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반면교사의 교육효과(!?)

오피니언 / 한창희 / 2013-05-24 18:09:48

▲ 한창희 두레정치연구소 대표
공직자(公職者), 성직자(聖職者), 교직자(敎職者)!

직책(職責)이 우선시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명칭에 직(職)자가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놈 者’도 들어간다.

국민들은 특히 직자(職者)가 붙은 직종의 사람들이 감정을 억제하고 직분(職分)에 충실해주길 바란다. 이들은 항상 품위있게 언행을 하여주길 바라며, 존경의 대상자로 남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럴 경우 다른 직종의 사람들보다 비난이 거세다. 거의 매도에 가깝다.

영향력이 막강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많이 줄 수 있는 직책에는 주로 ‘者’가 들어간다. 잘못하면 놈 즉 매도하겠다는 뜻이 숨어있다.

시골사람을 비하할 때 촌놈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촌자(村者)인데 말이다.

기자(記者)에겐 직(職)자가 없다. 왜 직(職)자가 없을까?

기자란 직책이 존경심을 유발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직(職)은 빠지고, 자(者)만 남아있다. 우리 용어가 참 재미있다.

직자(職者)항렬의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감정적인 것을 금한다.

예를 들어 시위대가 경찰에게 돌을 던져도 공직자인 경찰은 시위대에 돌을 던질 수 없다. 교직자인 선생님이 학생들을 교육적 차원에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칠 수는 있어도 감정이 섞여 주먹이나 몽둥이로 때려서는 안된다. 성직자가 술마시고 흐트러진 모습만 보여도 질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공직자, 성직자, 교직자등 직자(職者)항렬 사람들의 조그만 잘못도 용서치 않는다. 그들의 허튼 언행이 가져오는 사회적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윤창중 성추행 의혹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윤창중이 청와대 대변인이란 공직을 이용하여 인턴여학생을 성추행하려고 했다면 재론할 가치도 없다. 공직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기자회견 내용이 거짓이라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청와대의 뒷수습 과정도 왠지 감정적이고 어설프다. 위기대응 시스템이 엉망인 것 같다. 국가안보 시스템은 확실한지 걱정된다. 여기에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신이 난 언론은 우리나라 언론 맞는가. 국민들은 기가 막힐 뿐이다. 국내외적으로 너무 창피하다.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란 사람들의 수준이 이정도인지 한심스럽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까지 하였다.

윤창중이 미국에 가서 조사를 받든, 국내에서 조사를 하던 이제 법이 심판할 문제다. 우리 언론이 이 망신스러운 사건을 너무 오래 클로즈업 시켰다. 마치 대통령의 인사시스템을 비난하기위해 윤창중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자는 예리하게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여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족하다. 우리 언론은 무슨 일이 터지면 국민들이 거기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국가의 자존심이나 이익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국민들은 또다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주기 위해 관심을 갖고 질타할 뿐이다.

윤창중 못지않게 우리나라 언론의 냄비처럼 들끓다가 금방 식는 냄비보도를 국민들은 곱게 보지 않는다. 차제에 언론도 좀 반성하였으면 좋겠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윤창중이 보여준 이번 성추행 사건이 공직자들에게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국민들의 의식개혁에도 도움이 되었다.

이만한 교육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교육비만도 수백억원이 들었을 것이다.

윤창중은 공직기강 반면교사로 공직사(公職史)에 길이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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