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층의 재발견

산업 / 유상석 / 2013-04-08 11:19:30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직장인 김모(35) 씨의 신혼집은 아파트 1층이다. 결혼 전 소위 ‘로열층’에서 살다 왔다는 그는 “1층에서 살아도 불편함을 전혀 못 느낀다”고 말했다. 필로티(아파트 1층에 기둥을 세워 건물을 들어 올린 후 만들어지는 공간) 설계를 적용한 구조 덕분에, 1층이라곤 해도 다른 아파트의 2층 높이와 같다. 사생활 노출에 대한 걱정이 없고, 소음은 오히려 덜하다.
출퇴근 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 편리하고, 엘리베이터 이용료를 내지 않아 관리비도 싸다. 김 씨는 “나중에 아이를 낳아도 층간소음 피해를 끼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동안 왜 로열층만 고집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건설사들이 최근 아파트 1층에 필로티를 적용하면서,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저층 아파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한 아파트 단지의 필로티 모습.
◇ 필로티 덕, 저층 인기 쑥쑥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1층을 비롯한 저층 아파트의 인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주택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실속을 챙길 수 있는 저층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건설사들이 아파트 1층에 필로티를 적용해 실제 2층 이상의 높이에 1층이 조성되면서 저층에 대한 수요자들의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다. 아파트 저층은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고, 조망도 좋지 않은데다, 거실 창으로 집 안이 들여다보여 사생활침해가 우려되는 탓에 그동안 낮은 선호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공급되고 있는 아파트들은 설계 때 1층을 필로티 스타일로 비워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이를 통해 1층에서도 단지 내 조경과 녹지에 대한 조망권까지 확보할 수 있다.
필로티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원래 1층이 있어야 할 공간에 새로운 공간이 생김으로써 다양한 보행동선이 확보되고, 단지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쾌적해진다. 필로티 공간에 입주민 커뮤니티 시설이나 기타 공용사용 시설을 설치해 생활편의도 도모할 수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필로티 적용으로 저층들은 단지 내 조경수 등이 가까워 전원 느낌이 들뿐만 아니라 일반 1층보다 햇볕도 더 많이 들어온다”며 “건설사들도 이제는 필로티는 물론 녹지와 조경에 신경 쓰는 등 저층특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 저층 아파트 가격, ‘로열층’ 역전
부동산 정보사이트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거래된 아파트의 39%가 저층이다. 10채가 거래됐다면 4채가 저층 아파트였던 셈이다. 수도권 거래량만 따지면 35%가 5층 이하다.
단지별로 저층 거래 비중이 더 높은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 1월 기준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9단지 아파트는 모두 4건 거래됐는데 이중 3건이 저층이고, 14단지 거래량 5건 중에서도 3건이 저층이다.
김은선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저층 아파트는 고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고 중소형 크기가 많아 거래가 더 활발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층에는 대형보다 중소형 비중이 높다. 건설사가 저층엔 실수요 차원의 소형 위주로, 고층일수록 조망권을 강조하면서 고급 대형 아파트 중심으로 배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층수별 거래된 아파트의 면적 비중을 보면 저층 거래량 가운데 89%가 전용면적 85㎡ 이하의 중소형이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최근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중소형 주택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저층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저층에 수요가 몰리면서 시세는 점차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서울에서 저층 아파트의 평균 거래가는 중ㆍ고층보다 오히려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1㎡당 거래가격 기준 서울의 5층 이하 아파트는 584만원인데 비해 6~10층은 549만원, 11~15층은 554만원을 각각 기록했다.


◇ 실수요자 중심으로 계속되는 인기
저층의 이미지는 중장기적으로 많이 개선될 전망이다. 특히 기피대상으로까지 여겨졌던 1층의 위상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요즘 분양하는 아파트의 1층은 필로티로 높이는 것은 기본이고, 발코니 무료 확장이나 테라스 설치 등 추가 공간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준공할 경우 이런 추가 공간이 시세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1층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는 길을 열어주려 하는 움직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토부는 최근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현재 근린생활시설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지하층을 1층 주민이 전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주택시장이 투자 수요가 아닌 실수요자 중심으로 움직이면 저층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실수요자가 선호하는 중소형이 많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본부장은 “저층 아파트는 자산 가치 상승을 목표로 단기 투자수익을 노리고 매입하는 대상은 아니다”면서도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가 할인 등 실속을 챙기는 차원에서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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