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버큰헤드 정신' 일깨우는 계기 되었으면

문화·라이프 / 김형규 / 2014-04-29 09:34:42

1852년 2월 27일. 남아프리카 인근 해역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버큰헤드(Birkenhead)함’. 이 배에는 군인 472명과 그 가족 162명이 타고 있었다.


암초에 부딪혀 두 동강이 난 배의 한 쪽이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다른 한 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밤바다의 풍랑은 더욱 거칠어졌고, 배는 점점 더 가라앉아 갔다.


배의 뒤쪽에 구명보트가 세 척 있었지만, 승선 인원은 한 척 당 60명이니 도합 180명에 지나지 않았다. 절망에 휩싸인 사람들은 울부짖으나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난데없이 북소리가 들렸다. 북소리를 듣고 버큰헤드 승조원인 해군과 승객인 육군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갑판위에 모였다. 그 때 버큰헤드의 함장 알렉산더 세튼 대령이 외쳤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희생해 온 가족을 이제 우리가 지킬 때다. 어린이와 여자부터 탈출시켜라.”


곧 횃불이 밝혀지고, 선원들이 어린 아이와 여자들을 구명보트에 옮겨 태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번째 구명보트에 모두 옮겨 태운 순간, 배 안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아직 자리가 남아 있으니 군인들도 타세요” 하지만 472명의 군인들은 구명보트를 향해 거수경례를 한 채, 배와 함께 가라 앉기 시작했다. 배와 함께 물속으로 잠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보트 위의 사람들은 울고 또 울었다. ‘위기 때 약자를 배려하는 정신’ 이것이 바로 영국의 국민정신으로 자리 잡게 된 ‘버큰헤드정신’이며, 이 정신은 이후 해상을 항해하는 ‘해상승조원’의 기본 정신으로 계승되었다.


그로부터 162년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진도 앞바다.


수학여행단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하지만 버큰헤드함과 가장 다른 것은 선장을 비롯한 선박직 승무원들의 ‘버큰헤드정신’의 실종이었다. 세월호 선장에게는 선장으로서의 자격도 ‘버큰헤드정신’도 없었다. 속옷 차림에 그저 나 살기 바빴다. 다른 선원들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배를 빠져나오기 바빴다.


승무원만이 아니었다. 세월호의 참사 이면에는 그동안 뿌리 뽑지 못했던 ‘해피아’, ‘관피아’가 있었고, 청해진해운의 뒤엔 더 큰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비록 침몰된 점은 같지만 ‘버큰헤드함’은 영국민에게 커다란 자긍심과 자랑스러운 전통을 안겼고, ‘세월호’는 대한민국에 엄청난 치욕, 무기력, 자괴감을 안겨줬다. 세월호의 승무원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른’이 한창 꽃피울 고등학교2학년 학생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대한민국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제 국민들도 국가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위기다. 분명 ‘대한민국號’의 위기임에 틀림없는 바로 지금이 어쩌면 우리가 ‘버큰헤드정신’을 발휘할 때다. 내 가족, 내 주변, 우리 사회, 우리 국가를 다시금 돌아볼 때다. 이번 참사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리더십과 솔선수범 그리고 ‘버큰헤드정신’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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