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성장의 착시…반도체 밖 온도차

산업 / 임종호 기자 / 2026-08-22 07:13:13
수출 절반은 반도체…해외 생산 확대 속 국내 파급력 확보가 과제
▲ 경기도 평택항 [연합뉴스]

 

한국 경제 지표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3.2%로 올렸다. 8월 들어 수출도 같은 기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체감경기는 지표만큼 뜨겁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AI 반도체가 성장률과 수출을 끌어올리는 반면 소비·고용·건설은 더딘 회복을 보이고 있다.


KDI는 지난 9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2.5%에서 3.2%로 0.7%포인트 올렸다. 석 달 만의 큰 폭 상향이다. 세계 AI 투자가 예상보다 강하게 이어지면서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가 동시에 뛰고 있다고 판단했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보다 0.6%,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성장했다.

문제는 성장의 분포다. KDI는 건설투자가 여전히 부진하고 민간소비 개선 속도도 완만하다고 분석했다. 올해 취업자 증가 전망도 11만명에 그쳤다. GDP가 3% 넘게 성장해도 모든 산업과 가계가 같은 속도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수출 구조는 이 온도차를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관세청에 따르면 8월 1~20일 수출은 552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56.0% 늘었다. 8월 1~20일 기준 역대 최대다. 조업일수가 지난해보다 반나절 적었지만 하루 평균 수출도 61.5% 증가했다. 무역수지는 140억달러 흑자였다.

수출 증가의 중심은 반도체였다.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은 260억3000만달러로 전체 수출의 47.2%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보다 198.8% 증가했다. 컴퓨터 주변기기도 242.1% 늘었다. 반면 승용차는 45.1%, 자동차부품은 19.9%, 선박은 60.5% 줄었다. 자동차는 휴가와 일부 사업장 파업, 선박은 인도 시점에 따라 월별 변동이 크다. 이를 곧바로 경쟁력 약화로 볼 수는 없다. 다만 현재 수출 회복이 반도체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은 숫자로 확인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171조5000억원, 영업이익 89조50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냈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 매출은 127조5000억원, 영업이익은 89조2000억원이었다. 삼성전자는 AI 서버용 메모리와 HBM4 판매 확대가 실적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2분기 연구개발비도 역대 최대인 16조원을 집행했다.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폭도 컸다. 2분기 매출은 79조3187억원, 영업이익은 60조5426억원이었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257%, 영업이익은 557% 증가했다. 회사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고성능 D램과 HBM 수요를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SK하이닉스는 청주 M17과 첨단 패키징 시설 P&T7 등을 포함해 충청권에 총 100조원 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국내 설비투자와 지역 투자로 이어지는 통로다.

다만 반도체 호황이 곧바로 내수 회복으로 번지는 것은 아니다. KDI는 실질 국내총소득(GDI)이 크게 늘었지만 민간소비 회복은 더디다고 봤다. 소득 증가가 반도체 관련 부문에 집중되고 실질임금 상승세가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은 2.3%다. 수출 기업 이익이 급증해도 그 돈이 여러 업종의 임금과 일자리로 퍼지지 않으면 백화점·마트·외식·자영업자가 느끼는 경기는 GDP 숫자와 다를 수밖에 없다.

건설도 체감경기의 온도를 낮춘다. 반도체 공장에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것과 전국 주택·상가·토목 현장이 동시에 살아나는 것은 경제 파급 경로가 다르다. 전자는 특정 산업과 지역에 집중되기 쉽다. 후자는 건설사, 자재·장비·운송업, 현장 근로자까지 넓게 연결된다. 성장률은 높아졌지만 일상 경기의 회복감이 약한 이유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다른 압력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분기 매출 49조2153억원으로 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이브리드 판매도 역대 최대였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2조8509억원으로 전년보다 20.8% 줄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부품 공급 차질이 수익성을 눌렀다. 매출원가율도 82.2%로 1.1%포인트 높아졌다. 반도체와 달리 자동차는 판매가 늘어도 비용 부담을 함께 떠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생산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생산능력을 연간 120만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현지 투자를 늘리고 있다. 조지아 메타플랜트(HMGMA)의 생산능력을 30만대에서 50만대로 확대하고, 부품 현지화와 철강 생산까지 미국 안에서 묶는 전략이다. 미국 시장과 통상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를 단순히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조선업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HD현대중공업은 2분기 매출 6조3322억원, 영업이익 1조399억원을 기록했다. 조선업 호황의 수혜를 받고 있다. 동시에 HD현대는 미국 조선업 재건 사업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조선소 인수와 지분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고 21일 공시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다만 국내에서 만들어 해외로 파는 방식만으로는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의 해외 생산 확대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기업에는 시장을 지키고 관세와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는 현실적 선택이다. 쟁점은 따로 있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매출 증가가 국내 생산, 국내 고용, 국내 소비로 이어지던 과거의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률 3.2%는 분명한 호재다. 수출 역대 최대도 가벼운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정책 성과를 성장률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경제 구조가 달라졌다. 반도체에서 생긴 이익이 국내 협력업체 매출, 지역 투자, 임금, 일자리, 소비로 얼마나 확산되는지 따로 봐야 한다. 해외 생산이 불가피한 산업에서는 국내에 남을 연구개발, 핵심 부품, 고부가 공정, 설계 인력을 어떻게 지킬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정부와 국회의 과제도 여기에 있다. 성장률 전망 상향을 경기 회복의 증거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성장의 국내 파급 경로를 보여줘야 한다. 반도체 호황이 내수와 고용으로 번지는 통로, 해외 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장치, 건설과 소비의 회복 속도를 보완할 정책이 같이 제시돼야 한다.

한국 경제는 다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물어야 할 것은 성장률이 몇 퍼센트냐가 아니다. 그 성장의 열기가 국내 경제 안에 어떻게 이어지느냐다. 성장률 숫자와 체감경기 사이의 간극을 줄이지 못하면 ‘수출 역대 최대’와 ‘경기 불안’은 한동안 같은 문장 안에 놓일 수밖에 없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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