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나면 회장부터 감옥?”… 중처법, 기업을 범죄 집단으로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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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형 편집국장, 중대재해처벌법과 삼표 |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현장의 반복적 참사를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시행 이후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형사 피의자로 세우는 구조가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의문이다.
기업은 계층적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조직이다. 그룹 회장, 지주사 최고경영자, 계열사 대표이사, 사업소장, 안전관리 책임자까지 책임은 단계별로 나뉜다. 현장의 작업 방식, 토사 안정성 점검, 안전펜스 설치 여부, 장비 운용 통제는 현장 책임자의 직접 통제 영역이다. 반면 그룹 회장은 예산 승인과 시스템 구축 지원이라는 상위 레벨의 의사결정에 관여한다.
그럼에도 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룹 회장을 형사 책임의 정점에 세우는 것은 ‘지위 책임’에 가깝다. 형사법의 기본은 책임주의다. 고의나 과실, 그리고 실질적 지배·통제 가능성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이번 판결은 바로 그 지점을 확인했다. 회장이라는 직함만으로는 처벌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문제는 한국 중대재해처벌법의 강도다. 미국은 산업안전 위반 시 기업 벌금 중심이며, 최고경영자의 형사처벌은 고의적 은폐나 중대한 위반이 입증될 경우에 한정된다. 일본 역시 업무상 과실 책임 중심으로 운영된다. 경영자가 자동적으로 형사 피고인이 되는 구조는 아니다.
한국은 다르다. 안전보건체계 구축 의무를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형사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직접 묻는다. 이 구조는 사고 예방을 위한 압박 수단일 수는 있지만, 동시에 기업 경영 전반을 잠재적 형사 리스크 상태로 만든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예측 가능성’이다. 어디까지가 경영자의 법적 책임 범위인지 불명확하다면, 경영 판단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산업현장의 물리적 위험을 최고경영자가 직접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결과가 발생하면 형사 피고인이 되는 구조라면 이는 책임의 합리적 배분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번 삼표 1심 판결은 중처법의 과도한 확장 해석에 대한 첫 제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안전을 경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을 명확히 하자는 요구다. 안전 시스템을 설계·감독하는 역할과 현장의 구체적 위험을 통제하는 역할은 다르다. 권한이 다르면 책임도 달라야 한다.
산업재해는 반드시 줄여야 한다. 그러나 형사 처벌은 감정이 아니라 법리에 따라야 한다. 기업 경영자를 ‘잠재적 피의자’로 전제하는 법 구조는 장기적으로 투자와 경영 의사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삼표 판결은 질문을 던진다. 중대재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형벌의 강도인가, 아니면 책임 구조의 정밀화인가. 사고 예방이라는 목표와 형사 책임의 범위는 구분되어야 한다. 법은 분노의 도구가 아니라 질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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