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경기 불황 속에서도 ‘TV홈쇼핑’ 산업은 계속 호황세를 이어가고 있다.
리모컨과 전화 한 통이면 원하는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편리한 방식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홈쇼핑은 합리적인 가격과 만족스러운 품질을 내세우며 점점 다양한 분야로 판매 상품군을 넓혀가고 있다.
전체 홈쇼핑 시장이 커지는 만큼 1위 자리를 둔 홈쇼핑업계의 싸움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루 20시간 이어지는 생방송 내에서 1초 안에서도 치열한 마케팅 전략을 펼쳐내야 하는 홈쇼핑 시장에는 어떤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홈쇼핑업계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관계자들을 통해 홈쇼핑의 ‘ON AIR’ 그 너머를 조명해 보았다.

◇ “마음에 안 들면 반품” 신뢰감 높여
“지금 바로 결정하세요!”, “단 한 번도 없던 방송 조건,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홈쇼핑 방송을 애청하지 않는 시청자라도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멘트다. 시청자들의 구매 욕구를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해 각 쇼핑호스트들은 시간대와 주 시청자 층을 고려한 적절한 방송멘트를 구사한다.
하지만 쇼핑호스트마다 주로 사용하는 멘트는 조금씩 다르다. 어떤 쇼핑호스트는 ‘여러분’을 사용하지만, ‘고객님’을 애용하는 이도 있다. 대본이 따로 없기에 방송멘트에도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만 있을 뿐 정해진 규칙은 없다.
“마음에 안 드시면 반품하세요”라며 반품을 독려(?)하는 멘트 역시 역으로 시청자들에겐 신뢰감을 갖게 하는 말. 류재영 CJ오쇼핑 쇼호스트는 “솔직히 입어보지도 만져보지도 않고 홈쇼핑에서 옷을 사는 고객들이 참 고맙다”며 “입어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반품하시라는 멘트를 가장 많이 쓴다”고 설명했다.
홈쇼핑은 한 상품이 시간당 최소 2억원 이상 판매돼야 물류 택배비, 방송 송출비, 제작인건비, 콜센터 비용을 제외한 수익운영이 가능하다. 최근 시간당 10억~20억원이 판매되는 초히트 상품까지 등장한 것은 좋은 상품과 함께 치열한 홈쇼핑업체의 마케팅 전쟁의 결과인 것이다.
한 홈쇼핑업계 관계자는 “홈쇼핑 방송 자체도 하나의 상품”이라서 “색다른 기획으로 한 홈쇼핑사에서 성공을 거두면 비슷한 포맷으로 본떠 만든 방송을 비슷한 시간대에 경쟁사에서 내놓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같은 상품이라도 시간에 따라 다른 멘트
같은 상품을 팔더라도 방송 시간대에 따라 상품 설명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리 용기를 방송해도 새벽 시간이라면 주 고객층인 50~60대를 겨냥해 손자 손녀를 위해 아들과 딸네 집에 한 세트 선물해주라는 식이다.
만약 주말 저녁이라면 함께 시청하고 있을 맞벌이 부부를 겨냥해 “퇴근해서 밥상 차릴 시간 없으시죠? 이제는 여기에 담아 냉장고에 미리 넣어두고, 식사 시간에 맞춰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끝”이라는 멘트를 한다.
◇ 시간대 고려한 ‘맞춤형 편성’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상품 수만 한 주에 100~200개를 넘나든다. 여기에 시즌마다 특화된 상품을 소개하고 주기적으로 상품 편성을 바꾸기 때문에 홈쇼핑 상품은 점점 더 가짓수가 늘어나고 있다. ‘못 파는 상품이 없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백화점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까지 늘어나고 있다.
수많은 상품을 다루지만 주어진 시간대에서 오직 단 한가지의 상품만을 팔 수 있는 홈쇼핑 방송의 특성상 어느 시간대에 어떤 상품을 파느냐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 백화점과 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상품을 잘 팔기 위한 진열 방법이 있듯 홈쇼핑에서도 시간이나 계절, 요일별로 가장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을 편성하고 있는 것. 옷을 입을 때 고려해야 하는 T.P.O(Time, Place, Occasion) 법칙이 홈쇼핑 방송 편성에도 작용하는 것.
가장 기본적인 기준 중 하나는 홈쇼핑 역시 TV매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일반 시청자들의 TV시청 행태가 홈쇼핑 방송 편성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김수택 GS샵 편성전략팀 부장은 “시간대별로 고객의 시청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이에 따른 맞춤 상품 편성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의 시청자 층과 마찬가지로 홈쇼핑 역시 새벽과 아침은 중장년층 고객이 많고, 오후에서 심야 시간까지는 20~30대 초반의 젊은 고객들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이에 맞춰 새벽과 아침 시간대에는 건강식품, 안마의자, 온열매트와 같은 건강용품이 주로 배치되고, 낮 시간에는 전업주부들을 위한 상품, 심야 시간에는 유행에 민감한 젊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하는 패션, 이미용품, 디지털 상품들이 주로 편성된다.
같은 주부층이라도 연령층에 따라 오전과 오후 시간대로 고객층이 나뉜다고 한다. 오전에는 20~30대 초반의 젊은 주부들이, 오후에는 30대 중반 이상의 주부들이 주 타깃. 어린 아이를 둔 젊은 주부들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에 바빠지기 때문에, 이 시간대에는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30대 중반 이후의 주부들이 주 고객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전에는 교육상품, 화장품, 생활용품, 침구류 등을 편성하고, 오후에는 다소 가격대가 있는 보석, 패션, 명품 잡화 등을 배치한다.
오후 시간에 명품방송을 편성하는 것은 고가 상품의 구매를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는 시간대라는 점도 작용한다. 현대홈쇼핑의 경우 매주 화요일 낮 12시~오후 3시 사이에 에트로, 버버리, 프리마클라쎄 등 명품 브랜드만 선보이는 ‘클럽노블레스’를 고정 편성하고 있다.
현대홈쇼핑 측은 “명품 핸드백은 수십만~수백만원에 이르는 고가 상품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여유를 가지고 구매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오후 시간에 편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녁식사 전 시간대에 주방용품이나 식품방송을 배치하는 것도 편성의 기본 전략이다. 현대홈쇼핑에서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정형돈의 ‘도니도니돈까스’ 역시 오후 5시 무렵에 편성돼 저녁식사를 앞둔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이어 밤 시간에는 컴퓨터와 대형가전, 레포츠, 가구 등 남성고객과 온가족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동상품이 주로 편성된다.
황규란 GS샵 홍보팀 차장은 “같은 가전이라도 김치냉장고, 냉장고, 소형가전제품은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낮에 주로 편성되지만, 주말에는 온가족이 상의해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고가의 가전제품과 디지털 상품이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 2주 간 기상정보 미리 받아 반영키도
방송 편성에는 계절적인 요소도 고려된다고 한다. 주어진 시간에 한 개의 상품밖에 팔지 못하기 때문에 계절이나 날씨도 상품 편성의 중요 기준이 된다. 활동이 많은 봄과 가을에 등산복 편성이 늘어나고, 같은 레포츠 상품이더라도 봄과 가을에는 워킹슈즈와 등산화 위주로, 추운 겨울에는 실내운동기구, 초여름에는 복근강화기를 편성하는 식이다.
홍석우 CJ오쇼핑 홍보팀 과장은 “2주 동안의 기상정보를 미리 받아 편성에 반영한다”며 “한 번은 여름에 계속 가물다가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제습기를 급히 편성했는데 시간당 2억원 넘게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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