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파맛 시리얼'은 어쩌면 켈로그의 마케팅 성공사례가 아닐까

기자수첩 / 김시우 / 2020-06-18 17:42:56

[토요경제=김시우 기자] 전 세계 23위, 아시아 1위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부정투표와 장기집권으로 논란이 된 곳이 있다. 바로 농심켈로그의 첵스나라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4년, 농심켈로그에서 아주 색다른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자사 시리얼인 첵스초코의 나라를 가상으로 만들어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더 진하고 부드러워진 밀크 초코맛 ‘체키’와, 무언가 악역 느낌의 파맛 ‘차카’. 두 후보를 내세운 켈로그는 대통령으로 뽑힌 후보가 광고하는 맛의 첵스를 생산하기로 했다.


대개 파를 싫어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이 대결은 켈로그가 의도한 대로 체키가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 이 이벤트 내용이 알려진 다음 날부터 득표 상황이 갑자기 달라졌다. 파맛 차카 후보에 몰표를 주기 시작했고 점차 벌어지는 표 차이로 차카가 대통령 당선에 유력했다.


그러나 농심켈로그는 자신들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자 무효표를 걸러낸다는 이유를 대고 정보보안업체까지 동원해 차카의 표 가운데 중복된 4만 2천여 표를 삭제한 것도 모자라 ARS와 현장 투표를 추가해 ‘체키’의 당선을 공표했다.


당시 누리꾼들은 부정선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부정선거의 피해자가 된 ‘차카’를 지지하고, 부정선거를 규탄한다는 글이 온라인 이곳저곳에서 올라왔다. 결과가 다시 바뀌진 않았지만, 이 사건을 재조명하는 글은 현재까지도 보이고 있을 정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차카를 민주투사처럼 추대하는 네티즌들의 인터넷 밈(meme)이 생겨나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역대 최악의 부정 선거’라고도 불렸다. 16년 동안 장기집권 중인 체키를 독재자라며 비판하며 2018년에는 청와대에 ‘첵스초코 체키를 탄핵시켜주십시오’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시리얼나라 부정선거 사건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옆 나라 일본에서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초콜릿과 파의 대결이었지만 일본 켈로그는 초콜릿과 와사비의 대결이었다. 거기서도 비슷하게 와사비 후보의 당선이 유력했으나 사측에서 초콜릿맛 후보를 당선시켜 일본 누리꾼들의 빈축을 산 바 있다.


이렇게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가 싶었지만 16년 뒤 2020년 6월17일 농심켈로그에서 파맛 첵스의 출시를 예고했다.


농심켈로그 관계자는 “켈로그 SNS 채널 등에 소비자들의 파맛 첵스 출시에 대한 요구와 관심이 높아 출시하게 됐다”고 밝혔지만 16년 전 ‘부정선거 의혹’은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부정선거 의혹은 사실 무근”이라며 “투표 결과에 따라 초코맛이 이겨서 첵스 초코맛이 출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심켈로그가 ‘파맛 첵스’ 출시를 예고하자 누리꾼들은 환호했다. 여러 포털사이트 댓글에서는 “이것이 자유고 민주주의다”, “차카 선생님, 이제야 초코나라의 국민들도 자유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등의 유쾌한 반응을 보였다.


누리꾼들은 부정선거라고 성토했지만, 결과적으로 켈로그는 무사히 체키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뿐만 아니라 시리얼 홍보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또한 파맛 시리얼을 출시함으로써 차카를 열심히 응원하던 팬 층도 같이 흡수할 수 있게 됐다.


마케팅의 실패 사례라 불리기도 하지만 ‘부정선거’라는 민감한 이슈를 이용하고도 많은 관심과 주목을 불렀으니 시리얼 홍보 성공 사례로 불리는 게 맞지 않을까. 물론 켈로그 측은 아직도 체키가 부당하게 선출된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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