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 "6회까지만 던졌으면..."

문화라이프 / 토요경제 / 2007-05-14 00:00:00
프로통산 최연소 100승-150세이브 기록

올시즌 첫 퀄리티스타트...부활 선언

지난 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07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임창용(31)이 한 말이다.

한 때 '애니콜', '창용불패'라는 별명과 함께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나 지난 2년간 계약 철회와 부상 등으로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던 임창용이 자그마한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최연소 100세이브, 최연소 150세이브 등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지난 달 8일 두산과의 홈경기에서 선발승을 따내며 김용수에 이어 프로통산 2번째이자 최연소 100승-150세이브를 기록했던 임창용.

해태 타이거즈 시절 선동열의 뒤를 이어 마무리로 명성을 날렸고 삼성으로 이적 후 02년 선발로서 17승 6패 3.0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임창용에겐 너무 작고 소박한 꿈이었다.

임창용은 이날 경기를 통해 프로야구 통산 15번째로 투수 500경기 출장이라는 업적을 달성했지만 아쉽게 패전투수가 되며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그러나 작은 소망이었던 6이닝을 던지며 올시즌 부활을 예고했다.

6이닝 동안 6피안타 3실점. 임창용의 통산 500번째 경기의 기록이다.

비록 빠른 공을 예전만큼 자주 던지지는 못했지만 1회 김동주에게 홈런을 허용한 것을 제외하면 선발로서는 나무랄데가 없는 투구였다.

탈삼진 5개를 잡아냈고 직구 최고구속도 150km를 기록할 정도로 공의 위력도 눈에 띄게 회복했다.

95년 우선지명으로 3000만원의 계약금과 1200만원의 연봉으로 해태에 입단한 임창용은 입단 당시에는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그러나 사이드암의 장점과 대담한 성격을 바탕으로 97년 팀의 마무리로 성장, 해태의 V9의 핵심멤버로 활약했다.

이후 해태 '왕조'는 몰락했지만 임창용은 생애 처음으로 구원왕 타이틀을 획득했고 22살의 어린 나이로 '드림팀1'에 뽑히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냈다.

99년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큰 트레이드로 기억되는 양준혁(삼성)과의 트레이드로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게된 임창용은 쉴 새 없이 마운드에 오르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01년 선발로의 전업을 선언한다.

선발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임창용은 04년 선동열 감독이 투수코치로 영입되면서 다시 마무리로 전환했고 자신의 두번째 구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러나 임창용의 시련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노리던 임창용은 삼성과 계약 철회, 트레이드 요구, 간통 사건, 부상 등으로 2년간 허송세월을 보냈다.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140km 후반의 직구를 뿌리며 컴백했지만 올시즌 1승 2패 6.41의 평균자책점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려는 삼성의 '우승청부사'로 영입된 임창용이지만 지난 2번의 우승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날 경기에서 올시즌 첫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를 기록하며 부활을 선언한 임창용이 그동안의 시련을 딛고 삼성의 우승에 기여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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