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역사적 HBM 승부수...“극적인 운명의 반전(dramatic reversal of fortunes)”

산업 / 임종호 기자 / 2026-06-25 04:00:56
하이닉스 사상 최대 실적·이노베이션 흑자전환·SKT AI 인프라 협력
▲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의 한 삼겹살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의 6월은 단순한 호재의 나열이 아니었다. 1분기 실적에서 확인된 반도체·에너지·통신의 회복 흐름 위에 AI 인프라 협력과 HBM 재평가가 더해졌다. 몇 년간 배터리 부진과 투자 부담, 사업 재편 과제를 안고 있던 SK가 이제는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다시 평가받는 국면에 들어섰다.

가장 강한 축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 순이익 40조345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분기 기준 처음으로 50조원을 넘었고, 영업이익률은 72%에 달했다. 이 숫자는 단순한 반도체 호황의 결과가 아니다. AI 서버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 즉 HBM이 범용 메모리와 다른 가격 결정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시장도 이를 확인했다. 로이터는 지난 22일 SK하이닉스가 보통주 기준 삼성전자를 제치고 국내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를 “극적인 운명의 반전(dramatic reversal of fortunes)”이라고 표현했다. 20여년 전 부채 부담으로 흔들렸던 메모리 업체가 AI 인프라의 핵심 공급자로 바뀐 장면을 외신도 한국 산업사의 전환점으로 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로이터는 24일 별도 분석 기사에서 SK하이닉스의 부상을 “14년간의 베팅이 회의와 조롱을 넘어 세계 AI 골드러시의 중심에 선 결과(14 years of bets…global AI gold rush)”라고 짚었다. 여기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리더십이 놓여 있다.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당시의 목표에 대해 “범용 메모리 생산자를 필수불가결한 제품을 만드는 주류 반도체 회사로 바꾸고 싶었다(transform it from a commodity memory producer into a mainstream semiconductor company whose products are indispensable)”고 설명한 바 있다. 지금의 HBM은 그 구상의 결과물에 가깝다.

최 회장의 리더십은 인수 결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6월 대만 컴퓨텍스에서 SK하이닉스가 향후 5년간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AI 수요가 메모리 공급을 앞지르는 상황에서, 공급능력 자체가 경쟁력이라는 판단이다. SK가 단순 제조회사를 넘어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기업으로 올라선 배경에는 이처럼 시장의 방향을 먼저 읽고 대규모 투자를 감수한 선택이 있었다.

통신 부문에서도 방향이 잡혔다. SK텔레콤은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4조3923억원, 영업이익 5376억원, 순이익 3164억원을 기록했다. 무선 사업이 안정적으로 버티는 가운데 AI 데이터센터와 기업용 AI 사업이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특히 6월 SK텔레콤과 엔비디아의 AI 클라우드 협력은 통신사가 가입자 기반 사업자를 넘어 AI 인프라 운영자로 재정의되는 계기가 됐다.

에너지 부문도 회복 신호를 냈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매출 24조2121억원, 영업이익 2조1622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과 래깅 효과가 반영된 측면은 있다. 그러나 지난해 부진했던 정유·에너지 부문이 이익 기여를 회복했다는 점은 그룹 전체 현금흐름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배터리 부문은 아직 과제다. SK온은 흑자 전환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다만 적자 폭은 줄고 있고, ESS와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 방향을 재조정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만 바라보던 구조에서 에너지저장장치와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로 시야를 넓히는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결국 SK그룹의 현재 강점은 하나의 계열사 호실적에 그치지 않는다. 하이닉스는 AI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SK텔레콤은 AI 인프라를 깔며, SK이노베이션은 에너지 기반을 떠받친다. SK스퀘어는 하이닉스의 기업가치 상승을 투자 성과로 흡수하고 있다. 반도체, 통신, 에너지, 투자회사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과제는 남아 있다. HBM 호황은 AI 투자 사이클에 민감하고, 에너지 실적 개선에는 일회성 요인도 섞여 있다. 배터리 수익성도 더 검증돼야 한다. 그럼에도 1분기 실적과 6월의 외부 평가를 함께 보면 방향은 분명하다. SK는 다시 성장 서사를 만들고 있다. 그 중심에는 AI 시대를 먼저 읽고, 하이닉스를 세계적 반도체 기업으로 키워낸 최태원 회장의 장기 리더십이 있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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