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정치가 쉬워야 백성이 모여든다

오피니언 / 정해용 / 2013-05-20 09:35:40

平易近民 民必歸之 평역근민 민필귀지
정치가 간소하고 백성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백성이 모여든다 (書經 太甲訓)
은(殷)나라 준 훈계의 노래


새 나라나 새 정권이 출범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의 하나가 논공행상(論功行賞)이다.

중국의 천자(天子) 자리를 잇는 새 나라 주(周)의 출범은 화려했다. 공신들에 대한 포상은 무엇보다 대대로 다스리며 산물을 취할 수 있는 봉지(封地)를 하사하는 것이다. 봉지를 받은 공신은 곧 그 땅의 분봉왕(分封王)이 되어 거기 속한 백성을 다스리며 그것으로 제국을 섬기게 된다. 지금은 이 때의 분봉국을 편의상 ‘나라’라고 부르고 있는데, 중세 이전 서양의 영주제도와 비슷한 단위로 보아도 될 것이다. 아직 강력한 중앙집정제를 시행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각 나라는 군사 행정 산업 사법 등에서 독립적인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이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공(公)이라 불렸으며, 규모가 커지면 제후(諸侯)가 되었다. 때로는 왕(王)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명칭의 변경에는 천자의 엄격한 허락이 필요했다.

무왕은 천하를 나누어 건국공신과 왕족들에게 봉지로 나누어주었는데, 후일 주 제국이 쇠약해진 뒤에 전개된 춘추전국시대에는 제후국 공국들을 합하여 그 수가 많게는 2백 개를 넘는 시기도 있었다.

무왕의 포상은 두 갈래로 행해졌다. 첫째는 삼황오제 시대로부터의 역대 천자의 후손들에 대한 것으로, 대대로 영향력을 가진 가문들을 예우함으로써 주 제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세우고 민심을 아우르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한 차원의 포상이다. 신농씨의 후손은 초(焦)에, 황제(黃帝)의 후손은 축(祝)에, 요임금의 후손들은 계, 순임금의 후손들은 진(陳), 우임금의 후손들은 기(杞)에 각각 봉해졌다. 두 번째는 주의 출범에 직접 기여한 공신과 왕족들에 대한 포상이다. 이들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은(殷)을 멸하는 거사에 참여했으므로 당대의 실세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각기 비슷한 조건의 땅을 나누어주는 것은 건국 시기에 결집된 군사력을 배분하여 균형을 이루게 하는 의미가 있다. 서로 협력하여 주 왕실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물론, 한편으로는 서로를 견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천자가 직접 다스리기 어려운 광대한 지역을 나누어 다스리게 함으로써 서로가 경쟁심을 갖고 백성을 잘 다스려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건국공신들 중 으뜸은 사상보 강자아와 무왕의 친동생인 주공 단(旦)이었다. 사상보는 영구 땅에서 제(齊)를 세웠고, 주공 단은 곡부 땅에서 노(魯)를 세웠다. 왕의 형제들인 소공 석은 연(燕)에 봉해졌고, 숙선은 관(管), 숙탁은 채(蔡)에 봉해졌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공신들이 저마다 새로운 봉지로 떠났으나 주공 단은 갓 출범한 왕실의 일을 돌보느라 노(魯)나라에 부임할 틈이 없었다. 무왕이 죽은 후에는 아직 어린 성왕(成王)을 대리하여 섭정까지 맡아야 했으므로 아들 백금(伯禽)을 먼저 내려보냈다.
아들 백금이 아버지 단에게 돌아와 노나라 일을 처음 보고한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왜 이리 늦었느냐”고 주공이 묻자 백금이 대답했다.
“그곳의 풍속과 예의를 변혁하고, 3년상을 치르느라 늦었습니다”

백금이 정사를 늦게 보고한 것은 제나라에 부임한 사상보 태공망과 대조가 되었다. 태공망은 제에 부임한지 다섯 달 만에 돌아와 나라 일이 진행된 상황을 보고했던 것이다.
“어찌 이리 빠르시오”라고 주공이 물었을 때 태공망은 대답했다.
“저는 그 군신의 예를 간소화하고, 그 곳의 풍속과 행사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뒤에 백금의 보고를 받으면서 주공은 태공망의 말을 떠올리며 탄식했다.
“오호, 나중에는 노나라가 제나라를 섬기게 되겠구나. 대저 정치란 간소하고 용이하지 않으면 백성과 가까워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가 평이하여 백성에게 다가서면 백성은 반드시 모여들게 돼있거든.”

과연 후일 노에서는 공자(孔子)가 태어나 천하의 도리와 예의를 따지는 유가(儒家)의 본산이 되었지만, 천하를 호령하는 패권을 누린 것은 평이한 정치를 앞세웠던 제나라였다. 노나라와 제나라의 관계로 말하자면, 노나라는 인접한 제나라의 등쌀에 자주 시달리며 도움을 구하거나 눈치를 보아야 했던 것이다.


- 이야기 Plus
정치는 타당한 명분과 예법에 맞는 절차도 중요하다. 그러나 명분의 상대편에 있는 실질을 동시에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분과 절차라는 것이 실(實)을 압도하면 현실에 뒤처지기 쉽다. ‘갓 고쳐 쓰다 장 파한다’는 속담이 있다. 장에 가는 사람의 목적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팔려는 물건을 좋은 값에 파는 데 있다. 만일 의관을 잘 차려 입느라 출발이 늦어서 이미 장이 파한 뒤에 도착하게 된다면 의관을 차려입은 일이 다 헛수고다.

형식에 얽매어 때를 놓치거나 실속을 잃게 되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그 정치를 싫어하여 거리를 두고 멀어지게 된다. 제나라는 형식 규범보다는 현실을 중시하고 그 땅의 사람들이 본래 누리던 전통과 풍습을 인정하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나라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으므로 나라는 자연히 부강해졌다. 노나라는 그와 반대로 형식규범을 들고가서 그 나라 사람들의 풍습과 예의를 뜯어고치려 했으니 반발이 많았을 것이다. 나라가 안정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백금은 노나라에 간 지 3년 만에 첫 보고를 올렸다. 제나라가 처음 보고를 올린 것은 다섯 달만의 일이었다.
“장차 노나라가 제나라를 섬기게 되겠구나. 정치란 간소하고 평이해야 백성이 따르는 법이거든” 주공 단이 탄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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