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 읽기] 예고된 성인(聖人) 강태공을 만나다

오피니언 / 정해용 / 2013-04-26 18:54:54
14. 준비된 지도자(2)


日中不暇食以待士 일중불가식이대사
선비들을 대하느라 밥 먹을 겨를도 없다 (史記 周本紀)
서백이 현자와 재사들을 우대하자 많은 선비들이 모여들어 매우 분주했음



서백(西伯)이 나라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두번째 힘은 그 자신의 선행과 덕행 그리고 지혜였다. 그 명성을 듣고 모여든 천하의 인재들과 제후들의 도움은 주(周) 창업의 세번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 고공단보와 아버지 계력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서백 희창(姬昌)은 선대의 법도를 잘 지키면서 어진 정치를 행하고 노인을 공경하며 어린이를 아꼈다. 어진 사람들을 예의와 겸손으로 대하며 재능 있는 사람들을 접대하느라 밥 먹을 겨를도 없을 정도였다. 주제(紂帝)의 학정으로 지친 민심을 서백이 잘 보듬었으므로, 당대의 인물들은 너나없이 서백에게 와서 의지했다. 고죽국의 성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비롯하여 태전(太顛) 굉요(閎夭) 산의생(散宜生) 육자(鬻子) 신갑대부(辛甲大夫) 등이 모두 서백을 따랐다. 육자는 초나라의 대부며, 신갑대부는 주왕(紂王)에게 75번이나 바른 말을 했다는 충신이다. 서백이 주왕(紂王)에게 잡혀 누대에 갇혔을 때 서백의 구명에 앞장선 사람들도 바로 이들이다.

어쨌거나 주왕에게 잡혔다가 풀려나온 일은 결과적으로 서백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자기편이 될 수 있는 제후들과 자기편이 될 수 없는 제후들을 확실히 분별할 수 있었던 데다, 주왕으로부터 제후국들을 제압할 권한까지 위임받아 권력이 전보다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서백은 자기 판단에 따라 왕이 위임한 군권(軍權)을 발동하여 제후들의 군대를 소집할 수 있고 그 중 어느 곳을 점령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서백은 스스로 더욱 언행을 조심하면서 덕을 쌓고 민심을 확인하는데 힘썼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후나 백성들은 서백에게로 와서 상의하거나 하소연하니 자연스레 서백은 국정의 실세가 되어갔다.

한번은 우와 예 사람들이 밭의 경계를 두고 다투다가 공정한 판결을 얻기 위하여 서백을 찾아갔다. 그런데 주나라에 도착해서 보니 우선 사람들의 표정부터가 달랐다. 이들은 서로 웃으면서 밭의 경계를 양보하여 농사를 짓고, 젊은이들은 연장자에게 공손하며 무엇이든 양보하는 것이었다. 우와 예 사람들은 그만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처럼 다투는 일을 주나라에서는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데, 서백을 만난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말을 꺼내기도 부끄럽다.”하고는 그대로 되돌아가서 서로 양보하고 헤어졌다. 이 소문이 퍼지자 전국의 제후들은 “서백은 아마 천명을 받은 군주인가 보다.”라고 말하며 한층 급속히 서백에게 몰려들었다. 이 일이 있은 직후 40여개의 제후국들이 스스로 서백을 왕으로 받들고 귀순했다. 후대의 시인들은 이 해에 서백이 천명을 받았다고 노래했다.

서백이 얻은 인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여상(呂尙), 강태공이다. 여상은 본래 동해(지금의 산동성 근처) 사람으로, 선조는 하나라 우임금이 물길을 다스릴 때 공을 세우고 여(呂)와 신(申)을 봉지로 받아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여상이란 이름은 이 땅 이름을 딴 것이며 본래 성은 강(姜)씨다. 이무렵 여상은 가난하고 연로했으나 위수(渭水)라는 곳에서 낚시하면서 서백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날 서백이 사냥을 나가려고 점을 쳤는데, 괘를 풀어보니 ‘오늘 잡을 것은 용도 이무기도 아니요, 호랑이나 곰도 아니다. 패왕의 보필을 얻게 될 것이다.’ 하는 풀이가 나왔다(서백은 고대에 복희씨가 전해준 역(易)의 8괘를 이용하여 64괘로 만들고 각 괘마다 설명(卦辭)를 붙여 주역(周易)으로 완성시킨 장본인이다).

서백이 무리를 이끌고 가다가 위수에서 낚시하던 노인을 만났다. 범상치 않은 풍모에 여러가지 말을 나눠보니 역시 비범한 현인이었다. 서백이 말했다.

“우리 선대의 태공(太公)께서 이르기를 ‘장차 성인(聖人)이 주(周)에 올 것이며, 주나라는 그로 인하여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선생이 진정 그 분 아닙니까. 우리 태공께서 선생을 기다린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서백은 여상을 수레에 함께 태우고 돌아와서 스승으로 삼았다.

여상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다. 태공망(太公望)이라 한 것은 서백의 선조 태공이 바라던 인물이라는 뜻이고, 뒤에 사상보(師尙父)라 불린 것은 사(師)라는 직책을 가진 여상(呂尙)을 높여 부른 말이다. 본명이 자아 강자아(姜子牙)였으므로 강태공이라고도 불렸다. 강태공 여상을 얻음으로써 서백은 비로소 새 나라 창업이라는 거대한 소망에 돛을 달게 되었다.


- 이야기 Plus
한 사람의 왕이 태어나기 위해 그를 돕는 킹메이커가 중요함은 이미 강조한 바 있다. 주나라가 중국 최초의 역사시대 통일왕조로 등장하는 데는 태공망 여상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주왕(紂王)의 폭정으로 이미 세상은 혼란해져 있었지만, 서백은 서두르지 않았다. 꾸준히 덕업을 쌓으면서 성인과 인재를 모으는데 한평생을 다 바쳤고, 그래도 세월이 허락하지 않자 그 영광의 순간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선대의 기반과 자신의 덕행, 지혜와 인내, 그리고 제후들의 존경과 백성들의 마음을 다 얻고도 천명을 기다렸으며, 선대로부터 기다리던 성인을 얻은 뒤에야 준비가 끝났다. 주나라가 단 몇 세대만에 망하는 어떤 나라들과 달리 천년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그만큼 오래고 신중한 준비와 공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가 원하고 민심이 부르는 리더. ‘준비된 지도자’란 바로 이런 지도자가 아닐까.


우와 예 사람들이 서로 다투다가 서백을 찾아갔다. 주나라에 와서 보니 사람들은 서로 밭의 경계를 양보하며 농사짓고, 젊은이들은 노인을 공경했다. 그들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서로 양보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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