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 없는 산업계 ‘고립무원’

산업 / 민철 / 2017-09-01 17:57:41
통상임금 소송·공정위 전방위 압박 등 산업 생태계 ‘위기’<br>하소연 할 곳 없는 산업계…개혁 흐름 속 ‘눈치보는 정치권’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는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를 '통상임금'으로 인정, 사측이 근로자들에게 3년치 4223억원의 밀린 임금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 기아자동차 공장.<사진=연합뉴스>

[토요경제=민철 기자]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경제 주체인 산업계가 각종 악재에 발목 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문재인 정부 들어 산업계의 생태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모습이다.


산업계 호소의 목소리는 이곳저곳에서 외면 받고 있어, 나라의 경제 주체인 산업계는 말 그대로 ‘고립무원’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지난달 31일 법원은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한 노조에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노조가 청구한 급여 중 정기 상여금과 중식대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이번 기아차의 통상임금 판결은 산업계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됨에 따라 관심이 집중됐었다. 정기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하는 지를 가르는 이번 판결로 산업계는 막대한 비용을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당장 기아차의 추가 인건비는 약 1조원 가량에 이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2013년 내놓은 ‘통상임금 산정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기업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 규모는 최대 39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막대한 추가 비용 발생은 기업 생존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은 단순히 대기업만 국한된 게 아니다. 우리 경제의 허리 담당하고 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통상임금 파장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의 임금의 50~70% 수준인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간 임금 격차가 더욱 벌어져 중소기업 근로자가 오히려 ‘통상임금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인건비 상승으로 중소기업 경영 환경을 한층 악화시킬 수 있다.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 기아자동차 공장 앞에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을 촉구하는 노조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사진=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 재벌을 향해 개혁의 칼날을 빼들면서 산업계를 더욱 위축시키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대기업 전담조직 신설에 이어 기업분할명령제도 도입, 전속고발제도까지 개편키로 하는 등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이와함께 공정위는 독점기업을 강제로 여러 개로 쪼개는 기업분할명령제 도입도 검토하고 나섰다. 기업분할 명령제는 경제력 집중이 과도한 기업의 규모를 강제로 줄이는 제도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최저임금 및 법인세율 인상과 나아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산업계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로 우리 기업의 비용 구조와 경영환경 악화와 수익 부진으로 이어진다면 국내 기업 입장에선 해외 이전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이 때문에 나온다.


실제 기업들의 경제 심리는 바닥을 치고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ㆍBusiness Survey Index) 조사 결과, 9월 기업경기 전망치가 94.4를 기록했다. 기준선(100)을 밑돈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16개월째로,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간이다.


한경연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중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보복, 통상임금 등 여러 위험 요인이 결합되면서 기업들의 기대감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산업 분야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인 데다 국내적 기업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부담이 한층 가중 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재벌에 대한 개혁도 필요하지만 산업계의 애타는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렇듯 통상임금 등 악화된 국내 산업 환경에 대한 해법과 대안 모색에 나서야 할 정치권은 ‘기업의 경영활동 위축 우려’라는 원론적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할 경우 문재인 정부의 개혁 흐름 속에서 자칫 ‘반(反)재벌 개혁·친(親)재벌’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적폐 청산 등 개혁이란 시대적 흐름 속에서 각 정당이나 의원들이 재벌이나 산업계를 옹호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한 뒤 “통상임금에 대해 항소심이 남아있는 만큼 국회 차원에서 제도적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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