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에피소드 13 - 철십자가앞에서 멈춰서는이유...

문화·라이프 / 강세훈 / 2019-03-29 17:09:18

순례길을 시작한지 이십여 일이 지났다. 메세타평원을 지날때 은하수를 보고 싶어서 새벽에 일어난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동이 터오르다보니 옅게 깔린 은하수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아침을 맞이해야 했었다. Astorga를 지난 후 2번의 해발 1,400여 미터의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이때 다시 은하수를 보기위해 도전했다. 폰세바돈 공립알베르게에서 불편하게 잠을 잤던터라 새벽 4시 50분 되서야 눈이 떠졌다. 어제 저녁에 미리 배낭과 짐을 침실 밖에 놓아둔 상태라 침낭만 들고 침실을 빠져나오면 되었다. 부랴 부랴 짐을 챙기고 일행분들한테는 먼저 나간다고 얘기를 해놓은 상태라 편하게 알베르게를 벗어났다.



차가운 공기가 옷사이로 스며들어 자켓을 입은 몸을 더욱 움추려 들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자유를 얻은 듯한 기분으로 편하게 고개위로 걸어가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1키로미터 정도 걸어가 뒤돌아보니 알베르게의 가로등이 점처럼 보이고 완연한 어둠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어릴때 보았던 북두칠성이 지평선 바로 위에 걸쳐 있고 매우 크게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안개처럼 흘러가는 은하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와우!!!!!!!!! 이렇게 다시 은하수를 보다니...!!"



걷는 내내 머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하늘에 박힌 별들을 보는 재미가 이렇게 좋았나 싶다. 알지못하는 별자리들도 보인다. 그리고 동편에 밝게 빛나는 금성까지도... 어느덧 별을 바라보며 걸어서 낮은 바위 동산이 눈앞에 들어왔다.



" 뭐지? 근데 가운데 무언가 세워져 있네?"



순례길을 준비할때와 The Way라는 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던 철십자가(Cruz de Ferro)였다. 걱정을 덜어내기위해 집에서부터 돌을 가져와 던진다는 그곳이다. 이러한 장소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폰세바돈 위에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매일 걸어야할 코스에 대한 검색을 하였지만 놓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오늘이 그런 케이스다.



이 철십자가를 사진으로 남기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면 후회할 것 같았다. 어두워서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밝을 때까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데도 지나칠 수 없었다. 오늘 새벽의 목표는 은하수를 보는거였지만 목표를 달성하니 새로운 욕심이 생긴것이다. 오늘 지나가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여기서 해뜰때까지 기다려 철십자가를 사진에 담기로 하였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내니 순례자들 한 두명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앞에서 바로 지나가지 않고 철십자가에 기도를 하던가 바라보던가 사진을 찍는다. 해가 떠오르는 반대쪽에 서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카메라 셔터도 자연스럽게 눌러졌다.


시간이 지날 수록 순례자의 수는 늘어만 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모두 그냥지나치지 않는다. 이곳에서 무언가 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어느 여성 순례자는 철십자가앞에 기도드리는가 싶더니 흐느끼며 운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지만 울음으로 마음속에 담겨진 근심을 털어내버리는건 아닐런지... 철십자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 순례길에서 만나 친해진 사람들끼리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준다. 즐거워하는 모습들, 어느 순레자는 굳은 표정으로 심각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눈에 익은 세월호 리본도 보인다. 나름에 사연을 여기에다 묻어두려는듯 한참을 서성이고 있다. 나는 그저 돌에 새겨진 글귀, 사진, 십자가에 걸린 목걸이들을 찬찬히 내려다 보았다. 수많은 나름에 사연이 여기에 묻혀 있다.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이 쌓아놓은 이야기의 방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돌하나 던져놓지 못하고 나는 그냥 서있기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보는것만으로 충분히 동질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돌을 십자가 옆에 던지면서...



어느덧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일부는 이곳을 떠나고, 일부는 일출을 보기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루종일 이라도 있고 싶지만 순례길은 멈출 수 없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철십자가가 있는 고개마루를 넘어왔다.


철십자가 언덕은 고난과 걱정을 내려놓는 곳이다. 처음 길에서 고생하고, 페르돈언덕에서 용서를 구하거나 용서를 해주었다면, 나머지 마음속 찌꺼기를 내려놓은 자리가 여기이다. 그렇게 내려놓은 근심이 켜켜히 쌓여 십자가 아래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를 내려놓은 사람들은 마음을 단장하고 남은 순례길을 홀가분하게 걸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려 놓을게 없었다. 아직은 채워야할 무언가가 남은것처럼 마음속 공허함이 느껴졌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1
    CJ, 중앙일보 인수전 막판 등판…이재현의 투자 공식과 다른 세 가지 변수

    CJ, 중앙일보 인수전 막판 등판…이재현의 투자 공식과 다른 세 가지 변수

    예비입찰에 불참했던 CJ그룹이 중앙일보 본입찰을 사흘 앞두고 다우키움그룹과 공동 인수를 추진하면서 막판 행보를 바꾼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재현 회장의 기존 투자 결정 패턴에 비춰 새로운 제안이나 거래조건 변화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J그룹은 다우키움그룹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오는 19일 중앙일보 인수 본입찰에 참

    2
    정의선 6년,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현대차 밖' 성장…현대제철·현대캐피탈 해외 확장

    정의선 6년,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현대차 밖' 성장…현대제철·현대캐피탈 해외 확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취임 6년 동안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주요 계열사의 사업구조도 달라졌다. 완성차 생산과 판매를 지원하던 계열사들이 외부 고객과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하면서 그룹의 수익 기반을 넓히고 있다.14일 취임 6주년을 맞은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주목할 변화는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가 새로운 성장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정몽구 명예회

    3
    정의선 6년, 현대차그룹 '추격자의 문법' 바꿔…공장, AI·로봇 키워

    정의선 6년, 현대차그룹 '추격자의 문법' 바꿔…공장, AI·로봇 키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취임 6년의 핵심 변화는 자동차 제조기반의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는 데 있다. 기존 공장과 공급망을 인공지능(AI)·로봇 기술의 실증 및 사업화 기반으로 활용하면서 자동차 중심의 산업구조를 확장하고 있다.14일 취임 6주년을 맞은 정의선 회장은 2020년 10월 14일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그룹 경영을 이어받았다. 정몽구 체제가

    4
    SK하이닉스 솔리다임, 美 로비 2022년 종료 신고…신설법인은 해외투자 규제 대응

    SK하이닉스 솔리다임, 美 로비 2022년 종료 신고…신설법인은 해외투자 규제 대응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플래시 사업이 법인 재편을 거치면서 미국 정부 대응체계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과거 로비업체의 활동 종료 신고가 확인된 가운데 올해 신설법인이 체결한 계약에는 해외투자 규제 준수가 공식 의제로 등장했다.16일 토요경제가 미국 연방의회 로비활동 공개시스템(LDA)과 SK하이닉스 공시를 분석한 결과, SK하이닉스(대표이사 곽노정)의 미국

    5
    산은캐피탈·고팍스도 침해사고…금융사 130곳 보안관리 미흡

    산은캐피탈·고팍스도 침해사고…금융사 130곳 보안관리 미흡

    산은캐피탈과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 운영사 스트리미에서도 침해사고가 확인됐다. 금융권 전반으로 사고가 확산하는 가운데 금융회사 자체점검에서도 보안관리 미흡 사례가 대거 드러났다.1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위는 전날 오후 신진창 사무처장 주재로 '제2차 긴급 상황대응 회의'를 열고 금융권 침해사고 조사 결과와 보안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금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