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 고부가·저탄소로 대전환…정부 “관세 위기를 기회로”

체크Focus / 이강민 / 2025-11-05 16:48:29
금융·통상·기술을 묶은 ‘패키지 대책’으로 산업 생태계 전환
단기 유동성 지원과 중장기 설비 구조조정 병행 추진
정책 속도·현장 실행력·인프라 연계가 성패 가를 듯
▲ 평택항에 쌓인 철강 제품들/사진=연합뉴스

 

[토요경제 = 이강민 기자] 정부가 철강산업을 ‘범용 축소, 고부가·저탄소 확대’의 궤도로 본격 전환한다. 첫 단추는 철근 등 범용재 설비의 선제적 조정이고, 동시에 수출 금융·통상 대응, 수입 규제 강화, 수소환원제철과 특수탄소강 투자까지 한 묶음으로 밀어붙이는 전략이다. 관세 충격과 글로벌 공급과잉이라는 이중 압박을 견디면서 산업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번 대책은 지난 4일 ‘제5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됐다. 회의를 주재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대외 불확실성에도 흔들림 없는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며 철강을 첫 의제로 올렸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구체적인 실행안을 담은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보고했고, 회의에는 산업부·기재부·중기부·금융위 등 주요 경제부처 장관과 유관기관장이 참석했다.

금융·통상·설비·기술이 하나의 패키지로

정부 구상은 단기 안전판과 중장기 체질개선이 맞물리는 구조다. 단기적으로는 관세 여파로 흔들린 현금흐름을 받치기 위해 수출공급망 강화보증 4000억원을 포함해 총 57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투입하고 양자 채널 협의 등 통상 대응을 병행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범용재 설비를 다이어트하는 한편 특수탄소강·전기강판 등 경쟁 품목에는 과감한 투자를 유도하고 제조 전반의 AI 전환과 저탄소 공정으로의 이행을 뒷받침한다.

정부가 첫 구조조정 대상으로 철근을 지목한 이유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과잉공급 신호에 응답하기 위해서다. 철근은 수입재 침투율이 약 3%로 낮아 감축이 내수 공백이나 급격한 가격 변동으로 번질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다. 자발적 감축이 더딘 현실도 고려됐다.

반면 열연·냉연·아연도금강판 등은 수입 의존이 큰 만큼 수입 대응을 먼저 정비한 뒤 단계적으로 조정하겠다는 원칙이 제시됐다. 형강·강관 등은 기업이 이미 마련한 자율 조정계획에 정책 지원을 연계한다.

수입구간에서는 우회덤핑까지 겨냥한 규제 강화와 통관 단계의 품질·원산지 검증 고도화가 핵심이다. 정부는 제3국 조립·가공을 통한 관세 회피까지 반덤핑 적용 대상을 넓히고 품질검사증명서(MTC) 의무화를 통해 2026년부터 수입 모니터링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을 못 박았다. 이는 건설 현장 안전성과 시장 질서 회복을 동시에 겨냥한 조치다.

수출구간에서는 미·EU 보호무역 기조 속에서 맞춤형 보증·이차보전·긴급융자를 묶은 금융 패키지로 기업의 운영자금을 보강해 관세 충격을 낮춘다.

수소환원제철과 특수탄소강

녹색 전환의 본체는 수소환원제철이다. 정부는 8100억원 규모의 실증사업을 기반으로 2026부터 2035년 사이에는 고로의 연·원료 대체 및 전기로 확대를 추진하고 2036부터 2050년 사이에는 수소환원제철 15기의 순차 전환을 로드맵으로 제시했다. 청정수소 인센티브와 전력공급 안정화, 스크랩 수급 인프라 정비 등 여건 마련도 병행한다.

한편 고부가 라인의 견인을 위해 2030년까지 10개 특수탄소강에 2000억원 규모의 R&D를 투입하고, 내수·공공 프로젝트에서의 납품 실적을 쌓아 글로벌 시장 진출의 ‘트랙레코드’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정책의 성패는 속도·현장 작동력·인프라 연계성이 동시에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철근 설비 조정은 지나치게 빠르면 내수 공급 불안과 가격 급등을 부르고, 지나치게 늦으면 공급 과잉이 장기화돼 수익성 회복이 더뎌진다. 정부가 내세운 ‘시장 충격 최소화’ 원칙이 실제 현장에서 수급 균형을 유지하는지 여부가 첫 관문이다.

수입통제 강화와 품질인증 제도의 실효성도 시험대에 오른다. 품질검사증명서(MTC) 의무화와 우회덤핑 규제는 서류상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통관·검사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검증 체계가 뒷받침돼야 비로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제도 시행 초기의 행정 혼선이나 수입업계의 회피 시도에 대응하는 정부의 집행력이 정책 신뢰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또한 탄소 감축 전환의 기반이 되는 수소·전력 인프라, 철스크랩 수급 안정, 공공조달을 통한 저탄소 철강 수요 창출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산업의 투자 결정이 앞당겨질 수 있다. 기술 개발만으로는 공정 전환이 현실화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예고한 ‘철강산업 특별법’ 제정과 신성장원천기술 지정 검토가 제도적 발판으로 작동해야 한다.

결국 기업이 구체적 전환 계획을 내놓고 정부가 인프라와 제도를 맞물려 실행할 수 있을 때 이번 대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의를 주재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세 충격을 기회로 삼아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만들겠다”며 “철강산업 고도화가 제조업 경쟁력 회복의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경제 / 이강민 기자 lgm@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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