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펀드 결성액도 80% 가까이↓...회수시장 부진이 주요인
| ▲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작년 11월 4일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역동적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제공> |
"벤처펀드를 많이 만들면 뭐합니까. 제대로 투자집행을 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지요."
바이오 벤처기업 A사 사장은 작년 9월부터 진행해온 펀딩(투자유치)을 최근 사실상 포기했다. 컨소시엄 형태로 펀딩을 주관하던 B벤처캐피털이 반년이 넘도록 이래저래 핑계만 대고 차일피일 투자를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A사는 이 바람에 당초 계획했던 사업에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 100억원 가량을 투자유치, 사업확장과 마케팅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투자유치가 계속 지연돼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A사의 경우처럼 벤처캐피털들이 좀처럼 보수적인 투자성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벤처투자 시장의 냉각기가 길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벤처캐피털의 투자가 더욱 소극적으로 변해 벤처투자시장이 냉각기를 넘어 혹한기로 접어들었다는 전언이다.
■ ICT, 바이오 등 대부분의 업종 투자 큰 폭 감소
정부가 작년부터 벤처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벤처캐피털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센티브와 투자촉진책을 내놓고 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 지난 1분기 벤처투자액이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3년 1분기 벤처투자 및 펀드결성 동향’에 따르면 1분기 벤처투자액은 총 8815억원으로 전년 동기 2조2214억원 대비 1조3399억원 순감했다. 무려 60.3% 쪼그라든 것이다.
벤처투자 시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 초기인 2020년 1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0.7% 감소한 것을 제외하곤 매년 큰폭의 성장세를 유지해왔다. 2021년, 2022년 1분기에 각각 70.5%와 68.5% 증가했다.
1분기 벤처투자액을 업종별로 구분하면 정보통신기술(ICT)서비스가 1986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74.2% 줄었고, 바이오·의료는 1520억원으로 63.3%, 유통·서비스는 128억원으로 77.5% 각각 감소했다.
다만 영상·공연·음반 업종(1102억원)만 유일하게 8.5% 늘었다. 이는 신주나 RCPS(상환전환우선주) 위주인 일반 벤처투자와 달리 콘텐츠 분야는 프로젝트 투자형태로 이루어줘 단기 투자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K콘텐츠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투자심리가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중기부는 분석했다.
정부가 모태펀드 출자규모를 대폭 늘린 덕분에 벤처펀드 결성액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정작 벤처투자는 지극히 보수적으로 이루어져 벤처시장이 활력을 잃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특히 작년말부터 벤처캐피털의 투자심리 회복을 위해 벤처투자 조기집행 인센티브를 현장에 적용중이고 모태펀드 우선손실충당 비율도 상향(10% → 15%)하여 적극적 투자를 유도하고 있지만, 일선 벤처캐피털의 투자패턴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 금융불안과 증시부진에 벤처펀드 결성액도 급감
중기부는 이에 대해 "지난해 이후 지속돼온 실물 경기 둔화, 고금리에 따른 자금조달 비용 증가,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 회수 시장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벤처업계에선 국내 벤처캐피털들이 미국과 달리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자본을 운용하는 투자 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인공지능(AI) 분야의 벤처기업인 B사 사장은 "벤처비즈니스의 생리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인데, 리스크를 전혀 부담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게 무슨 벤처캐피털이냐"고 반문하며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모태펀드를 기반으로 펀드를 만든 벤처캐피털에겐 보다 강력한 투자 촉진책을 도입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벤처투자에서 회수까지 통상 3년 안팎에 소요되는데, 지나치게 현재의 증시 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상장주식 운영사들도 아닌데, 벤처캐피털들이 증시 흐름에 따라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이다.
설상가상 벤처캐피털의 벤처투자가 크게 위축되면서 지난 1분기엔 벤처펀드 결성금액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중기벤처부에 따르면 1분기 벤처펀드 결성총액은 569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78.6% 감소했다.
이같은 현상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과 수출부진, 경기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일반 출자자(LP)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미국 벤처펀드 결성금액이 84.1% 줄어든 것이 이를 뒤받침한다.
중견 벤처캐피털의 한 관계자는 "전반적인 금융시장 불안과 증시 부진이 이어지며 모태펀드 운용사로 선정이 된다해도 LP를 모집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1분기 투자가 많이 줄었지만 민간 벤처모펀드 결성 및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전략적 투자 등으로 향후 민간자금이 더 원활하게 벤처투자 시장에 유입될 것"이라며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 등 관련 생태계 전반을 두텁게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곧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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