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영수의 물방울, 사라지는 것들에 깃든 영원

문화·라이프 / 마리아김 칼럼니스트 / 2026-07-02 13:09:58
칼리파갤러리 개인전 ‘물방울에 깃든 바니타스’…찰나의 자연으로 삶의 유한함을 묻다

서양화가 이영수의 물방울은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얼굴이다. 잎사귀 끝에 맺힌 한 방울의 이슬은 그의 화면에서 단순한 자연 현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의 기척이자 소멸의 예감이며, 사라질 수밖에 없기에 더욱 빛나는 존재의 은유다.

서양화가 이영수는 오랫동안 자연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을 응시해왔다. 그의 관심은 아름다운 풍경을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작가는 풀잎 위에 내려앉은 빛,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의 결, 새벽 이슬이 머금은 투명한 떨림 속에서 삶의 본질을 길어 올린다. 자연은 그에게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조용한 거울이다.
 

▲ 이영수 Natural Image 53 x 53 cm Oil on canvas 2024 [칼리파갤러리]

 

그의 대표적 소재는 잎사귀 위에 맺힌 물방울이다. 물방울은 작고 투명하지만 그 안에는 빛과 공기, 기억과 시간이 함께 고인다. 이른 새벽 햇살을 받은 이슬은 가장 맑은 순간에 가장 연약하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증발하거나 흘러내린다. 이영수가 붙잡는 것은 바로 그 짧은 순간이다. 사라지기 직전의 아름다움, 붙잡을 수 없기에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삶의 한 장면이다.

작가는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그의 회화가 단순한 재현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화면 속 물방울은 카메라가 포착한 이미지가 아니다. 작가의 시선과 감각을 통과해 다시 태어난 존재다. 투명한 표면 안에는 외부의 풍경만 비치지 않는다. 관람자의 기억과 시간도 함께 비친다. 그래서 그의 물방울 앞에 서면 우리는 자연을 보는 동시에 자신을 보게 된다.
 

▲ 이영수, Natural Image 162.2 x 130.3 cm Oil on canvas 2026 [칼리파갤러리]

 

전시 제목인 '물방울에 깃든 바니타스(Vanitas)'는 이 지점에서 의미를 얻는다. 바니타스는 인간 존재의 유한함과 삶의 덧없음을 성찰해온 미술사의 오랜 주제다. 과거의 바니타스가 해골, 시든 꽃, 꺼져가는 촛불로 죽음과 소멸을 말해왔다면, 이영수는 물방울이라는 가장 맑은 자연의 형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의 물방울은 죽음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영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삶의 한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그것은 비극이라기보다 성찰에 가깝다. 큰 소리로 외치지 않고, 잎사귀 끝에서 빛나는 작은 침묵으로 관람자를 멈춰 세운다.

작가의 바니타스는 동시대 미술에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뤄온 여러 작업들과도 닿아 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은 자극적이지 않다. 죽음의 이미지를 전면에 세우기보다, 한 방울의 물 속에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담아낸다. 그의 화면은 차갑지 않다. 맑고 조용하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 신)Natural Image 162.2 x 130.3 cm Oil on canvas 2026 [칼리파갤러리]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작가의 조형 언어가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영수는 오랫동안 물방울과 자연을 소재로 극사실 회화의 밀도를 쌓아왔다. 그러나 최근 작업에서는 정밀한 재현을 넘어 자연이 남기는 감각과 기억, 정서의 흐름까지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자유로운 붓질과 유연한 색채는 빛과 공기, 바람의 움직임을 보다 회화적으로 드러낸다.

이 변화는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외부의 풍경에서 내면의 사유로 깊어졌다는 뜻이다. 사실성과 추상성은 그의 화면에서 대립하지 않는다. 정밀하게 그려진 물방울은 어느 순간 추상적 감각으로 번지고, 흐르는 색채와 붓질은 다시 자연의 실재감으로 돌아온다. 그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이영수의 물방울은 자연의 한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초상이고, 존재의 은유이며, 유한한 삶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진다는 사실이 삶을 허무하게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짧음 때문에 우리는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오래 기억하며, 더 절실하게 바라본다.

칼리파갤러리(대표 손경란)는 이영수 개인전 '물방울에 깃든 바니타스(Vanitas)'를 오는 11일까지 개최한다. 전시장소는 칼리파갤러리이며, 출품작은 회화 20여 점이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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