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무리수' 알면서도 KBS 길환영 '밀어붙이기'

산업1 / 박진호 / 2014-05-22 18:40:21
사태 해결 위해 해임 불가피, 해임 시에는 방송장악 인정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사장에게 물러날 것을 종용하는 노동조합의 외침이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격에 있어서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양대노조가 같은 소리를 내고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여기에 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인원들이 동참을 하고 있다. 직종과 직위, 연차를 구분하지 않고 많은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길환영 사장 퇴진에 중지를 모은 KBS 사태의 모습이다.


기자와 PD 등 300명에 가까운 간부들이 보직 사퇴를 걸고 사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길 사장이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훼손하고 보도국을 정권에게 종속시켰음을 성토하고 있다. 이에 청와대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언론장악 의미 없다던 박근혜 정부
“방송장악을 할 생각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인터넷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정부조직개편과 맞물려 종합유선방송(SO)에 대한 통제권을 두고 국회에서 여야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지던 시점에 이와 같이 천명했다. 또한 대선 후보시절부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며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지난 1일 발표한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언론자유지수는 32점으로 68위에 머물고 있다. 프리덤하우스는 우리나라를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월,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14년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도 지난해보다 7위가 떨어진 57위로 평가된 바 있다. 참여정부시절까지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되던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권 들어 40위권 밖으로 큰 폭으로 순위가 하락하며 ‘언론자유국’ 지위를 잃었고, 박 대통령 취임 후에도 꾸준히 하락 추세에 있다.
지난 4월,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발표한 ‘아시아 언론지표(ANMB) : 2013년 한국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정부가 방송통신위원장을 정치권력의 핵심과 지나치게 가까운 인사로 선임하고, 규제 당국 운영이 강한 정파성을 띄고 있어 공평성을 제한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공영방송 역시 “지배구조가 정치적 다수파의 선호에 따라 형성되고, 다수파의 견해에 기초하여 운영된다”고 지적했으며, “대중들의 목소리가 아닌 선임권을 가진 정당이나 권력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박 대통령의 말과는 다른 평가가 외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KBS 보도사태’로 인해 이러한 현실이 낱낱이 밝혀지게 됐다. 특히 이번의 사태는 외부에서 평가한 결과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을 통해 폭로된 사항이라는 점에서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자기비판에서 시작된 KBS의 공영성 회복 몸부림
지난 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사고 이후 미흡한 대처와 총체적 부실 등이 드러나며 해운사는 물론 사고 예방과 후속 구조 조치 등에 책임을 져야하는 정부에게도 화살이 돌아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지킬 능력이 있느냐’는 원론적인 문제에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정부에 대해 엄청난 비난이 폭주했고, 이와 더불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는 현장 상황에 대한 보도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갔다.
기존의 주요 중앙 매체를 중심으로 한 언론은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정부를 강조했지만, 일부 독립 보도 매체들과 JTBC는 현장에서 무능하고 무력하기만 한 대응에 대해 질타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주요 매체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며 울분을 토했고, 이는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가며 혼란을 야기했다. 그리고 결국 KBS 기자들의 양심선언이 이어졌다.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KBS의 38~40기의 막내 기자들이 사내 게시판에 ‘반성문’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성명까지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입사 1~3년차인 이들은 지난 7일, 공동성명을 내고 보도본부 간부들과 기자들이 모두 참석하여 반성하는 대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취재‧촬영 기자 55명 전원이 참여한 이 성명에서 이들은 ‘침몰하고 있는 KBS의 저널리즘을 반성한다’고 말하며, 현장에서 KBS가 국가재난주관방송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하지 못했고, 피해자 가족들의 목소리도 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들이 스스로 제대로 된 보도가 진행되지 않고, 정부가 원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음을 폭로한 것이다.
폭로된 KBS의 정치외압 전모
이튿날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교통사고 사망자와 비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과 관련해 희생자 가족들의 항의가 진행됐고, 결국 김 국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김 국장은 사임과 동시에 길환영 사장의 보도국 간섭을 폭로하고, KBS의 공영성 회복을 위해 길 사장이 퇴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18일에는 ‘보도 외압 일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KBS는 양대 노조가 길 사장이 퇴진하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며 이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하는 한편, 이미 기자협회와 PD협회가 제작거부에 돌입했다. 공영방송인 KBS의 뉴스는 벌써 며칠째 삐걱거리며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기자와 PD등 간부들이 줄줄이 보직에서 사퇴하며 길 사장이 물러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이들은 길 사장이 청와대와 정권에 줄을 대고 이를 이용해 KBS의 공영성을 심대하게 흔들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길환영 사장, “잘못 없다. 못 나간다”
상식적으로 현재의 사태에서 길 사장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KBS는 이미 지난 15일 뉴스를 통해 ‘세월호 보도’와 관련하여 자신들의 태도를 스스로 반성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잘못된 보도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도 이번 논란을 통해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길 사장에 대한 퇴진 요구는 공영방송의 공영성과 중립성 회복이라는 당연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길 사장은 지난 8일,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KBS 여의도 본사로 항의 방문을 왔을 당시, 정부가 이번 사태에 보여줬던 무능한 대응과 너무나 똑같은 태도를 보여줬다. 또한 청와대로부터 ‘세월호 보도’와 관련하여 지침을 받은 적 없다고 주장했지만, 정홍원 총리가 직접 “보도 협조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냐”고 말하며 이 조차도 의미 없게 되어 버렸다.


길 사장은 노조가 파업에 나설 경우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KBS의 공영성 위기라는 최악의 위기 앞에서도 결국 자리보전과 정권 줄 대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KBS는 현재 기자협회 소속 약 500명 중 470명 정도가 제작거부에 동참하고 있으며 부장 및 팀장들도 대거 가세하고 있어 사실 상 정상적인 방송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KBS 지역총국 기자들로 구성된 KBS전국기자협회 200여 명, 촬영기자협회 100여 명도 제작거부에 동참하는 등 역대 유례없는 최대 인파 결집의 사장 퇴진 운동이 전개되고 있어 길 사장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길환영이 아니라 지방선거
결국 길 사장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정부다. 정부 역시 길 사장 체제로 KBS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파악이 끝났다. 사실상 길환영 사장의 거취에 대해 정부가 그다지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길 사장을 물러나게 할 경우, 청와대가 언론을 통제하고 공영방송을 입맛대로 조종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의 분향소 조문과 대국민 담화 눈물 등에서 연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심은 그만큼 신뢰와 멀어졌다. 따라서 지방선거가 지척인 시점에서 수세에 몰린 정부가 물러서는 것도 그렇게 쉬운 선택은 아니다.
지방 선거의 핵심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등 수도권에서의 승리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 후보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20% 가까이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략공천으로 오랫동안 텃밭을 가꿔왔던 이들을 밀어내고 야심차게 기용한 인천시장 후보인 유정복 후보 역시 초반 우세하던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고 현재는 송영길 후보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4~5% 뒤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유 후보는 전임 안전행정부 장관으로서 이번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현 정부의 안전 대책 무능과 관련해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심지어 당선이 유력하다가 믿었던 남경필 후보도 최근 실시된 방송 3사의 경기지사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오차범위내의 추월을 당했다. 특별한 지역별 현안이 없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세월호 참사’ 처리 미흡이 지방선거 참패의 구도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정부, “세월호, 물러설 만큼 물러섰다”
결국 선거 때까지 ‘세월호 정국’을 그대로 둘 수 없는 정부는 다소 강경한 입장 선회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사태’와 관련하여 정치권의 잘못을 인정하고 개탄하며 사과와 함께 바짝 몸을 낮추는 모습이지만 정부는 반대로 강경한 자세로 압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야당과 5‧18 주체가 모두 불참한 가운데 정부 측 인사들로만 자리를 채운 보여주기 식 5‧18 기념식을 강행했고, 침묵시위를 진행하던 ‘세월호 참사 애도 및 진상규명 요구 집회’에 강경대응과 강제연행을 실시했다.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대통령이 기자단 질문을 생략하고 바로 해외 순방에 나서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인데 이어, 경찰은 세월호 유족을 미행하다가 적발된 후 “경찰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다가 “유족을 보호하는 중”이었다고 핑계를 대고는 결국은 사과를 하는 촌극까지 벌였다.
민간인 불법 사찰의 비난을 피하기 힘들지만, 결국 ‘세월호 정국’ 타계를 위해 ‘해경 해체’와 같은 충격요법과 엄청난 깜짝 인사가 동원되는 개각, 그리고 국면 전환을 노릴 수 있는 전면적인 압박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정상화 되지 못하는 KBS의 문제는 결국 상식적인 수순의 결말보다는 의외의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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