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애환이 서려있는 술, 소주

문화라이프 / 김형규 / 2014-06-22 13:55:41
전시(戰時)에도 일정량 공급 의무화

[토요경제=김형규 기자] 대한민국 국민들은 ‘술’ 하면 ‘소주’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한 설문조사에서 맥주는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시지만 소주는 ‘고민을 상담할 때’, ‘힘든 일이 있을 때’라고 한다. 그만큼 소주에는 서민의 애환이 서려있고, 소주는 어떤 ‘주제’를 담아 마실 수 있는 술이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는 유사시 식품 등을 비롯한 품목을 ‘전시 임무고지 생산품목’으로 정해 비상사태에도 계속해서 생산하게 돼있다.


소주도 이런 전시 임무고지 생산품목에 선정돼 있다. 따라서 소주 제조업체의 경우 비상시라도 지정된 소주 생산량 가운데 일정량을 공급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이쯤 되면 소주를 ‘국민 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燒酎’는 일본식 조어


소주는 한자로 ‘燒酒’라고 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소주의 상표에는 (희석식)‘燒酎’라고 쓰여 있다. 왜 ‘酒’가 아니고 ‘酎’일까?


원래 조선시대 후기까지 ‘酒’를 섰다. 그러나 왜정시대 때부터 ‘酎’가 된 것이다. ‘酎’의 사전적 의미는 ‘세 번 빚은 술’이란 뜻이다. 문제는 왜정시절 일본인들은 소주를 세 번 빚은 술이니 알코올 농도가 높다는 뜻에서 ‘酒’대신 ‘酎’를 썼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조선인들이 소주를 만들 때 한 번만 증류하는 것이 아니라 두세 번씩 증류한다고 해서 ‘세 번 빚었다’는 표현을 넣었지만, 증류를 두세 번 한 것은 술을 세 번 빚는 것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燒酎’는 일본식 조어다.


그렇다면 희석식 소주란 무슨 뜻일까? 현재 우리가 마시고 있는 소주는 주정(酒精)에다 물과 감미료를 넣어서 만들기에 희석식 소주란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럼 주정이란 무엇인가? 주정이란 술의 정수(精髓)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순수한 에틸알코올로 보면 된다. 기계 안에서 연속 증류하면 순도 95%의 에틸알코올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에틸알코올에 물을 넣어 희석시키고 탈취 과정과 감미 과정을 거쳐 20%대의 알코올이 완성되면 우리가 마시는 소주가 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희석식 소주는 우리 조상들이 마셨던 소주(燒酒)와는 다른 술이다. 벌써 이름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소주의 ‘燒’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사르다, 불태우다”로 나와 있다.


즉, 불을 붙여 증류를 시켜 만든 술이란 뜻이다. 이를 좀 더 파고 들어가면 명확해지는데 조상들은 소주를 증류해 이슬처럼 받는 술이라 하여 노주(露酒), 땀처럼 뚝뚝 떨어진다고 한주(汗酒), 불을 대서 만든다 해서 화주(火酒), 색깔이 없다하여 백주(白酒)라고도 불렀다. 이 모두를 종합해 보면 ‘증류’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몽고와 만주를 거쳐 들어온 소주


소주는 우리나라에 12세기 고려말에 몽고와 만주를 통해 전파되었다. 소주는 몽고에서 아라비아어의 단맛을 뜻하는 ‘아라크(arak)’라고 불리던 소주는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아랄길주(阿剌吉酒)로 불렸다.


몽고군을 통해 전파된 소주는 몽고군이 물러난 13세기, 본격적으로 전파되게 된다. 단, 곡식을 원료로 만들어진 값비싼 술이었기에 일반 서민층을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조선시대가 되자 임금의 공식 행사에 사용되는 등 그야말로 ‘고급주’로 반열에 등극하게 된다.


이후 왜정 초반기까지 제조법에 큰 변화 없이 전통소주의 길을 걷게 되다가 1919년 평양에 알코올식 기계 소주공장이 세워지고 이어 인천과 부산에도 건설되면서 재래식 누룩을 이용한 소주는 흑국소주로 바뀌게 되고, 1952년부터 값싼 당밀을 수입해 만들게 된다.


그러던 것이 1965년 정부의 식량 정책 중 하나로 나온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며 소주 제조에 일대 변혁이 시작된다.


고유의 맛과 향기를 즐길 수 있었던 증류식 순곡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고구마, 당밀, 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해 만든 주정을 희석한 ‘희석식 소주’가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자도주 구입제도’, 지역마다 다른 소주 낳아


1970년이 되자 소주는 또 한 번의 대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저질 주류 생산 방지와 유통 질서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전국에 퍼져 있던 254개 소주 업체를 싹 정리해 주류회사 통폐합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통폐합된 주류 회사가 1977년 각 지방별 제조장 기준으로 각도에 한 개씩 총 열 개의 희석식 소주업체가 유지되어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 이후 각 지방마다 그 지방을 대표하는 소주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에서 시행한 ‘자도주 구입제도’가 주류회사 통폐합과 괘를 같이하여 소주 시장이 전면 개방되어 경쟁체재에 이른 지금까지도 각 도의 대표 소주가 반독점 체재를 유지하며 그 도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에는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경쟁을 벌이며, 부산에는 ‘C1소주’, 경남에는 ‘좋은데이’, 강원도 ‘산처럼’, 대구·경북 ‘맛있는 참’, 광주·전남 ‘보해’, 전북 ‘하이트소주’, 대전·충남 ‘O2린’, 충북 ‘시원한 청풍’, 그리고 제주에는 ‘한라산순한소주’가 그것이다.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서민의 술, 소주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소주는 서민의 대표 주류이자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요즘에는 다양한 오락과 유흥문화가 들어서며 그 영향력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소주가 대한민국 대표 주류라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한 설문조사에서 ‘술 하면 떠오르는 것이 것’이 바로 ‘소주’라고 말한 이가 과반수인 것을 보면 이미 소주는 술 그 이상의 의미로 사람들의 일상에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그 사이 수차례의 부침도 있었지만 소주는 꿋꿋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한때 X세대로 통칭되던 신세대가 소주 대신 맥주를 찾으면서 소주의 위기가 찾아왔지만 소주는 ‘레몬소주’, ‘칵테일소주’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젊은 여성층을 끌어안기 위해 경쟁적으로 알코올 도수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주는 여전히 ‘대한민국 대표 주류’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게 됐다.


12세기 말에 들어와 800년을 넘게 이 땅을 호령했던 소주가 아마도 1000년은 채울 것 같다. 아니, 더 오래갈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에서 ‘술’하면 ‘소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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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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