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골까지 넣은 필리핀, 끝내 4강행 좌절

문화·라이프 / 박진호 / 2014-09-28 18:30:14

[토요경제=화성, 박진호 기자] 이기기 위해 승부를 포기한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지만 28일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실제로 벌어진 상황이다.


카자흐스탄과 필리핀이 맞대결을 펼친 남자 농구 8강 라운드 경기에서 양 팀이 4쿼터 막판 서로 승리를 양보하는 촌극을 벌였고, 득점을 양보하는 필리핀의 성의(?)를 애써 사양한 카자흐스탄이 65-67로 패했지만, 마치 우승한 것과 같은 세리머니를 펼쳤다. 실제로 승리를 거둔 필리핀은 4강행이 좌절된 반면 카자흐스탄은 4강 진출의 희망을 이어갔다.
사연은 이렇다. 8강라운드 H조에서 우리나라는 카자흐스탄과 필리핀을 잡고 2승을 거둔 반면, 카자흐스탄과 카타르는 1승 1패를 기록했고, 객관적인 전력에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던 필리핀은 오히려 2패를 당했다. 조 1-2위가 4강에 올라갈 수 있는 상황에서 필리핀은 마지막 경기였던 카자흐스탄을 크게 이기고 카타르가 우리나라에게 패하기를 기대해야했다. 그렇게 되면 필리핀은 카자흐스탄, 카타르와 1승 2패로 동률을 기록하게 되고, 우리나라를 제외한 세팀 간 상대전적에서의 득실차로 4강 진출을 위한 마지막 한 자리를 결정짓게 된다.
카타르가 두 팀과의 경기에서 1승 1패의 성적을 거두며 +1의 득실차를 보인 반면, 필리핀은 카타르에게 9점차로 패해 –9를 기록 중이었고, 카자흐스탄은 카타르를 8점차로 이겨 +8을 기록 중이었다.
따라서 필리핀은 카타르가 우리나라에게 패한다는 가정 하에 카자흐스탄에게 최소 10점차 이상의 승리를 거둬야했다. 이러한 필리핀의 계산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듯 했다. 경기를 꾸준히 리드한 필리핀은 카자흐스탄에 3쿼터까지 52-39로 앞서고 있었으며 4쿼터에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됐다.
하지만 경기 막판 필리핀의 발이 무뎌지면서 경기의 흐름은 묘하게 흘러갔다. 종료 5분을 남긴 시점까지도 12점을 앞서던 필리핀은 카자흐스탄에게 추격을 허용했고, 급기야 양 팀의 차이는 5점 이내까지 줄어들었다. 10점차 이상의 승리 외에는 의미가 없었던 필리핀은 승부수를 던졌다. 동점을 허용해 연장까지 가서 10점차 이상을 노리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필리핀은 67-65로 앞서던 상황에서 종료 11초를 남기고 마커스 다우잇이 자신들의 림으로 골밑슛을 집어넣으며 자책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농구 규정상 고의적인 자책골은 바이얼레이션이 될 뿐 득점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 필리핀은 공격권을 내주자마자 파울로 끊어 상대에게 자유투를 허용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자유투 2구를 모두 넣지 않았다. 자유투를 실패한 선수가 오히려 포효하며 세리머니를 펼치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카자흐스탄으로서는 2승 1패를 기록하든 1승 2패로 마치든 카타르가 우리나라에 패하면 조 2위가 확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상황. 오히려 카타르가 우리에게 승리를 거둬 모두 2승 1패가 된다면 역시 골득실에 의해 4강행이 불투명해진다.
결국 연장까지 가겠다며 실점을 자처한 필리핀과 애써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며 1승 2패에 만족하고 우리나라가 카타르를 잡아주길 기대한 카자흐스탄의 벤치 대결 속에 우리 대표팀은 카타르와의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4강행을 확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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