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 읽기]미녀(美女)를 얻거든 왕에게 바쳐라

오피니언 / 정해용 / 2013-06-10 17:29:24
19. 공왕(共王)의 보복

小醜備物 終必亡 소추비물 종필망
소인배가 보물을 지니면 필연코 망하게 된다. (史記 周本紀)
보물을 가지려면 지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과분한 보물은 화(禍)가 된다는 뜻



생각지 않은 일확천금을 얻었을 때 사람들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해지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재앙을 입는 사람도 있다. 로또 복권의 1등에 당첨된 뒤에 일족이 가난을 벗어나 두루 행복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친구를 잃고 가족간에 싸움이 나거나 사치를 시작하여 끝내는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수십억원을 넘는 돈을 갑자기 버는 사람은 곧 남모르는 곳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생긴 재물로 인하여 인간관계가 불편해지거나 신변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재물이나 행운의 크기가 다른 것은 타고난 그릇에 차이가 있어서다. 사람들이 흔히 갖기를 원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기 수중에 갑자기 생겼을 때, 그것도 지나치게 많이 생겼을 때는 자기 분수에 맞는지를 먼저 가늠해야 한다. 분수에 넘치는 행운은 반드시 그 댓가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목왕(穆王)이 나라를 다스린 지 55년 만에 죽고 아들 공왕(共王)이 뒤를 이었다. 공왕은 도성에서 가까운 경수라고 하는 물가에 자주 놀러나갔다. 이곳이 밀(密)의 땅이었으므로 왕이 행차하면 밀의 제후 강공(康公)이 자연스럽게 마중나오곤 했다. 제후가 왕을 자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권력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권력의 중심에 가까워지면 그만큼 세상의 대우도 달라진다. 강공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선물을 보내왔을 것이다. 그 중에 압권은 어떤 사람들이 젊은 여자 셋을 바친 일이었다. 모두 미녀들이었다. 만일 밀 강공이 한발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대인이었다면, 한꺼번에 셋이나 생긴 미녀들을 가장 유용하게 처분할 방도를 담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욕망에 충실한 소인배였다. 당장 기분이 좋아져서 세 여자를 다 취하려고 했다.

강공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충고했다.

“여자들을 왕께 바치시오. 짐승이 세 마리면 군이라 하고 사람이 셋이면 중이라 하는데, 여자가 셋이면 찬이 되는 것이오(夫獸三爲群,人三爲衆,女三爲粲). 왕이 사냥할 때도 한꺼번에 많은 짐승을 잡아서는 안 되고, 왕이 비빈을 맞이하더라도 한 집안에 세 여자를 동시에 취할 수는 없는 일이오(王御不參一族).”

‘찬(粲)’이라는 것은 빻아놓은 쌀을 이르는 말이다. 곧 값진 음식이다. 여자가 셋이나 생겼으니 먹을 것이 너무 많이 생긴 것과 같다는 뜻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미 빻아놓은 쌀이라 창고에 저장해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리 소문 없이 혼자서 먹어치우기에는 벅차다. 이런 음식이 생긴다면 어떻게 처리하는 게 현명할까. 이웃을 불러 나눠먹으면 그로 인해 인심을 얻어 반드시 그 댓가가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찬은 나눠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 여자들 아닌가. 그러니 차라리 왕에게 바치라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조언은 현명했지만 강공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힐난했다.

“저 여자들은 모두 미인들이오. 사람들이 이 미인들을 자네에게 바쳤는데, 자네는 무슨 덕으로 이를 감당하겠소. 왕도 감당치 못하거늘 하물며 자네 같은 소인이야. 소인배가 보물을 지니면 필시 망하는 법이오(小醜備物 終必亡).”

소인도 아닌 소추(小醜)라고 했다. 한마디로 ‘소인배 따위’로 낮춰 부른 것이다. 이렇게 강력하게 꾸짖어 말하는데도 강공은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미녀 셋을 한꺼번에 얻었으면서도 저 혼자만 좋아했다. 그렇다면 왕이 모르기나 했을까. 사기에 기록될 정도였으니 그 시점에서는 소문이 파다했을 것이다. 소인배가 굴러들어온 복에 싱글벙글 하다가 왕에게 이미 자랑까지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로부터 1년 뒤, 공왕은 밀나라를 없애버렸다.

한창 때의 제후가 미녀 셋을 한꺼번에 얻었다면 이는 분명 행운이다. 하지만 과연 왕을 자주 수행하는 세력가의 특권이 아니라면 이 같은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행운의 원천인 왕과의 관계에 좀더 진지했어야 했다. ★


- 이야기 Plus
과연 공왕은 여자를 바치지 않은 일 때문에 밀나라를 폐하였을까. 만약 왕에게 그 사유를 묻는다면 여자 때문에 그랬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왕이 누구를 총애하거나 미워하는 사유쯤이야 만들자면 얼마나 많겠는가.

왕의 사냥터에 자주 수행하여 권력에 가까워졌을 때 강공이 그 기회를 잘 활용했다면 밀나라는 좀더 많은 특혜를 누리며 번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위 때문에 찾아든 행운을 화근으로 바꿔버린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만일 강공이 여자들을 왕에게 바쳤거나 최소한 저 혼자 취하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멸망하는 일은 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윗사람보다 좋은 차를 타면서 이것을 자랑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흔히 윗사람이 좋은 차를 타지 않으면 그 아랫사람들은 감히 좋은 차를 타지 못한다. 너무 형식에 얽매일 것까지는 없지만, 이 같은 예의는 서로에게 편안한 일이다. 왕이든 사장이든 직상상사든, 인간의 심리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좋은 것을 보면 갖고 싶고, 남이 내게 없는 것을 가졌으면 샘나게 마련이다. 드러내 자랑하질 말든가, 자랑했으면 미리 알아서 나눠 갖는 게 현명하다. 설사 윗사람의 신임을 받고 많이 친해진 뒤에라도 마찬가지다.



왕과 가까이 지내던 밀 강공에게 어떤 사람들이 여자 셋을 바쳤다. 공의 어머니가 충고했다. “여자들을 왕에게 바치시오.”

강공은 말을 듣지 않았다. 공왕이 이듬해 밀나라를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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