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 고독한 한국의 자화상

오피니언 / 정해용 / 2010-03-22 11:46:02


이천년 전쯤 중동에 살아있는 성자로 추앙받던 예수가 어느 마을에 이르렀을 때, 한 무리의 군중이 마을 한복판으로 여자 하나를 끌고 왔다. 그 중 몇몇이 예수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이 여자가 음행을 하였기에 끌고 왔소. 율법에 따르면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고 했는데, 선생은 이 여자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예수는 평소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쳤다. 오리를 같이 가자하면 십리라도 같이 가주며, 왼쪽 뺨을 때리려는 사람에게는 오른쪽 뺨까지 돌려대며, 남을 사랑하되 원수지간이라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만일 예수가 끌려온 여자를 돌로 치라 하면 자기가 가르친 것을 스스로 뒤집는 셈이 될 것이고, 용서하여 놓아주라고 한다면 그 사회가 수천 년 동안 지켜온 율법과 윤리관습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대 도전행위가 될 것이다. 예수가 한참을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우문현답이다. 의외의 답변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빠졌다. 대체 돌로 맞아죽을 짓을 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고 놓아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하늘 앞에서 맹세코 한 번도 율법을 어긴 적 없이 산 사람은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누구도 자신이 율법에 어긋났던 일을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먼저 돌로 칠 만큼 뻔번하지는 않았다. 한 사람 두 사람 그곳을 떠나더니 더 이상 그 여자를 정죄할 사람은 없었다.
오늘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사내가 여론의 복판에 끌려나와 있다. 그의 죄상을 보면 이천년 전 유대마을의 여자는 차라리 깨끗할 지경이다. 여러 여자를 건드려 음행한 정도가 아니다. 거짓으로 유인하고 힘으로 제압하여 강간한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닌 듯하고, 급기야는 강간하다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녀를 남모르는 곳에 유기하고 숨어 지내다가 붙잡혔다. ‘죄질’이 지극히 흉악하다. 예수가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과연 이 흉악한 범죄자를 옹호하고 싶어 할까. 여론이 분노로 들끓는 것도 결코 어색한 일은 아니다.
더 끔찍한 일은 이런 사건이 단지 부산이란 도시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사내가 체포된 뒤 다른 도시에서도 유사한 사건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흉악해져가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강도 강간 자살 살인 등의 범죄란 태곳적부터 있어왔지만, 그것이 늘상 극성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전설 속의 요순시대처럼 민심이 유순한 태평성대가 있었는가 하면, 질서가 무너지고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져 소위 무법시대라 불리는 시대도 있다.
약탈과 방화 강도 살인이 판치는 지구촌 사회의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종종 듣는다. 주로 전쟁, 내란, 빈곤, 부정부패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른 어떤 현상도 마찬가지겠지만, 사회사건이란 어쩔 수 없이 그 사회의 표상이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흉악범죄의 증가현상은 우리 사회의 안전과 질서가 여전히 신뢰할 만한가를 묻게 한다. 돌이켜보면 가까운 80년대 90년대에도 우리에겐 민심 흉흉한 시절이 있었다. 서울을 비롯한 몇 군데 대도시에서 연쇄방화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 어느 핸가는 장마직후 불쾌지수가 전례 없이 높아진 가운데 걸핏하면 폭력충돌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져 마치 사회가 지구 종말 직전의 히스테리에 빠진 듯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이 전국을 불안하게 하던 때도 있었다.
오늘 여중생을 강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사내 역시 우리 시대의 표상이다. 그 못지않게 그를 향해 쏟아지는 과격한 질타의 양상이나 그를 사모한다는 청소년들의 팬클럽 출현 또한, 어처구니없지만, 우리의 시대상이다.
이 사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길가에 버려졌다. 그 이름도 ‘길에서 태어나’ 길태라 지어졌다는 얘기고 보면,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사회의 보호로부터, 국가 제도의 지원으로부터 소외된 많은 이들이 바로 ‘길태’다. 버림받고 제대로 교양 받지 못한 이들의 비뚤어진 가치관이 뻔뻔하고도 흉악한 범죄를 낳았고, 그 소외에 대한 반발과 분노로 가득한 이들이 ‘길태’를 죽여야 한다고 끔찍한 보복론을 외치고 있다. 자식을 기르되 회초리 아니면 과보호만을 능사로 아는 기성세대의 권위의식은 또 사형제도를 되살려야 한다고 외치지 않는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의미하는 바를, 그리고 이 끔찍한 범죄와 보복의 악순환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건져낼 수 있는 묘안을, 함께 찾아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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