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는 왜 ‘하루짜리 돈’까지 끌어썼나 '상반기 STB 900조'

증권·자본시장 / 임종호 기자 / 2026-07-14 10:53:24
전년보다 90.3% 증가…증권사 발행액은 3배로 급증
증시 거래·신용융자·파생상품 자금 수요 확대
누적 발행액 착시 있지만 초단기 차환 의존은 부담
▲ 한국예탁결제원 [토요경제]

 

올해 상반기 단기사채 발행액이 990조원에 육박했다. 증권사의 단기자금 조달이 급증하면서 전체 발행 규모를 끌어올렸다. 증시 거래 확대와 신용융자, 상장지수펀드(ETF), 파생상품 관련 자금 수요가 동시에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1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단기사채(STB)를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총 990조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520조1000억원보다 90.3% 증가했다. 직전 반기 640조1000억원과 비교해도 54.7% 늘었다.

단기사채는 기업어음(CP)과 콜시장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전자등록 방식의 단기 채무증권이다. 만기가 1년 이하이고 발행금액이 1억원 이상인 사채를 말한다.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운전자금과 일시적인 유동성을 확보할 때 주로 사용한다.

이번 증가세는 증권사가 주도했다. 증권사의 상반기 단기사채 발행액은 615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7.1% 급증했다. 전체 발행액의 62.2%가 증권사 물량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증권사 발행액이 약 200조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일반 단기사채 발행액도 806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1.1% 늘었다. 반면 유동화회사가 발행한 유동화 단기사채는 183조1000억원으로 18.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 수요보다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회사의 일반 운영자금 수요가 발행 증가를 이끌었다는 의미다.

다만 990조원을 금융회사의 빚이 반년 동안 990조원 늘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예탁결제원의 발행액은 상환된 물량까지 포함한 누적 금액이다. 만기가 끝날 때마다 같은 규모의 단기사채를 다시 발행하면 발행액이 반복해 더해진다.

예를 들어 증권사가 1조원을 하루 만기로 빌린 뒤 매일 상환하고 다시 발행하면 실제로 계속 빌리고 있는 돈은 1조원이다. 그러나 누적 발행액은 영업일 수에 따라 수백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 단기사채 발행액은 대출 잔액보다 자금이 얼마나 자주 회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다.

실제 상반기 단기사채의 99.8%인 987조7000억원은 만기가 3개월 이하인 물량이었다. 1일물이 385조4000억원, 2일 이상 7일 이하 물량이 244조1000억원이었다. 일주일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사채만 629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63.6%를 차지했다.

증권사가 이처럼 초단기 자금을 대거 조달한 첫 번째 배경은 증시 거래 확대다. 주식 거래가 늘어나면 증권사는 고객 예탁금 결제와 신용융자, 미수거래 등에 필요한 운전자금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특히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가 증가하면 증권사가 외부에서 조달해야 할 자금도 함께 늘어난다.

상장지수펀드와 파생상품 시장 확대도 단기자금 수요를 키운다. 증권사는 ETF 유동성공급자나 파생상품 중개·운용자로 참여하면서 기초자산과 선물·옵션을 동시에 사고판다. 이 과정에서 결제자금과 증거금, 위험회피 거래에 필요한 현금이 수시로 발생한다. 장기 회사채를 발행하기보다 하루 또는 일주일짜리 단기사채를 활용하는 것이 자금 운용에 유리할 수 있다.

대형 증권사들이 기업금융과 자기자본 투자, 채권 운용을 확대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증권사는 고객의 주식거래를 중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대출, 인수금융, 채권·주식 투자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운용자산이 커질수록 결제와 담보 제공에 필요한 단기 유동성도 증가한다.

금리 불확실성도 단기 조달을 부추긴다. 장기 회사채를 발행하면 높은 금리를 수년 동안 부담해야 한다. 반면 단기사채는 만기가 짧아 향후 금리가 내려갈 경우 더 낮은 비용으로 차환할 수 있다. 시장금리 방향이 불투명할수록 금융회사는 장기 자금보다 단기 자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투자자 측 수요도 충분했다. 상반기 단기사채 가운데 신용등급 A1 물량은 946조원으로 전체의 95.6%를 차지했다. 머니마켓펀드(MMF)와 증권사 신탁, 법인 단기자금 등은 만기가 짧고 신용등급이 높은 상품을 선호한다. 증권사는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투자자는 짧은 기간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구조다.

그러나 발행액이 빠르게 늘었다는 점을 단순한 시장 활성화로만 볼 수는 없다. 단기사채는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투자자를 확보해 원금을 갚아야 한다. 금융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차환이 원활하지만 신용 불안이나 주가 급락이 발생하면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특히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 조달한 돈이 신용융자처럼 비교적 회수가 빠른 자산에 사용되지 않고 부동산 금융이나 기업 대출, 비상장주식 등 장기·비유동성 자산에 투입되면 위험이 커진다. 갚아야 할 돈의 만기는 짧은데 투자금 회수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자산·부채 만기 불일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발행액이 최상위 신용등급에 집중된 점도 양면성이 있다. 우량 증권사는 단기시장에서 비교적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시장의 자금이 A1 등급에만 몰리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단기 조달 여건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A2 이하 등급의 발행액은 44조원으로 전체의 4.4%에 그쳤다.

상반기 단기사채 990조원은 증권사의 빚이 990조원 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초단기물이 반복 발행되면서 누적 금액이 커진 측면이 상당하다. 그러나 증권사 발행액이 1년 만에 3배 이상 늘고 전체의 62%를 차지했다는 점은 증권시장의 자금조달 구조가 짧아지고 있다는 신호다.

앞으로는 누적 발행액보다 실제 미상환 잔액과 조달자금의 사용처를 함께 봐야 한다. 증권사의 단기차입이 신용융자와 거래 결제를 지원하는 수준인지, 장기 투자와 비유동성 자산 확대에 사용되는지에 따라 위험은 달라진다. 990조원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짜리 돈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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