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게임사 발전사② 기술 신화에서 퍼블리셔 변신을 모색한 엔씨소프트의 26년

토요줌IN / 최영준 기자 / 2025-05-15 23:53:39
그래픽 MUD부터 기술 독립까지…국산 MMORPG의 기준을 만든 회사
리니지로 일군 황금기, 그리고 의존 구조의 그늘
퍼플과 신작 전략, 그리고 투톱 체제…안에서부터 바뀌는 엔씨소프트
▲ 엔씨소프트 <사진=최영준 기자>

 

온라인게임의 태동기,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신념으로 회사를 세운 한 개발자는 그저 성공한 게임 하나를 넘어서 한국 MMORPG 산업의 뼈대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엔씨소프트를 창립한 김택진 창업자가 그 주인공이다. 

 

1990년대 말 MUD 기반 텍스트 게임에서 벗어나 그래픽 MMORPG를 구현한 ‘리니지’는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새로운 온라인 생태계를 구현했다. 기술·운영·BM·세계관 모든 것이 업계 기준이 됐고 이후 엔씨는 ‘리니지’라는 초석 위에 한국 게임산업의 가장 전형적인 성공 모델을 완성했다.

 

혈맹·공성전·PvP·아이템 강화 등 MMORPG의 주요 문법을 정립한 이 게임은 빠르게 흥행에 성공했고, 온라인 생태계 그 자체가 됐다.

‘리니지’의 성공은 단순한 흥행을 넘어 하나의 산업 모델로 확장됐다. 유료화 구조와 안정적인 운영, 기술 내재화를 바탕으로 엔씨는 ‘리니지2’로 IP를 확장하고, MMORPG 최적화 엔진을 개발하는 등 기술 중심 게임사의 위상을 구축했다.


◆ 엔씨소프트의 황금기를 만든 두 개의 날개

2004년 이후 엔씨는 리니지에 편중된 이미지를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대형 IP 개발에 착수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아이온’과 ‘블레이드앤소울’이다. 두 작품은 각각의 방향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엔씨소프트의 정체성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2008년 출시된 ‘아이온’은 엔씨의 기술력과 아트 스타일, 콘텐츠 기획 역량을 종합한 결과물이었다. 비행 전투, 천족과 마족의 진영 구도, 대규모 PvPvE 전장은 동시대 MMORPG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출시 첫해 PC방 점유율 1위를 기록했고, 북미·유럽·대만·중국 등지에서 장기 서비스에 성공하며 글로벌 IP로 자리 잡았다. 특히 ‘리니지’가 다소 보수적인 전투와 세계관 중심이었다면, ‘아이온’은 더욱 동적인 콘텐츠 설계와 서사적 요소를 강조하며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2012년에는 ‘블레이드앤소울’이 등장했다. 동양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은 실시간 논타겟팅 액션과 고퀄리티 캐릭터 연출로 국내외 팬층을 확보했다. 격투 중심 전투, 강렬한 서사, 그리고 e스포츠화 가능성까지 갖추며, 엔씨는 ‘프리미엄 MMORPG 전문 개발사’라는 브랜드를 공고히 했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며 글로벌 흥행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시기 엔씨는 단순히 IP 확장에 그치지 않고, 자체 엔진·보안·서버 기술을 모두 내재화하면서 개발과 운영 전반을 수직 통합 구조로 완성했다. 해외 진출 역시 퍼블리셔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유통 체계를 고수해 높은 이익률을 유지했다. 콘텐츠, 기술, 수익 모두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진정한 황금기였다.

 

▲ 아이온 클래식 <이미지=엔씨소프트>

 

◆ 리니지 일변도 반복의 그늘…이어지는 실험과 실패

2017년 ‘리니지M’은 모바일에서도 리니지 IP의 힘을 증명했다. 하루 매출 130억원, 연매출 1조원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형 하드코어 RPG 수익모델을 모바일 환경에 완벽히 이식했다. 이 게임의 성공은 강화 시스템, 자유 거래, PK 중심 콘텐츠가 결합된 ‘리니지라이크’ 장르를 세계 시장에 퍼뜨렸다.

하지만 같은 성공은 구조적 한계로 되돌아왔다. ‘리니지2M’, ‘리니지W’로 이어지는 후속작들은 매출은 높았지만 유저 피로감은 심화됐고, “또 리니지냐”는 회의론이 확산됐다. 이용자들은 과도한 과금 구조와 반복적인 콘텐츠에 피로를 느꼈고, 리니지 IP 외 다른 실험이 사라진 엔씨의 모습은 점점 보수적으로 비춰졌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엔씨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지만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수집형 서브컬처 RPG ‘호연’, 캐주얼 PvP 게임 ‘배틀크래시’는 각기 콘솔·모바일 플랫폼을 겨냥했으나, 출시 전후 시장 반응이 기대에 못 미쳐 개발 중단 혹은 조기 서비스 종료로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게임 실패가 아닌, 엔씨 내부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기존 MMORPG 중심의 조직 구조, 기술 우선 기획 체계, 수직적 의사결정 문화가 빠르게 변하는 게임 시장에서 유연하게 작동하지 못한 것이다.

엔씨는 기술력은 충분했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과 콘텐츠 전략에서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 리니지2M <이미지=엔씨소프트>

 

◆ 구조를 바꾸는 시도, 다시 쓰는 신화를 향해

변화를 위한 시도는 2024년부터 본격화됐다. 핵심은 리니지 중심 개발 체계를 벗어나 내부 구조를 근본부터 재정비하는 데 있었다.

엔씨는 2024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투톱 체제’를 도입했다. 김택진 대표가 기술과 장기 전략을, 박병무 공동대표가 실질적인 운영과 조직 혁신을 맡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취임 이후 ‘호연’, ‘배틀크래시’ 등 리스크 프로젝트를 과감히 정리하고, 수직적 구조를 수평적 체계로 바꾸는 데 주력했다.

이와 별개로, 엔씨는 정체된 리니지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승부수로 ‘아이온2’를 꺼내 들었다.‘아이온2’는 언리얼 엔진5 기반의 오픈월드 MMORPG로, 전작의 천족-마족 구도와 비행 시스템을 계승하면서도 PvPvE와 필드 탐험 중심 콘텐츠로 방향을 전환했다.

리니지식 게임성과는 다른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며, 글로벌 MMORPG 시장에서 재도약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또 다른 신작 ‘LLL’은 SF 기반 3인칭 슈팅 오픈월드 게임으로,기존 엔씨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과 몰입형 서사를 앞세운 콘솔 프로젝트다. 이 게임은 엔씨가 기존 MMORPG 프레임을 넘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다.

26년 전 ‘기술로 만드는 게임’을 외치며 등장한 엔씨소프트는 지금, 기술을 넘어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다시 고민하고 있다.리니지의 성공은 엔씨를 정점에 올려놨지만, 그 그림자도 깊었다. 

 

지금의 엔씨는 그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략과 체질로 나아가려는 변곡점에 서 있다. ‘리니지 회사’라는 수식어를 넘어, 진짜 ‘다시 쓰는 신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는 콘텐츠가 쥐고 있다.

 

토요경제 / 최영준 기자 cyj@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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