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도둑’ 간주하던 정책

산업 / 이정선 / 2018-04-17 10:11:11
▲ <사진=연합뉴스>

[토요경제=이정선 기자] 30여 년 전인 1982년 봄,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규모 금융사고가 터졌다. 속칭 ‘장영자 사건’, 또는 ‘장 여인 사건’으로 일컬어졌던 ‘거액어음사취사건’이었다. 당시 권력층과 가까웠던 장영자라는 여성이 수천 억 원의 어음을 사취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기업 여럿이 도산했다.

특히 금융시장에는 시중은행장만 2명이 물러날 정도로 큰 충격을 줬다. 물론 임원과 간부들도 물러났다. 금융업무의 베테랑들이 속속 떠난 것이다. 금융시장은 그야말로 쑥밭이 되고 말았다.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에서 취한 조치가 있었다. 하나는 ‘금융실명제’, 다른 하나는 ‘예금자보호제도’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조치가 ‘순환보직제도’였다. 금융기관의 직원을 한 자리에서 오래 근무하도록 내버려두면 사고를 낼 우려가 있으니 보직을 자주 바꾸도록 한 것이다.

이 조치로 금융기관 직원들은 2~3년마다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바꿔야 했다. 은행원 전체를 마치 ‘도둑’ 으로 간주하는 듯했던 희한한 조치였다.

하지만 순환보직제도는 ‘실패작’이었다.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대형 금융사고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그치지 않았을 정도가 아니라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순환보직제가 금융시장의 퇴보를 불러오고 말았다는 점이다. 2∼3년이 멀다하고 보직을 바꾸다 보니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힘들었던 없었던 것이다. 금융기관 직원은 일을 익힐 만하면 다른 부서로 옮겨야 했다.

더구나 당시는 금융시장의 개방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한 사람의 금융 전문가가 아까운 시점에 나온 ‘거꾸로 된 정책’이었다. 탁상공론이었다.

경제 현상도 ‘역사’처럼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또 비슷한 조치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이 마련한 ‘외부인 접촉관리 규정’이다.

이 규정은 금융기관 검사·제재, 인·허가,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 조사, 회계감리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등이 업무 진행 과정에서 특정 외부인을 만날 경우 5일 이내에 감사담당관이나 감찰실 국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또 특정 외부인이 금융당국 임직원에게 금품을 주거나 각종 청탁을 할 경우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은 해당 외부인과 1년 간 ‘접촉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도 순환보직제도와 어딘가 ‘닮은꼴’처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임직원이 특정 외부인과 만날 경우, 비리나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아예 통제된 상황에서 만나도록 허용하겠다는 식이 그렇다.

국민권익위원회도 비슷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공무원 행동강령’이다.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고 있다.

강령은 현직 공무원이 퇴직 공직자를 사적으로 접촉할 때 사전에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도록 했다고 한다. 공무원이 민간에 금전 출연을 요구하거나 인사·계약 등의 부정청탁을 하는 행위도 금지된다고 했다. 직무 관련자나 부하직원 등에 대한 사적인 업무를 요구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직자들의 행위 기준이 한 차원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막수유(莫須有)’라고 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 있을지도 모르는 비리와 부정을 예방하고 차단하는 조치는 바람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직원의 근무 의욕과 사기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했어야 좋았다. 직원들의 업무를 자칫 위축시킬 것 같은 조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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