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3월24일 LG엔솔과 스텔란티스 관계자들이 캐나다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을 기념, 한자리에 모였다.<사진=연합뉴스제공> |
LG그룹 계열의 배터리 전담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이 미국 애리조나 배터리 공장 투자 계획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한미 간의 경제안보 공조 분위기 고조되면서 대기업들이 앞다퉈 미국 투자 계획을 쏟아낸 상황에 LG가 투자 계획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LG는 원래 약 1조7000억원을 투입, 애리조나 퀸크리크지역에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를 생산할 독자 공장을 신축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따른 최악의 물가 상승과 원달러 환율의 급등으로 실질 투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LG측은 이와 관련, "미국의 경영 환경 악화에 따른 투자비 급등으로 투자 시점, 규모, 내역 등을 면밀하게 재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의 인건비, 원자재 등 건축비가 급증하고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초로 1300원대에 진입하면서 LG엔솔의 애리조나 투자비용이 당초 계획 대비 40% 가량 증가, 2조원대 중반까지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미국의 인플레 현상은 심각한 지경이다. 지난 5월 물가 상승률이 8% 중반대로 치솟으며 이제 두 자릿수대 물가상승률까지 우려되는 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이에 따라 기준 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까지 동원하며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금리 인상으로 얼마나 효과를 거둘 지는 미지수다.
투자액 당초 1초7천억서 2조 중반대로 악화
LG가 이번 애리조나 투자계획을 돌연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이처럼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미 정부가 모든 걸 다 걸은 듯한 특단의 조치를 동원하며 물가잡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예상 외로 장기국면으로 내달릴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또 역설적으로 미국이 만약 고강도 고금리 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한다면 인플레는 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LG 입장에서는 현재 상황에서 투자비가 2조원대로 대폭 늘어난 상황에 물가가 더욱 오른다면 투자비가 얼마까지 상승할 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따라서 아직 첫 삽을 뜨지 않은 상황에 투자 대비 손익계산을 따져보는 게 타이밍상 맞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LG엔솔이 투자계획 재검토 대상에 기존에 진행 중인 공장 건은 제외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LG측은 제너럴모터스(GM)와 공동으로 신축 중인 테네시주 합작 2공장(35GWh)과 미시간주 합작 3공장(50GWh) 등은 예정대로 진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LG가 애리조나 공장 신축에 대해 정밀 재검토에 착수했다고 하나, 무기한 연기나 투자 포기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엔 글로벌 시장 상황이 LG에 우호적이지 않다. 미국의 물가급등으로 투자비가 크게 늘 것은 불가항력이지만, 자칫 투자 타이밍을 놓칠 경우 글로벌 배터리 시장 지배력 약화라는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LG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중국 닝더스다이(CATL)에 이어 세계 2위다. 국내에선 SK와 삼성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독보적인 1위를 구가하고 있다. 문제는 CATL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조사분석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과 LG의 격차는 작년에 6.4%포인트 차이에서 지난 1분기엔 20%가까이 벌어졌다. 1년도 채 안돼 시장점유유율 격차가 3배가량 벌어진 것이다.
CATL과 격차 벌어져 큰 변화는 없을 듯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배터리시장인 미국 본토에 대형 공장을 신축하려던 LG로선 쉽게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기존 미국공장과 달리 애리조나 공장은 LG의 첫 독자공장이고, 공장 규모도 연간 원통형 배터리를 11GWh(기가와트시) 생산할 수 있는 대형공장이란 점에서 투자를 미루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투자포기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인 셈이다.
인플레이션이든 스태그플레이션이든 미국이나 유럽의 경기 동향과 상관없이 전기차 시장이 빠른 속도로 확대하고 있는 것도 LG를 더욱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다. 실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전세계적으로 에너지 대란이 일면서 내연기관차를 대체한 전기차 보급률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정부의 공급망 재편의 타깃이 중국과 러시아 견제란 점에서 중국과 배터리시장 제패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국내업체들이 반대급부를 누릴 개연성이 높다"고 전제하며 "LG측이 애리조나 공장 신축을 다시 검토한다하지만, 여러 상항을 고려할 때 큰 폭의 수정보다는 일정 연기 등 같은 소폭 수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LG의 미국 배터리 공장 투자를 재검토하기로 하자 삼성, SK 등 다른 그룹으로 불똥이 튈 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해서 삼성과 SK의 투자 계획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삼성과 SK 양사 관계자는 "일단 현 단계에서 기 발표한 투자계획에 대한 수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최소 25억달러(약 3조1600억원)을 들여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배터리 셀 및 모듈 합작법인(JVC)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 공장은 연말경 착공해 2025년 1분기 가동이 목표다. 생산능력도 연간 23GWh대의 대규모다. 삼성은 장차 33GWh로 확대, 미국은 물론 유럽의 배터리 수요를 이 공장에서 커버한다는 전략이다.
SK·삼성 등 경쟁사들은 '예정대로'
SK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SK그룹 배터리 전문계열사인 SK온은 약 3조원을 투입, 조지아주에 1, 2 단독 배터리 공장을 이미 신축에 들어갔고 미국 내 인플레 상황에 상관없이 예정대로 밀어붙일 계획이다. 공장신축도 상당히 진척돼 있다. 9.8GWh 생산능력의 1공장은 이미 양산 중이고 11.7GWh급의 2공장은 건축이 마무리 단계이며 내년 중엔 본격 양산에 착수할 수 있다. SK온은 작년 9월 미 포드와 합작법인을 통해 양사가 44억5000만달러(5조1000억원)씩 총 10조2000억원을 공동투자해 테네시주(43GWh)와 켄터키주(86GWh)에 약130GWh대의 매머드급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세운다는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SK와 삼성 측은 그러나, 미국의 물가와 원자재가격 급등 등 인플레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지 여부에 대해선 면밀하게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SK 최태원 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제2회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정책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통해 "지금은 기업들에게 쇼크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투자계획의 완전한 궤도 수정이냐, 아니면 시장상황에 맞춰 소폭의 일정 조정이냐. 'K-배터리'의 선두 주자 격인 LG엔솔의 미국 애리조나 독자 배터리 공장 투자계획의 전면 재검토가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 지, 배터리업계와 재계의 관심이 LG에 쏠리고 있다.
토요경제 / 이중배 기자 diale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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