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또 분담하라고?

산업 / 이정선 / 2018-04-25 06:09:23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겸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한국GM 사태와 관련, 기자들과 만나 강조했다.

“사측은 중장기적 투자계획을 제시하고, 그 투자계획에 지속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을 포함해 노조를 설득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하고, 노조 또한 국민의 눈높이에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 20일 발언이었다. 김 부총리는 이에 앞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도 비슷한 강조를 하고 있었다.
“노사협의도 이해관계자의 고통분담 원칙에 따라 빠른 시간 안에 타협점에 합의할 것을 촉구한다.”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해서는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이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고통을 분담하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같은 날, 청와대도 말을 보태고 있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관계자 모두가 고통을 분담할 때라는 뜻을 전해드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통 분담’이 되풀이 강조하고 있었다. 거기에 ‘고통 분담의 원칙’이라고 ‘원칙’이라는 말까지 붙이고 있었다.

일리는 있었다. 기업이 어렵고, 나라 경제가 힘들 때에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나눌 필요는 있다. 그래야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고통 분담이라는 말을 듣고 아찔해지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뼈아팠던 ‘고통 분담의 과거사’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신한국 건설’을 주창하면서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고통 분담’을 외친 정권이 국민에게 안겨준 것은 ‘IMF 국치’, ‘외환위기’였다. 국민은 끔찍한 고통을 ‘분담’해야 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중산층은 거의 ‘싹쓸이’를 당하는 고통 분담이었다. 지긋지긋했던 악몽이었다. 아직까지도 당시의 고통을 떨쳐버리지 못한 국민이 적지 않다.

‘고통 분담’은 이명박 대통령도 말했다. 특별기자회견에서 “지금은 기업도, 정부도, 근로자도 모두 한 걸음씩 양보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할 때”라고 했었다.

국민은 다시 한 번 그 호소를 받아들였다. 이른바 ‘잡 셰어링’을 하고, 월급이 묶이고 깎이는 고통을 분담했다. 하지만 고통분담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았다. 되레 악화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고통 분담 얘기를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고통 분담’은 경제정책 면에서도 ‘빵점’일 수밖에 없다.

경제정책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국민을 잘 먹고, 잘 살도록 해주기 위해서 하는 게 경제정책이다. 국민의 배가 두둑하고 등이 따스하도록 해주려고 하는 게 경제정책이다.

국민은 그렇게 해달라고 아까운 세금을 꼬박꼬박 ‘바치고’ 있다. 정책 만드는 공무원은 그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있다. 따라서 공무원은 국민을 잘 먹고, 잘 살도록 해줄 의무가 있다.

국민에게 고통을 골고루 분담시키겠다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살벌한 ‘북쪽 정권’에서도 불가능할 정책이다. 그런데 또 ‘고통분담’이다. 그것도 나라 경제를 총괄하는 경제부총리가 ‘고통 분담’이다.

게다가 국민은 더 이상 분담할 고통도 없는 실정이다. 가계부채는 어깨를 누르고 있다. 청년실업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런데도 ‘고통 분담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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