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 대학들이 화답해야 한다"

오피니언 /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 / 2011-05-30 11:40:48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이해득실의 판단이다. 이것이 있어서 이롭다거나 이것을 해서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일에는 적극성을 보일 것이요, 이것이 해롭다거나 이 일을 해서 손실이 날 것이라고 판단되는 일은 아무래도 기피하는 게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런데 이해득실의 판단은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당장 빵 한 조가리가 아쉬운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면 빵의 값은 급격히 올라가게 될 것이다. 아직도 며칠을 더 사막을 걸어야 하는데 가진 것이 황금 한 덩어리 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그것을 물 한 모금, 빵 한 덩어리와 바꾸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빵 한 덩어리의 값이 어디서나 유지될 수는 없다. 먹을 것이 즐비한 풍물시장 한 복판에 와서는 동전 몇 푼과 바꿔도 아깝지 않은 물건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어떤 사물이나 행동의 가치는 때와 장소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여론의 저울대 위에 올려진 상품은 바로 ‘지식’이다. ‘지식 거래기관’으로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대학의 등록금이 ‘해도 너무하게’ 올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교수와 학생이 있으면 칠판과 백묵 하나만으로도 지식을 전수할 수 있다는 인문 사회계열의 한 학기 등록금이 1천만 원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칠판을 걸기 위한 건물이 필요할 테고 그 건물을 세울 땅값이 이만저만 비싼 것도 아니며, 교수들의 월급은 이 직업의 사회적 위상을 고려할 때 낮은 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땅이나 건물은 한 학기 만에 본전을 뽑아야 할 만큼 자주 사고파는 게 아닌 고정자산이다. 교수의 숫자는 학생 숫자를 능가하지도 않으며, 그나마도 많은 대학들이 법적 기준마저 무시한 채 높은 비율의 교수요원을 인건비가 적게 드는 시간강사로 메꾸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뿐인가. 정부 지원금도 있다. 실제로 많은 대학들이 이 덕에 연간 수백억의 흑자를 내고 있다.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사립대학들은 2009년 기준으로 한해 5백억 원 이상의 예산이 흑자로 남았다. 전국 대학평균으로 320억 원씩 남겼다고 한다. 이런 돈이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이나 장학금, 또는 교수 채용 비용 등으로 사용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 대학들의 장학제도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열악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들은 예산 흑자의 대부분을 비축해 교육비용과 상관없는 재단의 수익원으로 굴리고 있다. 적립금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사학재단도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시골이나 유명 관광지 등에 연수원이니 별장이니 하는 명목으로 땅을 사두는 예도 많다. 명색이 대학이 사회악으로 불리는 땅 투기까지 서슴지 않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대학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느 때보다 시장의 경제가 위축되고 가계부채는 사상 유례 없이 올라가 시민경제가 위태로운 지경이라는 현실도 그들은 무시했다. 대학들이 이런 와중에도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합리적 이유라도 있을까. 이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전국의 4년제와 2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설문(2009년 9월) 결과가 답을 해주고 있다. 합리적인 원가분석을 통해 등록금을 결정한다는 대학은 23.3%에 불과했다. 전공이나 계열별 원가분석을 통해 차등의 기준을 마련한 경우는 7.1% 밖에 안된다. 절반 정도의 대학들이 지난해보다 올해는 몇 퍼센트를 올리자는 식으로 등록금을 결정한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올려 예산이 남아돌고, 적립금이 수천억 원씩 남아돌아도 이듬해에는 다시 주먹구구식으로 등록금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은 고사하고 지성의 전당이라는 말조차 아까운 지경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부모를 조르거나 야근 아르바이트, 술집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대학진학에 목을 매는 것은 그만큼 대학 졸업장이 사회활동의 필수품이 된 사회현상에도 원인이 있다. 사실 등록금은 지식을 얻는 값이기 보다 졸업장을 얻는 가격일지도 모른다.
서양 최초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는 귀족의 자제들에게만 입학을 허용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정신이 노예나 평민, 귀족과 같은 신분의 차별을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당한 제도로 여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차별은 오늘날의 가치에 들어맞지 않는다. 플라톤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는 오늘날까지도 공처가로 유명하다. 역사가 인정하는 위대한 스승이었지만,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대가를 절대 받지 않아 늘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지식을 사고파는 것은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이나 교수들이 소크라테스 같은 결벽을 기대하거나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등록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이제 지나칠 정도에 이르렀다. 결국 경제력으로 입학의 문턱을 삼는, 새로운 신분차별도 되는 셈이다. 평등한 교육기회라는 철학에도 어긋나고 합리적 사유도 결여한 채 관습적으로 해마다 등록금을 인상하는 대학들은 이제 사회 여론의 질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높은 대학 등록금의 타당성을 놓아둔 채 정부지원만으로 교육평등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오죽하면 평소 견원지간인 여야 정당들이 이번만은 한 목소리로 반값 등록금을 외치고 있겠는가.


[상임 논설위원] peacepress@hanmail.net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