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정동진 기자] 프랑스의 어떤 연극배우가 평론가에게 막말을 지나치게 쏟아냈다. 평론가는 발끈했지만 '정중한 사과'를 받고 넘어가기로 했다. 다만, 배우가 평론가의 집을 직접 찾아와서 여러 증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사과를 받기로 한 날이 되었다. 평론가의 집에 증인들이 모두 모였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현관의 벨이 정확하게 울렸다. 기다리고 있던 평론가가 문을 열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배우가 머리를 들이밀더니 대뜸 물었다.
“여기가 상인 아무개의 집입니까.”
평론가는 얼떨결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배우가 머리를 깊게 숙이며 사과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마지못한 사과였겠지만, 어쨌거나 정중한 사과였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아마도 적지 않게 황당했을 것이다. 요즈음 용어로 ‘진정성’이 좀 부족한 사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른바 ‘물벼락 갑질’로 물의를 빚은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는 직원들에게 이메일 사과를 하고 있다. 회사 측에서 대기발령 조치를 했는데도 비난 여론은 식지 않고 있다.
사임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 송구스럽다”면서 “대통령님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김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녹화 사과’를 하기도 했다. 미리 녹화되어 있던 화면을 내보냈다는 것이다.
몇 해 전, 어떤 국회의원은 ‘재탕 사과’를 한 적도 있었다. 이미 내놓았던 ‘해명과 사과의 말씀’을 글자 하나도 바꾸지 않은 채 언론 앞에서 그대로 ‘낭독’한 것이다.
‘채근담’은 “하늘에 가득할 만큼 큰 죄도 ‘뉘우칠 회(悔)’ 한 글자를 당해내지 못한다(彌天罪過 當不得一個悔字)”고 했다.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스스로 뉘우치면 그 잘못은 없는 잘못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이다. 국민은 ‘진정한 사과’를 언제 들어봤는지 기억이 아물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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