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스와프 ‘필요조건’론…대통령실 “시한 때문에 원칙 희생 없다”

정치 / 최성호 기자 / 2025-09-25 08:31:46
美는 현금투자 요구, 韓은 대출·보증 성격 고수…법 개정·국회 동의 가능성까지, 협상 난항 불가피
▲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면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토요경제 = 최성호 기자] 한미 간 통화스와프 협상이 심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협상의 본질이 ‘단순한 외환 안정 장치’를 넘어 정치·경제적 조건 충족 여부로 옮겨가고 있다.

 

대통령실은 24일(현지시간) “무제한 통화스와프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시한 때문에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한국 정부가 스와프를 외환 안정의 전제 조건으로 보면서도, 투자 방식과 법적 근거, 상업적 합리성 등 세부 조건이 맞아야만 실제 자금 투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다.


뉴욕증시는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증시 고평가’ 경고와 AI 투자 과열 논란으로 연이틀 하락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정부가 적극 추진하는 통화스와프는 단기 금융시장의 안전판으로 주목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가 없으면 충격이 너무 크다”며 외환위기까지 언급했다. 이처럼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가 환율·채권시장 안정의 분수령으로 인식되면서, 대통령실의 메시지는 금융시장 참여자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가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뉴욕 브리핑에서 “통화스와프는 고등학교 수학의 필요조건에 해당한다”고 비유했다. 즉, 협상 출발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 체결만으로 모든 협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 실장은 “충분조건으로는 상업적 합리성, 법적 허용 범위, 국익 부합 여부 등이 있다”며 “필요하다면 수출입은행법 개정이나 국회 동의도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통화스와프가 단순 외환조치가 아니라 국내 법·제도, 정치적 합의까지 포괄해야 하는 종합 협상임을 보여준다.

협상 난항의 배경에는 미국의 자금 성격 요구가 있다. 한국은 7월 관세 합의 이후 3천500억 달러 규모 투자에서 상당 부분을 대출·보증 형태로 충당할 수 있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미국이 보낸 양해각서(MOU)에는 ‘캐시플로(Cash Flow)’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한국 정부가 이를 검토한 결과 사실상 현금 투자(에쿼티)에 가깝다는 점을 파악했다. 

 

김 실장은 “미국은 현금 투자에 준하는 속성을 주장했지만, 한국은 이를 대출·보증·투자로 구분해 최대한 대출 속성으로 문안을 조정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미국식 ‘현금 투자’가 한국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이다. 단기적으로 대규모 달러 유출이 발생하면 원·달러 환율 급등, 외화유동성 위축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정부가 통화스와프를 안전판으로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 실장은 “우리는 최대한 국익에 맞는 방안을 협상 중”이라며 “예컨대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한국이 90%, 미국이 10%를 가져가는 구조를 제안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이는 협상에서 상업적 합리성과 국익을 확보하려는 구체적 시도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수출입은행법 개정 가능성과 국회 동의 문제는 협상 타결에 추가 변수가 된다. 현행 법체계상 대규모 외화 차입·보증 제공에는 국회의 심의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보증 동의가 필요해질 경우, 협상 결과는 정치 일정과도 직결된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정국에서 ‘외환안정 명분’과 ‘재정 부담’ 논란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농업 분야 개방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메시지도 분명했다. 김 실장은 “쌀과 소고기 등 비관세 영역은 논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통화·관세 협상과 농산물 시장 개방 이슈를 분리해 협상의 초점을 경제·금융 협력으로 한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김 실장은 향후 협상 전망과 관련해 “다음 중요한 계기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라고 언급했다. 

 

즉, 오는 11월 경주 APEC이 사실상 협상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 자리에서 한미 간 통화스와프와 투자 방식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도출된다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완화와 함께 원·달러 환율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반면 시한 내 합의가 무산될 경우, 시장은 다시 불확실성에 흔들릴 전망이다.

월가와 국내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을 ‘경제·정치·외교가 얽힌 복합 협상’으로 평가한다. 한 국내 증권사 연구원은 “통화스와프는 단기 유동성 안전판이지만,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오히려 한국 외환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정부가 대출·보증 성격을 고수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미국 내에서는 “한국이 상업적 합리성을 강조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결국 정치적 신뢰 구축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화스와프는 외환 안정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무의미할 수 있다. 대통령실이 강조한 ‘원칙 사수’와 미국의 ‘현금 투자’ 요구 사이 간극은 당분간 좁혀지기 어려워 보인다. 

 

경주 APEC 정상회의까지 협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외환안정과 국익, 법적 정당성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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