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

문화·라이프 / 토요경제 / 2011-12-05 12:12:20
<정부를 팝니다> 출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민주공화제 국가의 국민은 주권자로서 국가공동체의 유지, 관리, 보수(다시 말해 국가안보, 치안, 행정) 등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가지며, 헌법에 따라 이들 권리와 책임을 정부에 위임한다. 그리고 국민이 위임한 기능을 정부가 어떻게 수행하는지 감시하고 때로는 심판한다.


그런데 최근 수십 년 사이 정부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정부 기능이 민간에 위임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국민이 정부에 위임한 기능을 정부가 다시 민간기업에게 맡기는 것이다.


정부가 서비스하는 영역을 민간에 넘기는 것, ‘민영화’란 정부가 위임받은 주권을 일부 시민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원제 ‘주권 아웃소싱’이라는, 언뜻 이해 안 되는 말이 성립된다.


<정부를 팝니다>의 저자 폴 버카일은 미국의 상황에서 역사적 맥락과 법적인 관점과 원칙, 쟁점을 검토하면서 민영화의 의미를 묻는다. 정부는 주권을 아웃소싱할 권한이 있는가? 저자는 “그 판단은 ‘국민의 허락을 받은’ 헌법에 근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사적인 기업에 위임될 수 없는, 혹은 위임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으며, 그러한 공적 영역이 민영화되면 민주주의적인 통제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효율성이라는 가치보다 헌법과 시민 주권의 가치가 더 우위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수도·전기·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을 민영화 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방·교도소·치안 등 그야말로 정부가 담당해야할 역할마저 민간 기업에 팔아먹고 있다. 이라크전쟁 당시 미국이 이라크 최고행정관으로 파견한 폴 브레머를 호위한 것은 미국군대가 아니라 ‘블랙워터’라는 사설경호업체였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뉴올리언스의 치안을 담당한 것도 미국경찰이 아닌 블랙워터였다. 과거 봉건제 시절에나 존재했던 ‘사병’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교도합자회사(CCA)’라는 사설 교도소 업체는 미국 전역에서 63개 교도소를 운영하며 6만 9000명을 수감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전체 민간 교도소 수용 인원의 50퍼센트가 넘는다. 그러나 ‘교도소 시장’의 규모는 아직 작은 편이다. 민간 교도소가 수용하는 인원은 전체 수감자의 약 5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위 ‘민간 경찰’은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에 속한 경찰보다 많다.


2007년 현재 미국에서는 80만 곳이 넘는 민간 계약자가 1만 1000개 정부기관으로부터 안보 관련 기밀사항 취급 허가권을 얻었다고 한다. 정부기관의 직무를 감찰·감독하는 기구는 정부 각 기관이 일을 맡긴 민간 계약자의 업무 수행이나 계약 위반 여부에 대한 평가를 다시 민간기관에 의뢰한다. 저자는 “정부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민간에게 넘겨줬을 때 이들은 정부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라고 묻는다.


하버드 법대 마사 미노 교수는 “민주주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군대·교도소·치안·국내 안보의 민영화 배후에 있는 ‘민간 용역 기업’이 정부의 ‘제4부’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책에서 제기하는 정보와 질문들을 알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대한민국도 한미FTA를 통해 수많은 분야에서 민영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영리병원분야와 보험분야, 수많은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수도·전기 분야 등 우리도 고려해야할 문제들은 산더미같다.


결국은 우리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제1조는 말한다. 그러나 이젠 “우리의 주권이 그때도 우리에게 남아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폴 버카일 저·김영배 역, 1만8천원, 시대의창.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토요경제
토요경제 안녕하세요. '토요경제' 토요경제 입니다.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1
    CJ, 중앙일보 인수전 막판 등판…이재현의 투자 공식과 다른 세 가지 변수

    CJ, 중앙일보 인수전 막판 등판…이재현의 투자 공식과 다른 세 가지 변수

    예비입찰에 불참했던 CJ그룹이 중앙일보 본입찰을 사흘 앞두고 다우키움그룹과 공동 인수를 추진하면서 막판 행보를 바꾼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재현 회장의 기존 투자 결정 패턴에 비춰 새로운 제안이나 거래조건 변화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J그룹은 다우키움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오는 19일 중앙일보 인수 본입찰에 참

    2
    SK하이닉스 솔리다임, 美 로비 2022년 종료 신고…신설법인은 해외투자 규제 대응

    SK하이닉스 솔리다임, 美 로비 2022년 종료 신고…신설법인은 해외투자 규제 대응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플래시 사업이 법인 재편을 거치면서 미국 정부 대응체계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과거 로비업체의 활동 종료 신고가 확인된 가운데 올해 신설법인이 체결한 계약에는 해외투자 규제 준수가 공식 의제로 등장했다.16일 토요경제가 미국 연방의회 로비활동 공개시스템(LDA)과 SK하이닉스 공시를 분석한 결과, SK하이닉스(대표이사 곽노정)의 미국

    3
    CJ·신세계, 중앙일보 인수 다른 셈법…JTBC가 변수

    CJ·신세계, 중앙일보 인수 다른 셈법…JTBC가 변수

    CJ그룹과 신세계가 중앙일보 인수에 손을 잡았지만 투자 목적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신세계는 재무적 투자(FI)를 내세우지만 중앙일간지가 지닌 정무적·대외적 가치도 무시하기 어렵다. 반면 CJ는 투자 부담을 나누면서 향후 JTBC와 콘텐츠 자산 확보에 나설 여력을 남기는 전략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주목된다.21일 투자은행(IB)업계와 금융감독원 공시 등에

    4
    코스맥스, 규정 검토 2년 새 52% 증가 전망…K뷰티 수출 확대 대응

    단독 코스맥스, 규정 검토 2년 새 52% 증가 전망…K뷰티 수출 확대 대응

    국내 대표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의 제품 규정 검토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K뷰티 브랜드들이 국내 판매와 해외 진출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제품 개발 단계부터 국가별 성분·시험 기준을 확인하는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20일 토요경제 취재 결과 코스맥스(대표 최경·이병만)의 올해 제품 관련 규정 검토 건수는 3만5000건을 넘어설 전

    5
    아모레퍼시픽·구다이글로벌, K뷰티 가품 유통망 차단 강화…AI 감시·해외 세관 공조

    아모레퍼시픽·구다이글로벌, K뷰티 가품 유통망 차단 강화…AI 감시·해외 세관 공조

    K뷰티 기업들의 위조상품 대응이 온라인 감시를 넘어 제조시설과 유통망 추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위조상품 탐지를 강화하고, 구다이글로벌은 해외 세관 및 수사기관과 협력해 공급망 차단에 나섰다.20일 지식재산처와 화장품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온라인에서 차단된 K뷰티 위조 화장품 판매 게시물은 3만6116건으로 전년 2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