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삼성중공업, 해외수주 새 모델…정부, 3조원 펀드로 확산

부동산·건설 / 김지영 기자 / 2026-10-12 13:16:56
국가·지역별 공동투자로 사업 발굴 단계부터 참여 확대
현대건설 호주 개발 투자·삼성중공업 미국 FLNG 금융 연계 수주
한국도로공사 튀르키예 운영계약…기자재·유지보수 동반 진출 추진
▲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해외건설 지원 범위를 시공 중심에서 사업개발·금융·운영으로 확대한다. 국내 기업이 해외사업 초기부터 참여해 신규 수주와 장기 수익을 확보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12일 재정경제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 제274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해외투자개발형 사업 투자지원체계 고도화 방안'을 논의하고 총 3조원 규모의 해외건설 신전략펀드 조성과 국가·지역별 공동투자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내 기업의 해외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신전략펀드를 신설하고, 개발·건설·유지보수를 결합한 패키지형 수주를 확대해 해외사업의 성과가 국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자금 규모보다 지원 방식의 변화에 있다. 기존 개별 프로젝트 중심의 금융지원에서 벗어나 정부 간 협력과 현지 투자기관의 참여를 바탕으로 사업 발굴 단계부터 국내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해외 발주처가 공사를 확정한 뒤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뿐 아니라 사업 개발과 투자구조 설계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기회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재정 1조원을 바탕으로 국내외 민간자본을 유치해 총 3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국가별 전략펀드 1조5000억원, 기업 매칭펀드 9000억원, 글로벌 협력펀드 6000억원으로 구분해 국가별 공동투자와 기업의 투자개발사업 참여 등을 지원한다.

2027년도 예산안에는 우선 1000억원을 반영했다. 펀드 조성계획은 지난 9월 예산안에서 공개됐으며, 이번 회의에서는 국가·지역별 공동투자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원체계를 개편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지난 7월 수립한 '제5차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2026~2030년)'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정부는 기술력과 글로벌 금융, 지원기반 확충을 3대 전략으로 제시하고 투자개발형 사업 확대와 고부가가치 수주모델 육성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국내 기업이 이미 추진하고 있는 해외사업에서도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이 확인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건설의 호주 시드니 주택개발 사업이다.

현대건설은 지난 9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과 호주 시드니 채스우드 초고층 아파트 개발사업의 투자계약을 체결했다.

총사업비 약 3500억원을 투입해 45층, 26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건설한 뒤 임대하는 사업이다. 현대건설은 지분 투자와 설계 검토, 건설사업관리(CM)를 맡고, 한투리얼에셋은 지분 투자와 자산운용을 담당한다. KIND는 금융구조 설계와 사업 협상을 지원했다.

실제 시공은 호주 현지 건설사 히코리(Hickory)가 수행하고, 임대 운영은 현지 전문업체 노부스(Novus)가 맡는다. 사업은 2027년 3월 본공사에 착수해 2029년 10월 입주를 목표로 추진된다.

현대건설은 직접 시공하지 않더라도 지분 투자와 사업관리 참여를 통해 해외 개발사업에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기존 도급공사와 달리 개발사업의 투자수익과 관리용역이 별도의 수익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3500억원은 전체 사업비로 현대건설의 투자금액과는 다르며, 지분 투자에 따른 실제 수익은 사업 진행과 운영 성과에 따라 결정된다.

삼성중공업이 참여한 미국 루이지애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사업은 공공·민간 금융이 대형 시공계약 확보를 뒷받침한 사례다.

지난 6월 정부와 KIND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 사업은 미국 루이지애나 연안에서 연간 약 440만톤의 액화천연가스를 생산하는 해양플랜트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총사업비는 약 48억달러이며, 이 가운데 삼성중공업이 확보한 설계·조달·시공(EPC) 계약 규모는 약 28억달러다.

KIND가 7000만달러, 녹색펀드가 3000만달러, 한국해양진흥공사가 5000만달러를 투자하는 구조로 참여했다. 국내 공공기관과 정책펀드가 글로벌 투자자와 함께 사업의 금융구조를 뒷받침하면서 삼성중공업의 EPC 수주를 지원한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 설계와 건조 역량을 바탕으로 시공계약을 확보했다. 현대건설처럼 개발사업에 직접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과는 다르지만, 사업 금융과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결합해 대형 계약으로 이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업은 해외건설의 투자개발형 전환이 모든 기업에 동일한 역할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업개발 능력을 갖춘 기업은 투자자로 참여하고, 설비 제작과 시공에 강점이 있는 기업은 금융이 결합된 프로젝트에서 계약을 확보할 수 있다.

운영·관리 분야에서도 실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6월 튀르키예에서 크날르~말카라 고속도로 운영·유지관리(O&M) 사업과 말카라~차나칼레 고속도로 대수선 사업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총 계약금액은 약 1860억원이다. 크날르~말카라 고속도로 운영·유지관리 계약이 약 1350억원, 말카라~차나칼레 구간 대수선 계약이 약 510억원이다.

한국도로공사는 크날르~말카라 고속도로의 건설 기간에 사전 운영 자문을 제공하고 2029년 개통 이후 현지 기업 리막(Limak)과 함께 10년간 운영·유지관리를 수행할 예정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1억유로 규모의 금융지원과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참여가 계약 확보를 뒷받침했다.

이 사업은 공사를 직접 시공하지 않더라도 축적한 기술과 운영 경험을 활용해 장기 서비스 계약을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외 도로 운영 실적은 후속 인프라 사업에 참여할 때도 중요한 경쟁 기반이 된다.

현대건설의 개발 투자, 삼성중공업의 금융 연계 시공, 한국도로공사의 운영계약은 참여 단계와 수익구조가 서로 다르다. 세 사례는 이번 신전략펀드의 집행 성과가 아니라 기존 민관협력과 정책금융을 활용해 확보한 사업으로, 정부가 새 펀드를 통해 확대하려는 해외 진출 방식의 선행 사례에 해당한다.

이러한 변화는 해외건설 수주 실적을 평가하는 방식에도 시사점을 준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국내 기업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147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4% 감소했다.

지난해 체코 두코바니 원전 등 대형 계약이 포함된 기저효과가 작용했다. 해외건설 수주액은 초대형 프로젝트의 계약 시기에 따라 연도별 변동폭이 크다는 특성이 있다.

올해 8월에는 기존 공사의 계약금액 증액이 전체 월간 수주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계약 증액 역시 공사 범위 확대 등에 따른 실제 사업 성과지만, 신규 프로젝트 확보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투자개발형 사업에서는 지분 투자와 사업권 확보, 시공계약, 운영·관리 계약이 서로 다른 시점에 발생한다.

개발사업에 투자한 기업이 장기간 지분 수익을 확보할 수도 있고, 시공에 참여한 기업은 공사 수행에 따른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운영사업자는 별도의 계약에 따라 관리용역 수익을 확보한다.

사업별 참여 구조가 다른 만큼 투자개발형 해외사업의 성과를 연간 시공 수주액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신규 사업권 확보와 실제 투자집행, 시공계약, 운영수익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진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패키지형 수주는 대형 건설사의 프로젝트 수주를 기자재 공급과 설비 설치, 장기 유지보수 계약으로 연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발전소와 해양플랜트, 도로 등 대형 인프라 사업은 건설 과정에서 기계·전기설비와 각종 부품이 필요하고, 운영 단계에서도 정비와 교체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국내 기업이 사업 초기부터 설계와 조달 과정에 참여하면 시공 이후 유지보수까지 공급망을 확대할 기회가 생긴다. 다만 실제 납품과 서비스 계약은 현지 조달조건과 기술규격, 가격 경쟁력 등에 따라 결정된다.

정부의 해외건설 금융지원은 이처럼 개별 건설사의 수주를 넘어 국내 산업 전반의 해외사업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향후 관건은 3조원 펀드가 실제 사업 발굴과 투자로 연결되는 속도다.

해외 인프라 개발은 인허가와 사업성 검토, 금융약정, 착공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국가별 공동투자 플랫폼이 효과를 내려면 현지 정부와 금융기관, 국내 기업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사업위험과 기대수익을 합리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현재 3조원은 조성 목표액으로 전액이 확보되거나 집행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한 출자금도 국회 심의 등 후속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책의 성과는 펀드 규모 자체보다 신규 사업권과 투자계약, 민간자본 유치, 국내 기업의 기자재 공급 및 장기 운영계약이 얼마나 확대되는지로 확인할 수 있다.

현대건설과 삼성중공업, 한국도로공사의 사례는 국내 기업의 기술과 사업관리 능력이 금융지원과 결합할 때 해외시장 진출 방식이 다양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신전략펀드는 이러한 협력 모델을 더 많은 국가와 사업으로 확산하기 위한 금융 기반이다. 국내 해외건설 산업도 시공 경쟁력을 토대로 사업개발과 투자, 운영·관리까지 수익원을 넓히는 방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토요경제 / 김지영 기자 jykim.media@gmail.com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1
    신한·KB국민·하나 뚫은 해킹, 은행 '본체' 아닌 주변부 노려

    신한·KB국민·하나 뚫은 해킹, 은행 '본체' 아닌 주변부 노려

    최근 금융권에서 잇따른 해킹 사고는 인터넷뱅킹이나 계정계보다 대출모집인·임직원 등이 사용하는 외부 업무시스템에 집중됐다. 금융당국도 외부 웹페이지와 서버를 보안 사각지대로 지목하면서 금융권의 보안 점검 범위가 핵심 전산망에서 외부 접점으로 확대되고 있다.5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정보유출이 확인된 곳은 신한·KB국민·하나·BNK부산은행과 현대캐피

    2
    SK에코플랜트, AI·반도체 82% 됐다…12월 합병 시험대는 '본체 이익'

    SK에코플랜트, AI·반도체 82% 됐다…12월 합병 시험대는 '본체 이익'

    SK에코플랜트의 사업 중심은 이미 건설에서 AI·반도체로 옮겨갔다. 12월 SK에코엔지니어링 합병을 앞두고 다음 과제는 커진 외형을 본체의 안정적인 이익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8일 SK에코플랜트의 재무자료와 회사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은 10조504억원, 영업이익은 1조4650억원이다. 2분기에만 매출 5조1507억원, 영업이익 5336억원

    3
    두산건설, 도시정비 4조 돌파…수주 늘리고 원가율 낮춰

    두산건설, 도시정비 4조 돌파…수주 늘리고 원가율 낮춰

    두산건설이 도시정비사업 수주를 4조원대로 끌어올렸다. 상반기 이후 1조3000억원 넘는 시공권을 추가하면서도 기존 사업장의 원가율을 낮춰 수익성을 함께 개선했다.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두산건설은 올해 현재까지 13개 도시정비 사업장에서 총 4조110억원 규모의 시공권을 확보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민간 재개발·재건축뿐 아니라 공공재개발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

    4
    퍼스트솔라, JA Solar까지 제소…미 태양광 장벽 '관세서 특허로'

    퍼스트솔라, JA Solar까지 제소…미 태양광 장벽 '관세서 특허로'

    미국 태양광 시장의 진입장벽이 관세와 원산지 규제에서 핵심 제조기술 특허로 넓어지고 있다. 미국 퍼스트솔라(First Solar)가 중국 제이에이솔라(JA Solar)를 상대로 TOPCon 특허소송을 추가하면서 미국 시장에서는 생산기반과 공급망에 이어 지식재산권 관리가 새로운 경쟁요소로 부상하고 있다.5일 미국 법원 기록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First S

    5
    iM뱅크·SBI저축은행도 공격…금감원 8월부터 금융권에 경고

    iM뱅크·SBI저축은행도 공격…금감원 8월부터 금융권에 경고

    최근 금융권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금융감독원이 국가배후 해킹조직의 공격 징후를 포착해 금융회사에 보안 강화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iM뱅크와 SBI저축은행 등에도 실제 공격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의 사전 경고가 개별 금융회사의 보안체계에서 얼마나 제대로 작동했는지가 후속 점검 대상으로 떠올랐다.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손명수 의원실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