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과 정부를 가장 적극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국민과의 약속 불이행’의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자신들은 이미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를 천명했기에 더욱 당당하게 이를 공론화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내 기류가 심상치 않다. 오히려 ‘무공천 선언’을 번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논란
‘국민과의 약속을 1년도 안 되어 손바닥 뒤집듯이 어기는 정권’
이는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적한 가장 대표적인 핵심 주장이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진 사퇴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던 기초연금과 관련한 사항에서부터 시작된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 번복’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라는 공약 이행과 관련하여 뜨거운 논란을 야기했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전국 규모의 선거인 6‧4 지방선거는 사실 상,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어 여야는 향후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더욱 총력전을 걸고 있다. 그리고 지방선거의 주도권을 위해 오랫동안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를 두고 양보 없는 대결을 펼쳤다.
여야는 파행을 거듭했던 국회의 휴지기였던 지난 1월에도 국회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를 가동하며 지방선거관련법소위원회를 열고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열띤 격론을 이어갔다. 당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대선당시 여야후보가 모두 동의했던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오히려 위법성 우려가 있다며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황우여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천의 투명화를 위해 개방형 예비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을 함께 입법화 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야당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황 대표의 안은 실제로 새누리당 내에서도 내홍을 겪었다.
김한길‧안철수, ‘무공천’으로 통했다
팽팽하게 맞서던 여야의 주장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던 시점에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는 갑작스러운 정치적 이슈와 ‘여야의 싸움’이 아닌 ‘여야의 내분 문제’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된다. 이는 민주당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조직이었던 새정치추진위원회가 합당을 선언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달 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안철수 중앙위원장은 국회 사랑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새정치를 위한 신당창당을 통합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정권교체를 실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들은 이 자리에서 새누리당의 방침과는 상관없이 지난 대선에서 국민과 약속한대로 지방선거 무공천을 이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김 대표와 안 의원은 “정부와 여당이 지난 대선 때의 거짓말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는 이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번복’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이러한 김 대표와 안 의원의 선언에 대해 “어불성설의 정치야합”이라고 주장하며, 특히 안 의원이 주장했던 ‘새정치’의 정체성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이들은 이후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통합하며, 이번 지방선거를 다시 거대 양당 구도로 몰고 갔다.
그리고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에 대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강력한 비판에 나섰다.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역시 꾸준히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를 주장했다.
‘초지일관’ 새누리당의 우직함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새누리당 중진인 이재오 의원은 여당만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를 유지한다면 혼자 대선공약을 스스로 파기하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대의”라며 정부와 새누리당을 내부에서 겨냥했다.
그러나 안팎의 비난 여론에도 새누리당은 ‘지방선거 공천’의 입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고, 심지어 황우여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 당시 꺼내어 들었던 ‘오픈 프라이머리’나 ‘상향식 공천’은 커녕 ‘전략 공천’에 의한 폐해가 드러나는 문제가 이어졌지만 반복되는 구태 속에서도 조금의 태도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이었다.

당초 새정치민주연합이 깃발을 걸고 나선 무렵에는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 선언과 관련하여 적어도 내부적인 반발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경기지사 선거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예비후보로 나선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을 비롯해 진성준 의원 등이 ‘무공천’과 관련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고, 신경민 최고위원은 지난 3일 온라인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 출연하여, “무공천을 하려면 차라리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미 박지원 의원과 정동영 상임고문도 당의 ‘무공천’과 관련하여 입장을 선회해야 한다는 쪽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러한 내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범친노그룹과 호남계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전면에 나서서 이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도 친노그룹 인사들이며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또한 정세균 계의 대표적인 인사인 이원욱 의원도 “당의 ‘무공천’은 결과적으로 ‘출마하려면 탈당하라’는 것”이라며 불편한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무공천 선언’을 번복하고 하는 근거는 우선 정당정치가 근간인 민주주의의 기틀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와 새누리당이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독자적으로 이를 폐지했을 경우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각계의 예상과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분석이다.
과거 민주당은 최근의 선거에서 새누리당에게 참패를 거듭했지만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지역기반인 호남권외에 수도권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당 대표였던 정세균 의원을 비롯해 친노세력과 소위 ‘486그룹’이 상당수 약진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은 당시 선거에서 승리를 했던 다수의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해 공천권을 행사하여 자파의 핵심인사들을 챙겨야 하는 현실적인 입장 때문에라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공천 선언’에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반면,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당 내에서 큰 입지를 지니지 못했던 김한길 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 등을 비롯해 안철수 공동대표 등은 이와 전혀 연관이 없어 무공천과 관련하여 크게 손해를 볼 일이 없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무공천 선언’과 관련하여 ‘거대야당의 창당’과 ‘박근혜 정권 및 새누리당 심판’, 그리고 ‘대선 공약 불이행’등을 내세우며 전면전에 나섰던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초 이러한 불만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지만,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이 선거 결과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게 등장하며 조금씩 현실적인 요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여기에 안철수 의원이 최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삭제를 요구했다는 논란이 등장하며 당 안팎에서 강도 높은 비난이 제기되자 이와 함께 ‘무공천 선언’에 대한 재검토도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를 바탕으로 한, 차기 당권에 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안철수는 물러설 곳이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무공천 선언’을 철회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국민과의 약속 불이행’을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로 지적해왔던 스스로의 입장을 감안할 때 아무리 실리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미 선언을 한 부분을 되돌리며 똑같이 ‘공약 불이행’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한,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을 이루는 근간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를 번복할 경우 합당의 기본 취지 자체가 무너진다는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오히려 공중 분해되는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성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이후 ‘안철수 효과’의 거품론까지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어 안철수 의원 측에서는 ‘무공천 선언’에 대해 결코 양보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안 의원은 ‘탈이념’을 내세운 중도적 행보를 통한 노선 투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고정적인 지지층의 이탈만 가중시켰다는 분석만 나오고 있다.
그리고 새정치추진위원회에서 의장을 맡았지만 신당 합류를 거부한 윤여준 전 장관이 안철수 의원을 겨냥해 ‘신념이 부족한 정치인’이라고 표현하는 등 ‘안철수 바람’이 급속하게 ‘회의론’으로 전개되는 추세에 있어, ‘무공천 선언’까지 파행에 이르면 안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한 위기에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다급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도부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를 다시 한 번 거론하며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와 관련한 대승적인 협력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는 상황이다.
대의를 앞세워 기선을 제압했지만, 기득권을 바탕으로 실리만을 추구한 새누리당의 노련함에 말린 새정치민주연합이 ‘내 안의 폭탄’이 되어 버린 ‘기초 지방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따라 이번 선거를 앞둔 정국의 흐름이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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