로 한 ‘RACING’ 연구는 국제학술지 ‘란셋’에 실렸다. 단순한 영업력보다 장기간 축적한 임상 근거가 처방 성장으로 연결된 사례다.

제품군도 넓어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이달 전립선암 치료제 ‘엔자론연질캡슐’을 출시했다. 자체 생산 체계를 통해 공급 기반을 확보했고, 동일 성분 제품보다 캡슐 크기를 최대 9% 줄였다. 일주일 단위 포장과 요일 표시를 적용해 복약 편의성도 높였다. 기존 전립선비대증·발기부전 치료제에 전립선암 치료제를 추가하면서 비뇨기 분야 사업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재무적으로도 연구개발 여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연결 매출 1조5475억원과 영업이익 2578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연구개발비 2290억원을 집행했다. 올해 1분기에는 매출 3929억원, 영업이익 536억원, 순이익 511억원을 기록했다. 연구개발비는 652억원으로 매출의 16.6%에 달했다. 일회성 수출 매출의 기저효과로 영업이익은 줄었지만 순이익은 14.4% 증가했고, 북경한미약품 매출도 10.3% 성장했다.

국제적인 평가도 뒤따랐다. ‘네이처 리뷰 드럭 디스커버리’가 아시아와 신흥시장 제약사 45곳의 15년간 연구개발 생산성을 분석한 결과, 한미약품은 ‘혁신 선도기업’ 그룹에 포함됐다. 연구개발 투자 규모뿐 아니라 혁신신약 파이프라인 비중과 글로벌 기술수출 성과가 함께 평가됐다.

한미약품의 최근 성과는 하나의 신약이나 일회성 계약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로수젯 등 자체 개발 제품이 안정적인 매출을 만들고, 그 이익이 연구개발로 들어간다. 연구 결과는 임상과 기술수출로 이어지고 다시 현금과 글로벌 개발 역량으로 돌아온다. AI 신약 설계와 1조9000억원 기술수출은 이 순환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오는 28일 공개되는 2분기 실적에서는 릴리 계약금이 손익에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가 새로운 확인 지점이 될 전망이다.

 

토요경제 / 황세림 기자 hsr@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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