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라. 나를… 우리를…

오피니언 / 정해용 / 2012-06-15 18:48:32
정해용의 세상읽기

검은 집에 사는 사람은 검은 세상을 보고, 하얀 집에 사는 사람은 하얀 세상을 보게 되지 않을까. 하루 이틀 정도는 검은 세상도 있구나, 하얀 세상도 있구나 하면서 자기 공간을 다양한 공간 중 하나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집 안에 오래 틀어박혀 살다 보면 어느덧 세상을 까맣게, 혹은 하얗게 보는 눈이 생길 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자기 눈에 보이는 것 외의 세상에 대해서는 점차 잊어버린다. 세상은 하얗다든가 세상은 검다든가, 세상이 밝다든가 세상이 어둡다든가 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다.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적응력이 가져다주는 결과일 것이다.


모처럼 강원도 오지를 찾아 여행 중이다. 산야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다양한 차이를 갖고 있다. 예쁘다고 할 만큼 정성스럽게 정돈된 밭이 있는가 하면, 심은 작물이 듬성듬성한데다 잡초마저 우거져 차마 밭이라고 하기 힘든 밭도 있다. 작물이 좀 더 튼실하게 자라난 밭이 있는가 하면, 위태로울 만큼 시들어가는 밭도 있다. 다가가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차이들이다. 그래서 결과도 미세할까. 어떤 밭은 많은 수확으로 결실을 맺고 어떤 밭은 본전 건지기도 힘든 결실로 끝이 날 것이다.


넓은 밭에 노인 한두 명이 엎드려 김을 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농촌으로서는 지금이 가장 바쁜 철이다. 감자밭은 하얀 꽃이 한창 피었다. 이때쯤 꽃송이를 따주어야 감자가 튼실하게 굵어진다고 한다. 그냥 내버려 둔 밭들도 있다. 손이 모자라는 모양이다. 이런 사정을 자동차로 휙 지나가며 보는 사람들은 잘 알 리가 없다. 다가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다가가서 보면 얻어지는 것이 많다. 세상의 돌아가는 실정을 알 수 있다? 이런 피상적인 것 말고도 얻어지는 것이 많다. 내 세상에 갇혀 차마 깨닫지 못했던, 더 많은 세상을 깨닫게 된다. 사실, 그런 풍경도 한 때는 내 삶의 주변이었다. 지금은 잊어버린 기억들도 돌아온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흠뻑 젖으면서 뛰어가던, 이런 기억도 되살아난다. 적어도 수십 년의 세월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여행의 묘미다.


하루 종일 밭에 엎드려 앉은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땀이 한 포기 감자나 파를 거두기까지 뿌려졌을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뿐인가. 아직 그 옛날의 시간이 고스란히 현재진행형인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까마득한 옛날인 양 잊고 살았는가. 이렇게 내 자신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뉴욕의 다우지수는 자동차와 전자의 실적이 증시 전반의 하향세를 버텨내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2분기 영업 이익의 대부분을 자동차와 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1분기보다 1조원 가량 늘어난 6조7천억원으로 예상됐고, 현대차와 기아차도 약 2조2천억원과 1조2천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0~20% 이상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반면에 이 세 종목을 제외한 전체 상장사들의 순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더욱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상장기업들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이렇듯 뚜렷한 물증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초고속 통신망)는 세계 제일이다. 그것도 2위와 비교가 되지 않게 빠른 속도다.


앞서가는 쪽은 세계 제1로 앞서가고 있으나 뒤처진 쪽은 비장감이 감돌 정도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비용 대비 수익이 너무 낮아 어깨가 처진 농민들, 손님이 없어 폐업하거나 휴업중인 식당들.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바닥의 경기는 극한에 가까워보인다. 가는 곳마다 ‘경기가 안 좋아서’라는 푸념을 들을 수 있다. 밑바닥 시장경기의 현실이다.


잘 되는 쪽은 ‘어렵다’는 말을 이해 못하고 다른 한 쪽은 ‘호시절’이란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같은 ‘극대 극’의 경기 현상도 마냥 지속되다 보면 그게 각자의 세상이 된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좋은 시절도 올 것이란 희망이 버팀목이 되고, 잘 되는 쪽은 어려운 쪽을 이해함으로써 함께 행복한 세상을 향한 나눔의 의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심화되거나 더 오래 지속된다면, 밝은 쪽은 어두운 쪽을 이해 못하고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을 이해 못하는 극단적 양극화가 고착되어갈 것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로서의 사회는 하나의 고무줄에 매달린 동행자들이다. 고무줄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앞 사람의 속도와 뒷사람의 속도 차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고무줄은 더욱 팽팽하게 긴장될 것이다. 그것이 끊어지는 것은 비극이다.


속도가 너무 벌어지지 않기 위하여, 돌아보아야 한다. 하얀 집에 사는 사람은 검은 집도 있다는 것을, 검은 집에 사는 사람은 하얀 집도 있다는 것을. 자기 집에 갇히지 않도록 돌아보고 서로 접근하면서 이 넓은 세상의 다양함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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