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폭군 카다피가 역사에 남긴 교훈

오피니언 / 정해용 / 2011-10-24 13:36:20

독재자가 최후를 맞은 곳은 땅에 묻힌 콘크리트 토관 속이었다. 자신을 뒤쫓은 시민군을 향하여 그는 절박하게 외쳤다. “쏘지마. 쏘지마!” 말이 땅굴이지 어른 한두 사람 겨우 들어갈 만한 비좁은 토관이었다.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 27세에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리비아 국왕을 몰아내고 혁명평의회를 구성한 뒤 무려 42년 동안 철의 권력을 휘둘러온 세기의 풍운아. 부상으로 피가 범벅이 된 토굴 속 카다피 곁에는 그를 지키다 죽은 심복부하의 시신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시민군이 토굴 속에서 끌어내어 병원으로 이송하던 도중 그는 유언도 채 남기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체포되는 순간 그의 손에는 작은 황금 권총이 들려있었다. 최고 지휘관의 손에 들린 권총은 통상 전투용이 아니다. 최악의 순간 명예로운 최후를 맞기 위한 자결용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황금총으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지도 못했다.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은 한 나약한 노인에 불과했다. 그의 죽음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시민혁명의 파도가 성난 해일처럼 여러 나라를 덮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이다. 튀니지에서 혁명이 일어나 23년 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을 몰아낸 뒤 그 여파는 예멘 알제리 이집트 바레인 등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리비아. 다른 어떤 독재자보다도 강고할 것 같았던 중동의 철옹성 리비아에도 혁명의 물결은 뜨겁게 밀어닥쳤다. 카다피는 ‘서방세계에 맞선 아랍민족주의’라는 이념을 방패삼고 ‘시민 반란군’에 대한 무차별하고도 무자비한 보복공격을 창으로 삼아 맞섰지만 끝내 비참한 최후를 면하지 못했다. 수도 트리폴리를 버리고 고향 시르테로 도망가 거기서도 토굴 속까지 피신했다가 체포되는 과정이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말로와 다르지 않다. 그를 체포한 시민군들은 이 ‘역사적인 토굴’ 입구에 푸른 페인트로 갈겨썼다. “쥐새끼 카다피가 숨었던 곳, 신은 위대하시다.” 그가 받은 심판은 백성들에 의한 심판이자 신에 의한 심판이었다.
백성의 지지를 받는 독재자가 오래 권력을 유지한 일은 역사에 적지 않지만, 백성의 지지를 잃은 독재자가 오래 살아남은 일은 드물다.
고대 중국의 은나라가 폭군 주왕(紂) 때 망한 일을 돌이켜보아도 그렇다. 주(周) 무왕이 거사하여 군사를 몰고 폭군을 토벌하러 갈 때 주왕의 군사들은 자기 왕을 지키기 위해 싸우려들지 않았다. 이 때 일을 <周書> 무성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무오일에 군사들이 (…) 은나라 밖에 진을 치고 하늘의 명을 기다렸네. 이튿날 새벽 紂가 군사를 끌고 숲의 나무들처럼 모여들었으나 우리 군사를 대적할 수 없었네. 앞에 섰던 자들은 창을 거꾸로 돌려 뒤를 공격하면서(前徒倒戈 攻于後以北) 달아났으니 절굿공이가 떠오를만큼 피가 흘렀다네.’
‘앞에 섰던 자들이 창을 거꾸로 돌려’라는 말이 의미 깊다. 덕을 잃은 독재자는 아무리 많은 호위군사를 거느려도 자기 안전을 지키지 못한다. 반군이 밀어닥칠 때 군사들은 이런 왕을 지키기 위해 싸우려들지 않는다. 심지어 최측근에 의해 사살 당하기도 한다. 카다피 역시 막강한 친위부대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카다피 곁에서 떨어져 나갔다.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과 탄압에 가담하여 폭군을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맹자는 나라의 힘을 기르고 싶어 하는 군주들을 만날 때마다 仁의 정치를 설득했다. 추나라와 노나라가 싸웠을 때 노나라 군대는 장수급 지휘관만 33명이나 잃었다. 노나라 목공이 분을 참지 못해 맹자에게 물었다. “지휘관들이 이처럼 많이 죽었는데, 그들 밑에 징집한 백성들은 그들을 위해 죽지 않고 달아났습니다. 달아난 군사들을 처벌하자니 숫자가 너무 많고 용서하자니 윗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은 행위가 괘씸합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흉년으로 기근이 들었을 때 왕의 백성 중 굶어 죽은 노약자와 달아난 군사들의 수가 거의 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왕의 곳간에는 곡식이 가득하고 재물창고도 가득 차 있었지만 관리들 중 누구 하나 그 사실을 아뢴 자가 없었습니다. 윗사람이 태만하여 아랫사람을 헤친 것입니다. 33명이나 되는 윗사람들이 죽어갈 때에 아랫사람들은 이제야 그 원한을 갚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들을 나무라지 마십시오. 만약 군주께서 어진 정치를 행하면 백성들은 윗사람을 믿고 따르게 되어 윗사람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후세인, 카다피의 종말이 역사에 또 한 번의 교훈을 남겼다. 자신이나 측근들만의 이익을 챙기고 백성의 원한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자가 최후에 아무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치욕스런 말로를 걷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는 것을.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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