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원유 중독’ K정유…고도화설비 뒤에 숨은 안일한 수익구조(1부)

기업분석 / 이덕형 / 2026-03-08 11:02:35
국내 정유사 공급망 혁신보다 값싼 원유·높은 마진 택한 관행
70년대 짜놓은 원료 공식에 여전히 의존…

[토요경제 = 이덕형 기자] 중동사태로 인해 국제 원유 가격이 심상치 않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중동산 원유를 고집한다 왜 일까? 하지만 원유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그리고 심지어 미국에서도 생산 된다. 국내 정유사가 아랍의 원유를 고집하는 이유와 원인을 살펴본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모습.사진=연합뉴스


국내 정유업계의 중동산 원유 편중은 더 이상 단순한 조달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값싼 원유를 안정적으로 들여와 기존 설비에서 최대 수익을 뽑아내는 구조가 수십 년간 굳어지면서, 공급망 다변화와 체질 개선은 뒤로 밀렸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25년 정유업계의 중동산 원유 도입량은 하루 평균 195만 배럴, 연간 약 7억1175만 배럴로 전체 수입의 69.9%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중동은 물량이 크고 장기계약이 가능하며 가격 경쟁력도 높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 등 주요 산유국은 아시아 정유사들이 대규모로 원유를 조달할 수 있는 핵심 공급처다.

정유사들 역시 이런 구조 속에서 원유를 안정적으로 들여와 휘발유·경유·항공유·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해 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산업의 오래된 전제가 숨어 있다. 국내 정유설비 상당수가 애초부터 중동산 중질·고유황 원유를 처리하는 데 맞춰 구축됐다는 점이다.

국내 정유산업의 출발점을 보면 이 구조는 우연이 아니다. 1960년대 정유산업은 울산 정유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1970년대 정제능력을 빠르게 키웠고, 이 과정에서 대량 조달이 가능한 중동산 원유가 산업의 중심축이 됐다.

이후 정유사들은 탈황설비와 고도화설비를 강화하며 중동산 사워유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향으로 경쟁해 왔다. 이는 당시로선 합리적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다른 원유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구조보다 특정 원유에 익숙한 산업 체질을 더 강하게 굳혀놓는 결과를 낳았다.

더 큰 문제는 이 구조가 이제는 ‘설비 효율’이라는 설명보다 ‘마진 극대화’라는 현실로 읽힌다는 점이다. 로이터는 최근 아시아 정유사들이 중동산 고유황 원유를 처리하도록 설비를 고도화해 왔고, 상대적으로 값이 싼 원유를 도입해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이 고착화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스위트유의 경우 황이 적어 정제하기 쉬운 원유로 분류되며 중동산 사워유는 황이 많아 정제는 까다롭지만 값은 더 싼 원유에 속한다. 다시 말해 정유사의 마진이 더 높다는 이유다.


그래서 정유업계의 일부 설비 개선 사례 역시 더 값싼 원유 투입 범위를 넓혀 마진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결국 중동산 원유 의존은 단순한 관성이 아니라, 이미 감가상각이 상당 부분 진행된 설비 위에서 가장 손쉽게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사업 모델이 돼버린 셈이다.


이 지점에서 비판은 정유사들의 ‘선택’으로 향한다. 공급망 불안이 반복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업계는 다변화 비용과 설비 전환 부담을 이유로 기존 구조를 유지해 왔다.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아부다비 대통령궁에서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과 한-UAE 확대회담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물론 정유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이어서 원료 성상을 갑자기 바꾸기 어렵고, 장기계약 기반 조달이 가격 예측성과 운영 안정성에 유리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설명이 계속 반복될수록 정유사들이 미래 경쟁력 확보보다 현재의 영업이익 방어에 더 익숙해진 것 아니냐는 논란도 존재한다.

 

값싼 원유를 들여와 고도화 설비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뽑아내는 방식은 실적에는 도움이 되지만, 산업의 회복력까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 원유 안정적 공급 가능하지만 설비가 발목을 잡아

위기 국면에서는 이 약점이 더 선명해진다. 로이터는 최근 중동발 공급 불안이 커지자 아시아 정유사들이 브라질, 서아프리카, 미국산 원유를 대체재로 검토했지만, 긴 운송거리와 높은 운임, 설비 적합성 문제 때문에 즉각적인 전환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평소에는 ‘효율’로 포장된 구조가 위기 때는 ‘경직성’으로 바뀌는 것이다. 값싼 원유를 가장 잘 처리하는 설비를 갖춘 것이 자랑이던 산업이, 정작 공급 충격 앞에서는 선택지가 좁은 산업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국내 주요 정유사들인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모두 기본적으로 대형 정제설비와 고도화시설을 중심으로 수익 구조를 짜고 있다. 개별 기업마다 조달 포트폴리오에는 차이가 있지만, 산업 전체로 보면 중동산 원유를 중심으로 한 설비 최적화 전략이라는 큰 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이 묻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한국 정유업계가 정말 중동산 원유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서 지금의 구조를 유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가장 익숙하고 가장 돈이 되는 공식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인지다.

결국 이 문제는 원유 조달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 철학의 문제에 가깝다. 설비를 바꾸고 공급선을 넓히는 일은 당장 수익성을 깎을 수 있지만,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에너지안보를 생각하면 피하기 어려운 투자다.

그런데도 업계가 여전히 1970년대에 짜인 구조를 현대식 고도화설비로 연장해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연명에 가깝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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