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은정 화가, 자연과 교감하다

문화·라이프 / 김병윤 / 2024-01-18 01:44:34
▲ Who are you? ㅡ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주체라는 시선에서 벗어나  우리를 바라보는 나무의 시선을 꽃으로 비유한 작품

 

백의(白衣)의 천사. 간호사를 뜻한다. 나이팅게일의 후예다. 고귀한 직업이다. 환자를 돌본다. 목숨도 구한다. 희생이 뒤따른다. 고된 업무에 몸은 파김치가 된다.

명은정(60) 화가는 간호사 출신이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동시에 퇴사했다. 고향인 원주로 귀향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다. 오랜만에 맛보는 휴식의 평안함. 달콤한 신혼생활은 덤이었다.

충전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병상의 환자가 눈에 아른거렸다. 누군가를 돕고 싶었다. 여건상 간호사 복귀는 어려웠다. 고민을 거듭했다. 문득 생각이 났다. 모든 사람에게 정신적 도움을 주기로 했다. 결론을 내렸다. 그림을 통한 도움이었다.

홍익대 미술교육원에 등록했다. 이립(而立)의 나이인 30살에 내린 결정이었다. 데생과정이었다. 3년간 원주에서 서울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장거리 원정수업이었다.

강의 첫 시간의 희열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삶의 뿌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간호사의 보람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원주에서 중견화가 한범구 선생을 만났다. 서울대 미대 출신의 실력파 서양화가다. 7년간 개인교습을 받았다.

▲ 봄밤 ㅡ봄밤의  환한 살구나무 아래 삶의 경이로움 앞에서 나는 어디로 가는가. 달빛처럼 고운 마음의 등불하나 밝히고 싶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내친김에 달렸다. 41살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스승의 영향으로 서양화를 전공했다. 늦깎이 대학원생활도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한범구 화가는 미술에 대한 자세를 일러줬다. 그 가르침은 명 작가의 생활신조가 됐다.

“그림을 대할 때 진실해야 한다.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기교에 의한 그림은 그리지 마라. 붓이 흘러가는 대로 꾸미지 말고 작업해라. 그림에는 작가의 얼굴이 나타난다.”(한범구 화가)

명 작가는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다. 겸손함을 배우려 한다. 그 대상을 자연에서 찾고 있다. 자연의 위대함과 조용함에 고개를 숙인다.

명 작가의 집은 한적한 시골이다.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계절 따라 큰 산은 수채화로 바뀐다. 새가 끊임없이 지저귄다. 이슬은 아침인사를 건넨다. 자연과의 교감이 자연스레 이뤄진다.

들판을 걸을 때 자연이 속삭인다. 다정스레 말을 건넨다. 겸손하라고 가르친다. 자연이 친구이자 스승이다.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 축복이라 느껴진다.

명 작가 작업의 주제는 “사물과 자연의 바라보기”다. 사물과 나의 공감과 소통이다. 곧 내면의 응시다. 자연과의 대화에 노력하고 있다.

명 작가는 2019년부터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물화에서 화풍의 변화를 가져 왔다. 세월의 흐름이 가져다준 과정이다. 자연을 묘사하지만 마음속의 형태로 변화시킨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든 명은정 화가. 그녀는 가슴에 떨림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첫 키스의 달콤한 느낌. 황금 들녘 같은 풍요로움을 화폭에 남기려 한다.

가장 빛나는 별은 자신의 가슴 안에 있다. 명 작가의 작업은 그 별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삼천 배를 하며 구도의 길을 찾는 수행자의 자세다.

간호사에서 화가로 변신한 명은정 작가.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던 그녀가 그림으로 정신적 풍요를 줬으면 한다.

 

토요경제 /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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