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우리가 아는 진실은 몇 퍼센트나 될까

오피니언 / 정해용 / 2012-06-08 18:33:52

‘2대8 법칙’이라는 게 있다. 100년전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가 말한 ‘20%대 80%의 법칙’과 같은 말이다. 100여년전 파레토는 자기나라 국토의 소유현황을 조사했다. 결과, 이탈리아 국토의 80%는 돈 많은 상위 20%의 국민들이, 나머지 20%의 땅을 나머지 80%의 국민이 나눠 갖고 있더라나. 이후에 ‘20대 80’이라는 숫자를 기준으로 여러 학자들이 여러가지 자연현상, 사회현상 분석을 시도했고, 그 결과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그에 근사하는 현상들이 여러 분야에서 보고되었다.


이를테면, 꿀벌의 생태를 관찰하던 학자들은 벌통을 관찰해보면 드나드는 꿀벌 모두가 열심히 꿀을 모아 나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열심히 일하는 꿀벌은 전체 꿀벌의 2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대충 일하거나 놀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에 읽은 책에서 어느 곤충학자들이 주장한 바를 보면 사람들에게 성실의 상징으로 오해(?)받고 있는 일개미들도 사실은 3교대로 일을 한다고 한다. 동일 시간대에 열심히 먹이를 찾아 나르는 개미들은 하나의 군집 가운데서 1/3 뿐이고 나머지 개미들은 그 시간에 잠을 자거나 하는 일 없이 주변을 쏘다니며 놀고 있다는 것이다. 20%든 1/3이든 정확한 비율이 중요한 건 아니다. 전체 집단 가운데서 실제로 ‘돈 되는’일을 하고 있는 숫자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꿀벌학자의 보고나 개미학자의 보고나 매한가지다.


이런 흥미로운 보고를 보고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2대8 이론은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되었다. 10명이 일하는 팀에서 중요한 일은(혹은 많은 일은) 핵심적인 2명이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10시간을 일한다면, 실제로 일에 투여되는 시간은 2시간이고 나머지 8시간은 일을 준비하거나 쉬거나 주의력이 흐트러져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기업 매출의 80%는 20%의 효자 상품에서 나온다. 식당 매출의 80%는 단골 고객에게서 나온다. 영업 매출의 80%는 실적 상위 20%에게서 나온다 등등. ‘2대8 법칙’은 ‘2대8 가르마’만큼이나 흥미로운 여러 가지 주장들로 뒷받침 되었다.


그렇다면 기여도가 높은 상위 20%의 사람들만을 모아 ‘드림팀’을 만든다면 매출은 그 만큼 상승하게 될까. 물론 능력 있는 정예팀은 더 많은 실적을 낼 수 있겠지만, 모아놓은 우수사원의 숫자만큼 실적이 산술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떻게 조직을 새로 만들든, 그 가운데서 다시 우수한 20%와 나머지 80% 현상은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꿀벌 20%만을 따로 모아 새로운 벌통을 꾸며놓으면 그 벌통 안에서 다시 일하는 20%와 열심히 일하지 않는 꿀벌 80%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일하는 20%를 제외한 나머지 80%의 꿀벌만 남은 벌통에서는 곧 그중 20%가 부지런히 일하는 꿀벌로 바뀌게 된다(어떤 조직에서 일하지 않는 나머지 80%는 쓸모없는 인원이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앞에 말한 개미 연구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20~30%의 개미들이 일하는 동안 나머지 개미들이 놀러 다니는 것은 뇌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하는 개미와 일하지 않는 개미들이 역할을 교대한다. 놀아야 할 시간에 제대로 놀지 못한 개미들은 나중에 일할 시간이 되어도 제대로 일을 못하게 된다고 한다).


2대8 법칙은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고 있는 정보의 범위에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자기 전문분야가 아닌 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 알지 못한다. 대략 20% 정도를 인식한다면 다행이다. 이를테면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이 최근 음성서비스(보이스톡)를 제공하기 위해 가입자들로부터 사용 신청을 받았지만, 정작 그러한 사실을 알고 신청한 사람은 가입자들 가운데 20%를 넘지 못한 것 같다. 오늘의 톱뉴스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전체 시민의 20%나 될 테고, 그 가운데 뉴스의 그 뉴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뉴스를 들은 사람의 20%나 될지 모를 일이다. 신문방송의 뉴스가 드러내는 사회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과 현상의 20%가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매일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대해 일반이 인지하는 사건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어떤 사람이 나쁜 짓을 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한 짓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고작해야 20%가 넘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떤 훌륭한 사람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 그에 관해 아는 것 역시 20%가 되기도 어렵다. 단지 그것으로 우리는 누가 훌륭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다. 나쁘다고 소문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모르는 나머지 80%가 얼마나 훌륭할지, 훌륭하다고 소문난 사람의 나머지 80%가 얼마나 추악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결론짓자면, 고작해야 진실의 20%도 알기 어려운 어떤 일을 위하여 쉽사리 목숨을 걸거나 어떤 사람에 대하여 쉽사리 죽이자 살리자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아직 모르는 80%의 진실을 염두에 둔다면, 세상에는 그리 흥분할 일도, 그리 낙심할 일도 없을 것이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