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송현섭 기자]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는 장기 복합불황 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가뜩이나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생존의 기로에 놓여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각 은행에 중소기업 대출을 늘릴 것을 주문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연체율과 대출 부실화를 우려해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가계대출에만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지난해 금융권에 큰 피해와 충격을 안겨준 '모뉴엘 사태'이후 정부의 눈치만 살피면서 중소기업 대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은행들의 까다로운 여신심사 관행을 개선해야 자금난이 해소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편집자 주>
국내 은행권이 올해 중소기업 대출 목표치를 지난해 실적에 비해 39.7%나 상향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을 통틀어 중소기업 대출목표는 액수로 총 26조7000억원에 달하는데 지난해 실적 19조1000억원에 비해 39.7% 늘어난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중소기업 대출은 까다로운 여신심사 관행과 기술금융 쏠림으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리는 회사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중소기업 대출을 압박하자 눈치보기에 급급한 은행권이 '생색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뒷말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이를 반증하듯 국내 시중 및 지방은행의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 목표액은 24조7000억원으로 목표대비 달성률이 77%에 그치고 있다.
물론 지난해에 비해 목표치를 크게 올렸지만 작년에도 목표치를 미달한 가운데 올해 대출 목표치만 올린다고, 경영이 악화되고 있는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해소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욱이 산업계 일각에선 이번 대출목표 상향조정이 작년 하반기이후 당국이 은행권에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요구한 결과로 그나마 기술금융 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금융권의 보신주의를 질타한 뒤 당국은 기술금융을 위주로 중소기업 대출 확대를 크게 독려하고 나선 바 있다.
□ 은행들, 中企대출시 연체부터 걱정
그러나 은행권이 중소기업 대출을 본격화할 것인지 여부는 불투명한데 무엇보다 지난해 '모뉴엘 사태'에 따른 피해와 충격으로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등 최근 경향이 우려를 낳고 있다. 상당수 은행 여신담당자는 정부의 중기대출 확대시책 배경은 이해가 되지만 부실대출 우려가 높다며 연체율에 신경 써야하는 마당에 무작정 확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은행권이 중기대출을 늘리기로 했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면서도, 목표액이 실적으로 연결될지 여부는 장담키 어려워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계 일각에선 작년부터 중기대출을 확대한다고 누차 강조해왔지만 정부의 눈치만 슬슬 보는 은행들에게 기대해봐야 좋을 것 없다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 작년말 금융당국은 새해에는 중기대출을 전년보다 38조4000억원 늘리겠다면서 중소기업의 금융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지원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시중 및 지방·특수은행 대출비중이 '5 : 1 : 4' 수준으로 설정된 것도 주목받았는데 대출 증가액은 시중은행 19조9000억원, 지방은행 6조8000억원, 특수은행 11조7000억원 등 순이었다.
무엇보다 정부가 중기대출을 늘리려는 배경은 경기침체와 업황부진으로 경영이 악화된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 봉착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은행들은 일단 영업점 성과지표에 중소기업 대출배점을 올리고 성장단계별 맞춤형 신상품을 개발하며, 지원조직을 확충하는 등 중기대출 확대방침을 시사했다.

일단 작년말 은행권의 중기대출은 522조4000억원으로 2013년말에 비해서는 35조4000억원이 늘어난 규모인데 2013년 증가액 27조3000억원에 비해 8조1000억원 많은 수준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 같은 중기대출 증가세는 지난해 기술금융 지원실적이 8조9000억원으로 전체 중기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 당국도 보수적 여신관행 개선안 없어
이는 작년 7월부터 기술력이 우수한 중소기업에 대한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실시중인 기술신용평가기반 대출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도 중소기업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패스트트랙(Fast-Track) 프로그램 운영기간을 1년 연장하고, 중소기업 금융애로 상담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은 일시적으로 유동성 문제를 겪는 중소기업이 적용대상으로 선정되면 1개월 내에 금융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지만 실효성에는 다소 의문이 들고 있다. 대신 은행들의 보수적 여신관행 개혁을 통해 중소기업 자금지원이 확대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당국도 금융기관을 계도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설립이래 수십년이나 된 회사든 5년이 안된 신생업체든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애로사항으로 자금난을 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부단하게 신제품 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노력하기 위해 유능한 인재를 충원하고, 연구개발 및 생산설비 고도화와 증산에도 신경을 써야하는 만큼 투자를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수적인 여신관행을 지속하고 있는 금융권이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이 모순이기도 하다. 이를 반증하듯 한국은행이 발표한 중소기업 자금사정 지수는 지난 2010년 88.9에서 2013년에는 80.1로 급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지수는 국내 중소기업의 분기별 자금흐름을 수치화한 것인데 100을 넘으면 전 분기보다 자금사정이 호전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 담보대출 위주 여신심사 최대난제
특히 이 같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은행의 대출심사가 까다롭고 평가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불만을 표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은행은 3개 주요 항목을 기반으로 대출심사를 진행하게 되는데, 회사 매출실적과 공장부지 및 자산규모, 담보가 기업의 신용평가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경기상황이 좋아 매출액이 상승세를 타고 있거나 적어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보다 나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겠지만, 매출이 하향세인 경우 줄어든 실적만큼 상대적으로 대출원리금 상환 등에 불이익을 받는다. 예를 들어 연간 매출액이 100억원인 회사가 30억원의 대출을 받았을 때 일시적이라도 매출이 80억원으로 하락하면 20억원에 대한 대출원리금을 추가로 상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행 때문에 매출이 줄면 신용등급도 하락해 대출 원리금 상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며 안정적 자금 확보를 위한 중장기 대출보다 단기 대출로 집중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심지어 불황의 장기화와 업황부진이 계속되면서 갈수록 중소기업 대출 부실화 우려가 증폭되면서 이를 우려하는 금융권의 대출만기를 점차 짧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자료에는 중소기업의 1년이하 단기대출 비중이 전체 자금 조달채널의 70%를 넘고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체율도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산업계의 주장인데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국내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14%에 달해 2013년말보다 0.26%P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 기술금융 집중현상으로 지원효과 편중돼
산업계는 중소기업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는 원인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은행권에 대한 대출의존도가 높고 단기대출이 많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목하고 있다. 그나마 금융 및 세제지원을 통해 중소기업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정부의 지원책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 정책금융이 효과를 발휘하기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를 들어 현 정부는 창조경제 구현 및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기술금융을 강조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재무상태보다 현재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을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는 과거 R&D(연구개발) 역량 및 특허·상표·신안등록을 포함한 지식재산권에 대한 평가가 어려운 가운데, 정부의 의지대로 여신심사 규제가 완화돼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당장 경영성과가 거의 없고 재무상태가 취약하지만 우수한 기술과 비즈니스모델, 유망사업 아이템이나 노하우, 아이디어 등이 있다면 과감하게 자금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방향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같은 맥락에서 기술금융이 탄력을 받고 있는데 금융기관들이 기술력 평가에 대한 공정성 시비와 객관적 검증이 어려운 한계를 들어 자금지원을 머뭇거렸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면모가 돋보인다.
그러나 저금리·저성장 기조로 예대마진이 갈수록 위축되는 여건 때문에 전반적으로 기업대출을 꺼리는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강화된 여신심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술금융 역시 일부기업에만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계 일각에선 기술금융이 도입된 뒤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일시적으로 해소된 측면은 있지만 일부 우량업체에만 지원자금이 쏠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영상태가 취약한 소규모 기업 등에도 정책자금이 지원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최우선으로 정부 정책금융 심사 및 은행의 여신심사 관행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을 뭉뚱그려 지원자금이 편중되지 않도록 규모별로 분류하거나 건별 제한을 통해 공평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가계대출은 느는데 中企대출은 '소걸음'
또한 시중은행들이 주택 등 담보를 잡거나 보증 등 리스크가 적은 가계대출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돼 중소기업 대출이 여전히 외면당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국민은행을 비롯해 우리·신한·하나은행과 한국SC·씨티은행 등 국내 6대 시중은행의 주요 대출 총잔액은 작년말 기준으로 793조3000억원에 달해 2013년보다 7.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세자금대출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며 2013년 11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16조6000억원으로 43.9%나 급증했으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2013년 270조6000억원에서 같은 기간 299조8000억원으로 무려 29조2000억원이나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영업자대출 역시 급증세를 보이며 2013년 127조9000억원에서 141조5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나 10.6%의 증가율을 기록했는데 2010년이래 매년 10조원이상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지난해 주요 시중은행들의 대출이 늘어난 것은 가계대출에 집중했기 때문이며 상대적으로 경제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관건인 기업대출은 저조한 실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전세·주택담보·자영업자대출에 신용대출 등을 합쳐 가계부문 대출 증가액은 50조원대에 이르는 만큼 2014년 대출총액 증가분 56조2000억원의 88.9%가 모두 가계대출 증가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출자가 일부 겹치는 통계상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자영업자대출을 제외한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4조3000억원에 그쳤다.
1년새 13조6000억원이 늘어난 자영업자대출 증가에 비해 1/3에 불과한 저조한 수준인 만큼 은행들이 말로만 기업대출 확대를 내세웠지 실행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리스크가 적은 가계대출에만 골몰해 가계부채 부실화 문제를 확산시킨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직면하고 있다.
□ 은행 가계대출 집중문제부터 해결해야
실제로 한 은행 여신담당자는 "행원들이 힘들고 책임이 큰 기업여신 담당을 꺼리고 있다"며 "직무연수 때부터 아예 여신심사과정을 택하지 않으려는 풍조도 만연해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개인여신의 경우 리스크가 적은 담보대출이 대부분이고 신용대출이라고 해도 소규모이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적다"며 "기업대출이 아무리 적더라도 예금 또는 개인 등 가계대출보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자칫 업무처리가 잘못되면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모뉴엘 사태' 등 지난해 은행들의 부실기업 대출이 도마에 오르면서 은행권의 기업여신이 크게 위축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기업대출 규모는 2013년 153조5000억원에서 작년말 157조8000억원으로 4조3000억원이 늘어 2.8%의 증가율에 그쳤다.
심지어 대기업대출이 2013년 98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100조4000억원으로 2.0% 늘어 중소기업대출 증가율에도 미달하는 수준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기업금융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려진 우리은행의 경우 중소기업 대출잔액이 2013년 34조8549억원에서 지난해 34조5269억원으로 3280억원이나 감소한 것이 주목된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18조8460억원에서 19조3261억원으로 2.55% 증가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우리은행의 전세대출 규모는 작년말 3조7337억원으로 2013년보다 72.6% 증가해 6대 시중은행들 중 최고의 증가율을 보였고 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15.2%로, 시중은행들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은행 역시 작년말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전년대비 4.91%, 대기업의 경우 0.25% 감소한 반면 전세대출은 66.6%, 주택담보대출은 11.4% 증가해 우리은행의 뒤를 이었다. 은행권에서는 지난해 시중은행들이 기업 대출사기에 연루돼 리스크가 큰 기업여신이 많이 위축된 것으로 보면서 기업대출의 부진을 안정적인 가계대출로 만회했다고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 장기관점서 기업여신 심사력 강화해야
특히 지난해 주요 은행들이 모뉴엘의 조작된 경영실적을 그대로 믿고 엄격한 신용평가나 현장방문 및 제대로 된 서류심사 없이 거액을 대출해줬다. 모뉴엘은 당시 수출대금을 부풀리고 물량을 허위로 기재하는 등 수법을 통해 혁신적인 가전업체로 홍보되면서 은행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로 이어졌다. 심지어 2007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가 모뉴엘의 제품에 찬사를 보냈다며 과다 홍보에 나선 바 있다.
따라서 경제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대출의 문제는 은행들이 제대로 된 여신심사를 진행할 능력이 약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독려로 인해 대부분 대출이 형식적이거나 성공 가능성이 확인된 업체에 한정해서만 대출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꼬집고 있다.
실제로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대출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 대출에 대해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량적 재무자료만 놓고 건전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 논란거리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중기대출은 무엇보다 은행과 회사간 장기거래에서 축적된 정보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아직 국내에선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관계형 금융을 발전시킬 유인이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은행이 담보력이 없는 중소기업 신기술이나 특허권 등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금융당국이 중기대출 비중을 높이려고 일방적으로 각 금융기관에 압박을 가하거나 하는 행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 은행권 수익구조가 가계대출에 편중된 점은 주식거래 수수료 수입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해 증권업계가 위기를 맞은 상황과 비슷하다는 비판도 설득력을 얻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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