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기름값…물가안정·경기회복에 찬물 끼얹나

체크Focus / 장연정 / 2023-08-07 14:47:00
산유국 잇단 감산과 수요회복 전망 속 국제유가 들썩
WTI원유 80달러 돌파...국내 휘발유·등유가격 급등세
국제시세 급등시 고물가 재현...무역수지 악화 우려도
▲ 국제 유가상승세 영향으로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판매 가격이 4주째 올랐다.사진은 6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제유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잠잠하던 유가가 최근 끔틀거리더니, 지난 4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 기준으로 80달러 벽마저 뚫었다. 이날 유가는 82달러로 지난 4월 12일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으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유가는 글로벌 경기, 특히 세계 최대 원유수입국인 중국의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최근 산유국들이 잇단 감산에 나서면서 부터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이 감산과 수출감축에 나서면서 가격이 다시 끔틀대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의 긴축 기조가 완화될 것이란 전망과 세계 최대 기름 소비국인 중국의 추가 경기 부양책이 맞물리며 수요상승이 예상되며 기름값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

◇ 유가 석달 새 30% 가량 상승...감산에 흑해 전쟁 변수

수급 상황이 갈수록 빡빡해지는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흑해 주변 주요 수출항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국제유가 상승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유가가 고개를 들자 국내 휘발유, 등유 등의 시세 상승폭이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기름값 상승이 2%대 초반까지 낮아진 물가안정세와 하반기 경기회복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올들어 꾸준히 진정국면을 보였던 국제유가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올해 여러 차례 배럴당 70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던 유가는 현재 8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9월물 가격은 전일보다 1.56% 오른 배럴당 82.82달러에 마감했다. 주간 기준으로 6주 연속 상승세댜. 장중 배럴당 63.5달러였던 5월초에 비해 석 달 사이에 무려 30%가량 오른 것이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의 10월물 가격도 6주째 오름세를 지속하며 배럴당 86.2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와 브렌트유는 종가 기준으로 모두 지난 4월12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거래가 가장 활발한 브렌트유의 경우 향후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국제유가가 강세로 전환한 것은 석유수출국기구 OPEC와 OPEC플러스 등의 계속된 감산과 공급 부족 전망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OPEC플러스 의 합의 후 지난달부터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에 나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를 다음달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러시아도 원유 수출을 하루 30만 배럴 줄인다고 거들었다.


원유의 공급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 것은 지난 4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주요 원유 수출항인 노보로시스크를 공격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세계 원유 공급량의 2%를 소화하는 노보로시스크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드론 보트 공격이 유가상승을 더욱 부채질했다는 분석이다.
 

▲ 산유국의 감산 합의에 이어 사우디와 러시아가 감산과 수출축소에 나서 국제유가가 들썩이고 있다. 사진은 OPEC 회의장에 보이는 OPEC 로고. <사진=연합뉴스>

 

◇ 최대 소비국 중국·인도 수요 증가...경유 1500원 대 진입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 수요는 증가할 조짐이다. 우선 세계 양대 석유류 소비국인 중국, 미국, 인도의 경제 상황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금리인상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며 석유소비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중국은 강력한 추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돼 석유 소비가 급증할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중국은 특히 코로나 봉쇄 해제 후에도 기대 이하로 경기 회복 속도가 더디지만, 이미 6월 원유 수입량이 전년 동기 대비 45% 가량 늘어나는 등 석유 소비가 갈수록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인구대국으로 떠오르며 가파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인도의 석유수요 증가도 눈에 띈다. 

 

맥모니글 국제에너지포럼 사무총장도 석유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중국과 인도의 수요 증가를 꼽았다. 두 나라가 올해 하반기에 하루 200만 배럴의 새로운 수요 증가에 기여할 것이란 전망이다.


국제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판매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기름값은 4주 연속 올랐다. 경유 가격은 석달만에 1500원 대를 돌파했다.


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현재 전국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날보다 4.57원 오른 1507.12원을 기록하며 지난 5월 10일(1500.5원) 이후 약 3개월 만에 1500원 대 진입했다.


지난해 7월 2100원선을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던 경유 가격은 올들어 빠르게 하향 안정 흐름을 보이며 6월에 1300원 대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강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휘발유 가격도 이날 오전 10시 기준 1684.36원으로 1700원 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드라이빙 시즌 도래 등 세계적 에너지 수요 증가 속에서 산유국들의 잇따른 감산 시그널이 석유제품 가격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유의 경우 차량뿐 아니라 선박, 발전, 산업 등에 다양한 용도로 쓰이다 보니 수급에 문제가 있을 경우 가격이 먼저 가파르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국내 최고가 지역인 서울의 이번 주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주보다 47.7원 상승한 1727.8원, 최저가 지역인 광주는 29.8원 오른 1609.1원이었다.

 

 

▲국제유가 상승은 수입물가를 자극, 2%초반까지 내려온 물가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부산항 모습. <사진=연합뉴스제공>

 

◇ 무역수지 악화 등 경기 회복세에 어두운 그림자

국제유가의 상승으로 인한 국내 휘발유, 경유가격의 급등은 향후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경제회복에 적잖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특히 원유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아 국제유가 상승이 수입물가를 높이고,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수출 부진이 이어진 가운데 지난 6월, 7월 두 달연속 무역흑자를 낸 것도 결국 전년 동기대비 석유류 가격급락 여파가 컸던 것을 감안하면, 당장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할 것이란 걱정이 앞선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7월 수입은 원유(-46%), 가스(-51%) 등이 급감하며 전년 동기보다 25.4% 감소한 487억1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국제유가 하락이 수입급감으로 이어지며 국제수지 흑자를 낸 것이다.


한국경제가 저점을 지나 반등을 시작했다는 진단에도 국제유가 상승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7일 발표한 8월 경제 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경제 부진이 점진적으로 완화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경기 저점을 지나가고 있다'고 판단한 데 이어 이달에는 회복세에 올라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KDI의 진단대로라면, 상반기 내내 하강하던 경제가 저점을 찍고 반등하는 모양새지만, 국제유가 급등이란 복병을 만나 경기가 다시 하강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격화로 국제 곡물시세가 들썩이고 있고, 환율마저 고개를 들고 있어 수입물가 관리에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면 기업의 생산원가는 평균 0.43% 상승하게 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작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5개월 연속 적자를 보이던 무역수지가 지난 6월부터 흑자로 돌아섰는데, 유가가 다시 상승할 경우 그동안의 무역흑자 전환 노력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구조상 국제유가의 상승이 경제 전반이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면서 "상저하고의 경기전망 속에 유가, 곡물가 등 주요 원자재값 상승세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에 최대 악재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토요경제 / 장연정 기자 toy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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