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와 농산물값 급등 영향...당국"기저효과와 계절요인"평가
한은 "이달부터 둔화"...상방압력 커져 상승세 꺾일지 불투명
| ▲물가가 다섯달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하며 소비자부담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채소와 과일가격은 고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은 대형 마트의 채소코너. <사진=연합뉴스제공> |
물가가 다시 고개를 뻣뻣이 치켜들고 있다. 올 1월(5.2%)을 정점으로 꾸준히 하향 안정세를 보여왔던 물가상승률이 8월에 3.4%로 급반등 하더니 9월엔 3.7%로 올라섰다.
지난 7월(2.3%) 물가안정의 정부목표치인 2.0%에 근접하던 물가상승률이 두 달 연속 오름세를 타며 어느새 3%대 후반에 도달한 것이다. 물가는 7, 8월 단 두 달만에 1.4%포인트 올랐다.
정부는 국제유가 반등으로 기저효과가 완화된데다, 7~8월 이상기후 여파로 농산물가격이 급상승한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물가를 둘러싼 대내외 복합 악재가 물가를 밀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100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우려했던 국제유가가 4일(현지시간) 5% 넘게 빠지는 등 최근 빠르게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외 거시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아 상승세로 돌아선 물가가 다시 4%대에 진입하는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농산물값 7.2%↑...전체 지수보다 체감물가 더 올라
9월 물가상승률이 3.7%를 기록하며 두 달 연속 상승세를 이어간 끝에 5개월만에 3%후반대에 복귀했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2.99(2020년=100)로 1년 전 대비 3.7% 올랐다.
지난 4월(3.7%) 이후 5개월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월 대비로는 0.3%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물가 상승률은 2022년 7월 6.3%로 최고점을 찍은 뒤 1년만인 지난 7월에 2%대 초반까지 내려왔으나, 8월(3.4%)부터 3%대로 회귀했다.
|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이 5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9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공> |
지난 7월부터 상승 랠리를 시작한 국제유가가 국내 석유류 가격을 강하게 끌어올리며 전체적인 물가 오름폭을 확대됐다.
석유류 물가는 1년 전보다 4.9% 내려 8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지만, 하락률이 7월 -25.9%, 8월 -11.0% 등으로 줄어들다가 9월엔 지난 2월(-1.1%) 이후 최저치로 둔화됐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전년 동기 대비 석유류 하락폭이 8월엔 -11.0%였는데 9월 -3.9%로 둔화됐다"며 석유류 하락폭 둔화의 기여도가 0.3%포인트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농축산물이 3.7% 올라 전월(2.7%)보다 상승폭이 확대된 것도 물가상승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농산물이 7.2% 올라 2022년 10월(7.3%) 이후 11개월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사과 54.8%, 복숭아 40.4% 등 과실 가격이 크게 올랐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3.8%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3.3% 올랐다.
전체 집계 품목 중 구입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을 중심으로 체감 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는 4.4% 상승했다. 이는 지난 3월(4.4%)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물가지표에 비해 소비자들이 몸으로 체감하는 물가가 더 올랐다는 뜻이다.
생선, 해산물, 채소, 과일 등 계절 및 기상 조건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5개 품목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6.4%나 급등했다. 2020년 10월(25.6%) 이후 상승폭이 가장 컸다.
◇ 예상치 웃도는 물가상승률...정부, "10월엔 안정"
9월 물가상승률이 당초 예상치를 웃도는 수준까지 오르자 물가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고공비행을 계속하며 생산자물가가 7, 8월 연속 심상치않은 오름세를 보이긴 했으나, 물가가 3%대 후반까지 오르며 당국의 물가 전망경로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10월부터는 물가가 다시 안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정부는 다만 최근 국제유가 변동성 확대 등 물가의 불확실성이 여전하다고 보고, 우선적으로 서민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 ▲추경호 부총리가 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 물가 흐름과 금융시장의 변동성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공>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7월 중순 이후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여름철 농산물 가격 상승 등이 겹치며 물가상승률이 두 달 연속 3%대를 기록했다"면서 "계절적 요인이 완화되는 10월부터는 다시 안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추 부총리는 "그동안 물가 상승의 주요인이었던 서비스물가 둔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3%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물가 반등에 따른 서민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이달중 동절기 난방비 대책과 배추·무 할인 지원 등 김장재료 수급 안정 대책 등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농축수산물의 경우 이달 말 관계 부처 합동으로 김장재료 수급안정대책을 마련, 배추·무 할인 지원과 정부 공급을 확대키로 했다. 작황 악화로 가격이 급등, 금사과로 불리는 사과는 계약재배 물량 1만5천톤을 최대한 신속히 출하해 가격 안정을 유도할 방침이다.
한국은행도 5일 오전 김웅 부총재보 주재로 ‘물가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물가 상황과 향후 물가흐름을 집중 점검했다. 한은 역시 물가 상승률이 예상을 다소 웃도는 수준이지만, 10월들어 다시 둔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김 부총재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월에도 기저효과가 일부 작용한 가운데, 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전월에 이어 크게 오르면서 8월 전망 경로를 다소 웃도는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물가 전망 경로 상에 국제유가 및 환율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악재 많아 정부 예상대로 10월에 물가 진정될 지 미지수
물가당국이 이처럼 10월 이후 물가 흐름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지만, 분위기는 썩 좋지 않다. 물가를 둘러썬 외부 환경이 밝지 않다. 정부가 두달 연속 물가 반등의 주요인으로 지목한 '계절적 요인'이 완화될 것이란 지극히 단순한 요인을 제외하면, 물가 하락 요인보다는 상승 압력을 높이는 악재가 훨씬 더 많아 보인다.
우선 물가 흐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국제유가의 강세가 환율 상승이 겹치며 10월 이후 물가에 치명적인 변수가될 전망이다. 유가와 달러의 동반 강세로 휘발유와 경우는 물론 원재료를 수입하는 이들 식품·주류·음료 업체의 생산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
| ▲국제유가가 계속 상승하면서 4일 전국 주유소의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올 1월 이후 처음으로 1700원대로 올라섰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주유소. <사진=연합뉴스제공> |
기름값은 쉬지않고 오르고 있다.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이달 4일 1700원을 넘어섰다.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현재 전국 주유소의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리터당 1701.18원이다.
약 9개월 만에 리터당 1700원을 넘어서며 지난해 '경유 대란'이 재현되는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6월 2100원까지 치솟았던 경유 가격은 이후 하향 안정세를 보이며 지난 6월 1300원대까지 내려갔지만, 7월 이후 초고속 상승 중이다. 휘발유 가격도 1800원에 육박하면서 14개월여만의 1800원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서울에선 이미 1700원대 휘발유를 판매하는 주유소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정부의 압박과 여론에 밀려 라면 등 일부 식품이 가격을 인하하고 업계가 가급적 추가인상을 자제하고 있지만, 최근 원자재 등 비용부담이 커지자 식품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원윳값 인상분을 반영, 우유 가격이 오른데 이어 우유를 재료로 사용하는 빵, 치즈,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 인상 조짐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머지않아 우유와 관련 제품 가격이 도미노처럼 급등하는 밀크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주류값도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5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전날 오비맥주는 오는 11일부터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의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한다고 밝혔다. 오비의 가격 인상은 작년 3월 이후 1년 7개월 만이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하락세로 급반전했다고 하나, 잠재적 불안이 잔존하고 있는데다가 생산자 물가 상승, 환율의 고공행진, 각종 원자재값 인상, 전기 등 에너지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 상승압력이 쌓이고 있다"고 "물가당국의 낙관적 예상대로 10월 이후 물가가 안정세로 돌아올 지는 미지수"라고 입을 모은다.
토요경제 / 조봉환 기자 ce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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