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보선 패한 새누리당, 두 번 당하지 않아
중도(中道)‧무당(無堂)외에 꺼내 든 정책카드 없어

전국 강타했던 '안철수 바람'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나타날 즈음에 함께 사회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었다. ‘정권 심판론’과 ‘안정론’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던 상황에서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정치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여야는 서로 안 원장을 포섭하기 위해 발 벗고 달려들었고, 안 원장은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러브콜에 확실히 응하지는 않았지만,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에게는 확실한 거부의 의사를 전하기도 하며 여당의 주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1년 10월 26일에 진행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확실한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한다.
한나라당의 대항마였던 나경원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던 박 시장은 유세 과정에서 나 후보 측의 몇 가지 실족도 있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와 안 원장의 지지 선언 이후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며 역전에 성공했다. 특히 안 원장은 특별한 활동 없이 지지 입장 표명 하나로 판세를 뒤엎는 힘을 보여주며 새로운 정치권력의 중심의 잠재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안철수 바람’은 이때가 정점이었다. 정작 본인이 일선에 나서기 시작한 대선 후보 시절부터는 이러한 영향력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양보의 아이콘’이 됐지만, 대선 결과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달랐다.
지난 해 4‧24 재보선에서 노원 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지만, 이후 행보는 ‘거물급’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신당창당선언과 전격적인 민주당과의 합당 발표, 그리고 무공천 공약 번복 결정이 이어지며 오히려 ‘정치인 안철수’의 입지는 급속하게 초라해지고 있다. 과연 무엇이 ‘새정치의 대안’이었던 안철수를 불과 3년 남짓한 사이에 이렇게 위축시켰을까?
안철수, ‘중도’에 웃고 울고...
안 대표가 부각됐던 시기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지역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계층 간 갈등, 소득 간 갈등이 첨예하게 이어졌으며, 이 모든 것을 함축하여 전면에 등장했던 것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었다.
절대적인 갈등구조의 싸움은 “양보는 패배”라는 인식을 만들었고, 양자택일의 절대적인 대립의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연일 이어지는 정쟁에 국민은 정치권을 외면했고 이때에 등장한 안철수의 ‘중도주의’는 둘 중 하나가 아닌 ‘합리적인 선택’을 의미했다.
“경제는 진보지만, 안보는 보수”라는 안 대표 스스로의 발언과 전체적인 성향이 민주당보다는 한나라당 쪽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의 한나라당은 미래가 없다”고 단언하며 치우침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이러한 모습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그 효과를 거뒀다. ‘합리적인 중도’를 통한 ‘구태 정치의 개혁’이라는 코드는 당시 무소속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와도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파란색을 떨치고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여당은 이후 정쟁이 아닌 정책 대결로 분위기를 주도한 가운데 ‘보수의 대변자’답지 않은 선택으로 야당을 흔들었다.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여당이 내놨다고 보기 힘든 탈(脫)보수적인 내용이 많았다. ‘경제민주화’에 동참한다는 선언을 전면에 내거는 등,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후보의 복지 공약도 대부분이 사실상 진보에 치우친 내용들이었다.
중도에 차별화는 없다
야당의 공약도 속속 발표됐지만, 당시 전문가들은 여야의 공약에서 큰 차이가 없음을 지적하기도 했으며, 정책 대결 자체의 의미가 무색해지기도 했다. 오히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전원책 자유경제원 원장 등은 “대한민국에는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쓴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체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은 새누리당보다 궁지에 몰린 것은 ‘A’라는 ‘새누리당’에 대해 ‘not A’라는 입장을 표명해야 했던 당시 민주당 등 야당이었고, 별 차이가 없는 여야 거대 정당 사이에서 중도의 입장을 정리해야 했던 안 대표는 더욱 더 꺼내들 정책 카드 자체가 마땅치 않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국민이 투표로 그 기대치를 나타낸 만큼, ‘국민 후보’라는 이름을 달 자격에 부합된다는 것을 정책적으로 실체화 시켜야했던 안 대표는 대선 후보 기간 동안 결국 확실한 카드를 집어 들지 못했다.

안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민주당 입당설’을 시작으로 사실상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룰 것이라는 추측을 출마 선언 당시부터 받아왔다. 이와 함께 ‘신당 창당’과 관련해서도 많은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구태 정당 정치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던 안 대표는 “신당을 창당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대선에서 완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곧 ‘정당 정치를 부정한다’는 반격으로 이어졌고, 지지기반과 세력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한계만 절감한 채 스스로 대선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를 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이 나타낸 기대치에 부합하는 ‘국민 후보’로서의 자격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대선이 끝난 후, 민주당에서는 안 대표와 후보 단일화를 이룬 시점과 과정 자체가 패배의 원인 중 하나였다며, 안 대표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까지 불거져 나왔다.
재도전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안철수
4‧24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후에도 안 대표의 정치 노선은 ‘합리적 중도 노선’과 ‘무당파’에 초점이 맞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실질적 물리력 행사를 위한 세력 확보를 위해 정당 구성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신당 창당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창당준비위원회까지 추진한 상황에서 안 대표는 돌연 민주당과의 합당을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끝까지 고수한 것은 6‧4 지방선거 무공천 공약이었고, 안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박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 그리고 내가 모두 합의했던 내용”이라며 대선 공약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자신의 위치를 부각시키고 나섰다.
하지만 이 역시도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노련한 상대에게 먹히지 않은 것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스스로의 한계였다.
새누리당은 대선 공약 번복이라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끊임없는 비난에도 꿋꿋하게 버텼고, 결국 정당공천제를 바탕으로 해서 지방선거에서 압승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게 됐다. 무공천에 반발하고 있던 민주계 일부 인사들의 불만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됐고, 이즈음에 안 대표는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의 정강정책 삭제 파동에 휘말리며 내부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흔들리게 하고 말았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날로 떨어져갔고 전통적인 지지층에서는 “안철수의 중도주의에 신물을 느낀다”는 비난까지 이어졌다. 결국 ‘민주당 지지층’에 ‘안철수 지지층’을 더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으로 구태 정치에 염증을 느낀 세력을 끌어안아 새누리당을 뒤집겠다던 새정치연합의 목표는 역효과를 맞았다.
기존 지지층의 이탈이 일어났고, 새로운 기대세력의 유입은 미미했으며, 안철수 대표에 대한 지지도 역시 급전직하했다.
더 이상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된 안 대표는 양보할 수 없다고 했던 지방선거 무공천에 대해 ‘당원과 국민에게 묻겠다’고 물러섰고, 결국 자신이 합당과 관련하여 걸었던 유일한 매개와도 같았던 무공천이 철회되는 상황을 지켜보기에 이르렀다.
국민에게 실망만 안기는 현실 구태 정치의 대안으로 화려하게 급부상한지 얼마 되지 않아 급격하게 입지가 줄어든 안 대표가 어떠한 역할로 신당 내에서 정치적 역량과 가능성을 보여주며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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